만 80살의 장기원 할아버지가 23일 열린 고양 원더스 1차 선수 선발전에 나와 멋진 투구폼을 선보이고 있다.
“꿈 이룰지 누가 아나” 37명 참가
“5년 전에는 120㎞까지 나왔는데…. 허허~.”
두꺼운 돋보기 안경을 쓴 팔순의 할아버지가 마운드에 섰다. 휙~. 폼은 여느 선수들보다 안정됐다. 지켜보던 코칭스태프는 “80㎞ 정도 구속이 나오는 듯하다. 확실히 연륜에 따른 구력을 무시할 수 없다”고 평했다. 옆에서 손자뻘 되는 참가자가 공을 힘껏 뿌렸다. 구속은 더 나왔지만 폼은 할아버지만 못했다.
23일 경기도 고양시 국가대표야구훈련장에서 열린 한국 최초의 독립리그 구단인 고양 원더스 1차 공개 선수 선발. 1931년생 장기원 할아버지는 최고령 지원자였다. 체감온도 영하 3도의 추운 날씨에도 꿋꿋하게 몸을 풀고 선수들과 기량을 겨뤘다. 어르신들로 구성된 ‘노노야구단’에서 투수로 활약중인 장 할아버지는 “고등학교 2학년까지 야구를 했는데, 6·25 전쟁 참전 때문에 야구를 관둘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먹고살기 바빠서 야구를 잊고 살았는데 1997년 노노야구단이 창단돼 지금껏 뛰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여기 온 것은 아내밖에 모른다. 젊은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좋아하는 것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도전 정신을 배웠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선수 선발에는 37명이 참가했다. 대부분 선수 경험 없이 취미로 사회인야구를 하는 일반인이었다. 연령 제한도 없었다. 때문에 ‘야구 검정고시’라고도 불렸다. 24일에는 일반인 67명이 참가한다. 서울대 법대 4학년으로 동아리 야구팀 투수인 이철환(21)씨는 “야구는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친구들 몰래 왔는데 빨리 가서 공부해야 한다”며 웃었다. 김현성(18)군 등 수능을 마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그냥 야구가 좋아서 한번 와 봤다”는 그들이었다. 큰 키(1m94) 때문에 코칭스태프의 눈길을 사로잡은 박철우(21)씨는 지난 3월까지 군장대 야구부 소속이었다가 야구부가 해체되는 바람에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경우였다.
현장에서 선수들을 평가한 김광수 전 두산 감독대행은 “야구가 전반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느꼈다. 사회인야구 수준이 꽤 높아진 것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김 전 감독대행은 수석코치 제안을 받은 상태다.
고양 원더스 선수 선발은 29일까지 진행된다. 25일부터는 야구 선수 출신을 대상으로 한다. 점점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선수 선발 규모는 30~35명. 고양 원더스는 코칭스태프와 선수단 구성을 마친 뒤 12월12일 공식 창단식을 하고, 내년부터 2군리그에 참가한다.
고양/글·사진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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