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의 아들 기호씨
최동원 전 감독 16일 영결식
야구공·글러브도 함께 화장
야구공·글러브도 함께 화장
영정 사진 속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무쇠팔’을 자랑하듯 굵은 오른 팔뚝도 내어 보였다. 세상 근심 없는 환한 미소로 세상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눴다.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의 발인식이 16일 오전 6시50분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아들 기호(사진)씨가 운구 행렬 맨 앞에서 영정을 들었다. 부인 신현주씨를 비롯한 유족과 양상문 해설위원 등 야구인, 지인 등 100여명이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오전 6시 시작된 발인 예배는 고인이 평소 다녔던 평강교회 김명수 담임 목사가 이끌었다. 운구 행렬이 움직이자 아들에게 마지막 공을 쥐여줬던 어머니 이정자씨가 끝내 오열을 터뜨렸다. 고인과 유족의 뜻에 따라 화장을 하고자 벽제 승화원에 도착한 뒤에도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20분 넘도록 관을 놓지 못했다. 고인의 동생 최수원 심판위원이 어머니를 부축해 나간 뒤에야 화장 절차가 진행됐다. 고인의 머리맡에는 생전에 가장 아끼던 흰색 롯데 유니폼이 놓였고, 평생 함께했던 야구공과 글러브도 재가 되어 함께 떠났다.
일산 청아공원에 마련된 안치소에서 아들 기호씨는 가장 마지막까지 남았다. 갓 입대했던 이등병 아들이 다음 휴가를 기약하며 헤어질 때 병상의 아버지가 건넨 “건강해라”가 마지막 유언이 됐다.
청아공원 입구와 광장에는 ‘혼(魂)을 던진 사내 최동원’이라 쓴 검은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어릴 적 앞마당에 마운드와 그물망까지 설치해준 부모 덕분에 마음껏 공을 던질 수 있었던 ‘천재 야구 소년’은 1970년대 후반 경남고 때부터 이름을 날렸다. 그 시절 ‘책받침 스타’로 오빠부대를 이끌던 그는 연세대를 거쳐 83년부터 8년간의 프로 생활 동안 80차례나 완투를 했다. 특히 롯데자이언츠 선발투수로 나선 84년 삼성 라이온즈와 한국시리즈(7전4선승제)에서는 5차례 등판해 40이닝을 던지면서 팀의 4승(1패)을 혼자 거뒀다. 한국 야구 100년사를 통틀어 선동열 전 삼성 감독과 함께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았다.
53살,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았지만 그는 한국 프로야구 30년을 빛낸 전설로 남았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사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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