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야구]
(5월은 가정의 달. 그러나 선수들에게는 어린이날도, 어버이날도 없다. 현역 최고참인 기아 이종범(41)도 8일 어버이날 통화 때 팀 버스를 타고 이동중이었다. 야구선수가 꿈인 큰아들 정후(12·광주 무등중)에게 하고픈 말이 많아 보였다. 편지체로 대신 전한다.)
정후야, 아빠는 지금 인천 원정경기를 끝내고 버스 안에 있단다. 광주에는 새벽에나 도착하겠구나. 아마도 자고 있겠지. 원정 떠나기 전에 “엄마 말 잘 듣고 동생하고 잘 지내” 하고 당부했었는데 잘 했으리라 믿어.
초등학교 3학년 때 네가 처음 야구 선수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아빠가 많이 반대했지? 아빠는 네가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하면 할수록 어렵고 힘든 야구를 한다는 게 썩 내키지가 않았단다. 더군다나 야구인 2세로 네가 앞으로 가질 부담감이 걱정도 되었단다. 하지만 네가 좋아하는 거니까, 정말 좋아하는 거니까 막지 않았단다. 지금은 네가 경기에 나가서 상을 타거나 좋은 성적을 내면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곤 한단다. 너는 자랑스러운 내 아들이니까.
지난 3월에 스프링캠프 끝나고 같이 목욕탕에 갔었지? 그때 우리 정후 보고 많이 놀랐단다. 중학교 1학년인데도 키가 165㎝ 가까이 되고 몸도 이제 제법 커졌더구나. 아빠가 일본에서 활약할 때 관중석에 앉아 열심히 응원하던 꼬마 정후는 이제 어디에도 없더라. 체격만 봐서는 아빠보다 더 야구를 잘할 것 같아 흐뭇하기도 해.
한달 전에 네가 운동장에서 야구 하는 모습을 봤어. 제법 하던걸. 앞으로 기본기만 더 잘 익히면 되겠더라. 감독님 말씀 잘 듣기를 바랄게. 아빠가 나서서 아무 얘기도 안해주는 게 섭섭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감독님 말씀이 우선이니까. 기본기가 잘 갖춰지면 실전 기술이나 그런 거는 야구 선배로서 나중에 가르쳐줄게. 고등학교 때 쯤이나 될까. 그래도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라도 물어보렴.
아빠는 배고파서 야구를 했어. 초등학교 6학년 때 프로야구가 출범했을 때 화려해 보이는 선수들을 보면서 야구라면, 야구 선수라면 우리 가족을 잘 먹고 잘 살게 해줄 거라는 간절함으로 죽기 아니면 살기로 악착같이 야구를 했지. 최고의 선수가 되면 집안도 일으켜 세우고 부와 명예도 쥘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니까. 헝그리 정신이라고나 할까. 물론 너는 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래도 정후는 야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아빠 어릴 적보다 나은 것 같아. 지금까지 힘들어도 야구 관두겠다는 말은 한 적이 없으니까. 야구 하면서 재미있어하는 모습을 보니 아빠도 좋다.
야구 하면서 앞으로 시련도 있을 거고, 아빠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스트레스도 많이 받게 될 거야. 그래도 네가 선택한 길이니까 계속 지금같이 즐기면서 야구 하기를 바랄게.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도 잊지 말고. 분명 넌 아빠보다 더 잘 할거야. 승부근성은 타고난 것 같으니까.
내 아들 정후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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