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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야구·MLB

용병으로 산다는 것

등록 2011-08-02 19:47

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야구
#1. 일본 선수 한 명이 계속 그를 무시했다. 교묘하게 자신을 ‘따’ 시켰다. 한두번은 그래도 참았다. 하지만 집요했다. 일본말로 해도 자신에 대한 험담을 하는 게 표정으로 느껴졌다. 결국엔 폭발했다. 라커룸에서 그 선수와 주먹이 오갔다. 다행히 이 사건은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으나 구단은 그에게 거액의 벌금을 매겼다.

#2. 경기 전 상대팀 훈련 시간에 잠시 딴 곳을 보고 있는데 다른 일본 선수가 “왜 상대 훈련을 보지 않느냐”며 대뜸 싫은 소리를 했다. 다른 외국인 선수들도 함께 있었건만 유독 그에게만 핀잔을 줬다. 평소에도 도미니카·멕시코·베네수엘라 출신 선수들과 한국 출신 선수들에 대한 차별을 느끼던 차였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다른 외국인 선수에게도 말 했느냐고 따졌더니 그 일본 선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국 선수들이 일본 프로야구 생활 때 겪은 일들 중 일부분이다. 한국 선수들은 일본 팀 내에서 철저히 검은 머리를 한 외국인 선수 대우를 받는다. 잘하면 영웅, 못하면 돈값 못하는 용병일 뿐이다.

선동열, 구대성과 함께 일본 야구 진출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이종범(KIA)은 “잘할 때는 목소리 톤도 부드럽고 살갑게 웃으면서 ‘리상’, ‘리상’ 하면서 떠받들어줬지만, 못했을 때는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무뚝뚝한 반말투로 말을 건넸다”고 회상했다. 이범호(KIA)나 이병규(LG) 또한 “잘할 때와 못할 때의 대우가 너무 달라서 중압감이 컸다”고 했다. “한 타석, 한 타석에서 뭔가 보여줘야 했기에 매번 타석에 서는 게 살얼음판 같았다”며 “매일 타석에 서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깨달았다”고도 했다.

축구, 농구 등 다른 구기 종목과 달리 야구는 거의 매일 경기를 한다. 시즌 동안 느끼는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이다. 한 선수는 “열번 중 아홉 번 잘하고 한 번 못해도 일본 선수들 사이에서 뒷말이 나왔다. 일본 생활 내내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이런 환경에서 8년째 일본에서 활약중인 이승엽(35·오릭스 버펄로스)은 대단한 정신력과 인내력을 갖고 있다고 하겠다.

김태균(29·지바 롯데)의 자발적 계약 해지를 바라보는 야구계 안팎의 시선은 다양하다. 누구는 정신적으로 너무 나약하다고 지적하고, 누구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한다. 이종범은 대선배로서 “일본 진출 첫해 성적이 괜찮았으니까 1년 더 했으면 좋았을 듯싶은데 안타깝다”고 했다.

앞으로 많은 특급 선수들이 일본 무대 진출을 노릴 것이고, 그 안에서 성공과 좌절을 골고루 맛보게 될 것이다. 설사 그들이 성공을 못하더라도 단순히 ‘실패자’로 볼 것은 아니다. 한국 야구에서 퇴출된 필 더마트레(미네소타 트윈스) 등이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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