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야구
편지를 한통 받았다. 보낸 이의 일상은 소박했다. 야구를 하는 날이면 서둘러 퇴근해 밥을 먹고 야구 중계를 봤다. 차 안에 있으면 디엠비(DMB)로 시청했다. 월요일을 제외하고 웬만하면 저녁 약속도 잡지 않았다. 선수나 감독에 대한 불만을 쏟아낼 때도 있었다. 욕하던 선수가 잘할 때면 미안해지기도 했다. 야구는 한낱 공놀이가 아니라 삶의 한 부분으로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
지난주 목요일(18일), 그는 올 시즌 처음으로 야구 중계를 보지 않았다. 가끔 점수는 확인했지만 애써 외면했다. 속으로 ‘에잇, 연패나 빠져버려라’는 생각도 했다. 그날은 김성근 에스케이(SK) 와이번스 감독이 구단으로부터 해고된 날이었다. 편지는 이렇게 마무리돼 있었다.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 야구팀만 응원한 게 죄일까요. 이젠 누구를 응원해야 할까요.”
인천 야구는 한이 많았다. 프로야구 출범 뒤 처음 인천에 연고를 둔 삼미 슈퍼스타즈는 꼴찌만 하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청보 핀토스도 마찬가지였다. 태평양 돌핀스는 다를 것이라 생각했지만 같은 길을 갔다. 제일 큰 상처는 현대 유니콘스였다.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궜지만 별안간 “서울로 가겠다”며 보따리를 쌌다. 예상치 못한 이별이었기에 충격과 배신감이 컸다. 많은 팬들이 야구장을 등졌다. 새로이 에스케이가 주인이 됐지만 생채기 난 인천팬들의 마음은 굳게 닫혔다. 2000년 에스케이 창단 첫 해 홈관중은 총 8만4563명이었다.
2007년 김성근 감독 부임 이후 인천 야구는 중흥기를 맞았다. 4년 동안 6할이 넘는 승률로 3번의 우승과 1번의 준우승을 일궈냈다. 어느 팀도 인천 야구를 쉽게 볼 수 없었다.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오락)의 합성어인 ‘스포테인먼트’ 전략을 내세운 구단의 마케팅과 팀 성적이 맞물리면서 홈관중은 이제 100만명을 향해 가고 있다. 20년 넘게 꼴찌의 설움과 잦은 이별을 경험한 인천팬들은 어느덧 ‘야구 절대 강자’라는 자부심을 갖게 됐다. 하지만 구단은 지난 4년 반동안 좋은 성적을 올린 감독을 시즌 도중 경질했다. 김성근 감독과 에스케이 야구를 사랑하던 팬들은 에스케이를 응원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은 묘한 처지에 빠져버렸다. 한창 숨가쁜 순위 경쟁에 빠져 있을 때인데 맥이 딱 풀려버린 꼴이다.
인천 야구팬들이 실망하는 것은 단순히 감독을 시즌 도중 잘랐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상처가 많은 도시에 또다른 상처가 덧대져, 옛 상처가 다시금 되살아났다. 에스케이도 인천을 거쳐간 과거의 구단과 다르지 않다는 극단적인 반응도 감지된다. 최근에 구단 누리집 팬게시판(용틀임마당)을 없애버린 것도 한몫했다.
에스케이 응원복을 입고도 에스케이를 응원하지 않는 팬들이 생겨났다. “이겨도 기쁘지 않다”는 이들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 구단의 진지한 고민을 기대해본다.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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