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세출의 투수’ 최동원, 오늘 새벽 별세
2008년 가을이었다. 그는 당시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으로서 인천 도원구장에서 에스케이(SK) 와이번스전을 지휘하고 있었다. 1년 전 발병한 대장암은 거의 완치됐으며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얼굴은 제법 좋아보였다. 사투리가 진하게 섞인 말투로 농담도 곧잘 했다. 그로부터 3년이 흘러 최근 마주한 그는 매우 수척해 있었다. 7월22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경남고와 군산상고 간의 레전드 매치에서였다. 경남고 대표로 참가했으나 그는 경기에 뛰지 못했다. “다음에는 꼭 던지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에게 ‘다음’은 허락되지 않았다.
‘불세출의 투수’ 최동원 전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이 14일 오전 2시2분께 눈을 감았다. 향년 53세. 2007년 대장암 진단을 받은 그는 지난해부터 병세가 나빠져 경기도 포천 등지에서 생식 등을 하면서 요양해왔다. 최근에는 병세가 급격히 악화돼 일산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왔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6일 오전 6시, 장지는 경기도 자유로청아공원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신현주 씨와 군 복무 중인 아들 기호 씨가 있다. 친동생인 최수원 1군 심판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잠시 눈을 뜨면 ‘괜찮다’며 가족들을 위로할 정도로 강한 정신력을 보여줬다”고 전했다.
최동원은 경남고-연세대를 거쳐 1983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입단 전 미국프로야구 토론토 블루제이스로부터 계약금 61만달러를 받는 조건에 계약을 하기도 했으나 병역 문제 때문에 국내에 남았다. 프로야구 데뷔 첫해 성적은 9승16패4세이브 평균자책점 2.89. 하지만 이듬해(1984년)에는 150㎞를 넘나드는 직구와 낙차 큰 폭포수 커브를 앞세워 무려 14차례나 완투하면서 27승13패6세이브의 성적을 올렸다. 특히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1,3,5,6,7차전 등 총 5차례 등판해 4승(1패)을 올리면서 롯데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한국시리즈 4승은 아직까지도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후에도 철완을 뽐내면서 롯데 에이스로 명성을 쌓았다. 선동렬(해태)과의 맞대결에서는 연장 15회 무승부를 기록하는 등 1승1무1패로 팽팽한 자존심 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1988년 프로야구선수회 결성을 주도하다가 실패한 뒤 ‘괘씸죄’를 적용당해 삼성으로 트레이드됐다. 이후 야구에 흥미를 잃으면서 별다른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1990년 은퇴할 때까지 거둔 통산 성적은 103승74패 26세이브. 80차례 완투경기(통산 2위)를 펼쳤고, 통산 평균자책(2.46)도 선동렬(1.20)에 이어 2위에 올라 있다. 은퇴 이후 1991년 지방의회 선거 때 부산 서구에서 출마하기도 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은퇴 10년 만에 2001년 한화 코치로 지도자 데뷔를 했고 2006년부터 3년 동안 한화 2군 감독을 지냈다. 프로야구 1군 감독의 꿈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최동원 전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이 14일 오전 53세의 일기로 유명을 달리 했다. 사진은 1984년 롯데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뒤 MVP에 선정돼 부상으로 받은 승용차에 올라 타 손을 흔드는 모습. (사진=롯데 자이언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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