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야구
2002년 축구 한·일월드컵 때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십만의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마음 한편에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오죽 답답했으면….’ 하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마음껏 춤추고 노래 부를 수 있는 곳이 노래방이나 클럽밖에 없었으니까. 가슴속에 잔뜩 응어리진 욕구를 분출할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은 사회임을 그때 새삼 깨달았다.
2011년 야구장을 보면 2002년 월드컵 때의 모습이 겹쳐진다. 선수들이 타석에 들어서거나 이닝이 바뀔 때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에 맞춰 젊은 여성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춘다. 승패가 어찌 되든 통쾌한 장면이 나오면 주변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를 한다. 설사 그날 처음 마주한 사람이라도 그 순간 같은 경험을 공유한 친구가 된다. 흥겨운 응원가도 목청껏 따라 부른다. 축제가 별거던가. ‘나’ 아닌 ‘우리’로 하나 되는 게 축제 아니던가. 야구장이 ‘승패의 장’이 아닌 ‘축제의 장’으로 변하자 프로야구는 사상 최초로 600만 관중을 돌파했다. 프로야구는 이제 ‘친서민 정책’을 내세우는 대통령부터 인기에 목마른 연예인까지 무시할 수 없는 ‘영역’이 됐다.
프로야구만한 ‘블록버스터’도 없다. 프로야구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해마다 선수, 심판, 프런트를 포함해 1000명 가까운 인력이 투입되고 1500억원 넘는 비용이 발생한다. 관중 600만명은 아직도 적다. 지금껏 국내에서 1000만 관객을 넘게 불러들인 영화가 6개라는 점을 상기해보자. 1993년 100만명 관객(서편제)에 환호하던 영화시장은 편리하고 깔끔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등장과 문화 소비 확대, 마케팅 등에 힘입어 2004년 1000만 관객 시대를 열었다. 프로야구도 1000만 관중 돌파가 결코 꿈은 아니다.
올 시즌 삼성, 기아, 한화 홈경기는 모두 48차례나 매진됐다. 이들 구단의 홈구장, 혹은 보조구장(청주, 군산)의 관중 수용 능력은 1만5000명 이하다. 특히 1위 삼성의 홈구장인 대구 구장은 1만명밖에 들어가지 못한다. 만약 이들 구장이 2만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올 시즌 700만 관중 시대를 열었을지도 모른다. 관중 2만5000명 이상 수용 가능한 잠실(두산, 엘지)·사직(롯데)·문학(SK) 구장에는 올 시즌 경기 때마다 평균 1만5000 이상의 관중이 들어왔다.
비좁고 불편한 경기장은 지자체의 적극적인 관심으로 앞으로 개선될 것이다. 여기에 행정 하는 분들의 마인드가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을 보태 본다. 두산이나 엘지가 쓰는 잠실야구장 얘기다. 두 구단은 연간 임대료로 38억원3000만원(올해 기준)을 냈다. 20년 이상 장기 임대를 해서, 팬들이 좋아하는 형태로 경기장도 바꾸고 각종 편의 시설을 설치하고 싶어도 못한다. 시민들에게 스포츠 복지를 통한 행복감을 안겨준다는 생각을 하지만 행정당국은 프로 구단을 ‘돈 내는 봉’으로 생각한다. 이래서는 안 된다. 프로야구가 진정한 시민들의 축제가 되기 위해선 지자체가 도와야 한다. 그래야 구단들이 더 신나서 투자하고 수준 높은 야구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600만명의 축제가 던져준 숙제다.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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