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기자
[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야구]
한달 전 쯤이다. 에스케이 와이번스 정근우의 둘째 아들 지완이의 돌잔치에 갔다. 정근우는 축의금을 아내 몰래 주섬주섬 한복 안으로 감추기도 하고, 첫째 아들 재훈이의 입가에 묻은 크림을 닦아주기도 했다. 지완이가 3번째 돌잡이로 야구공을 잡자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야구장에서는 야무진 선수지만 가족들과 함께 있으니 평범한 남편이요 아빠였다. 정근우는 “가족과 같이 있어줄 시간이 거의 없다. 볼 때마다 아이가 달라져 있어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고 했다.
돌잔치에 온 한 투수는 가정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결혼을 한 지 8년이 되어가는데 아이가 없다며 부러운 눈으로 정근우의 가족을 바라봤다. 그는 “내가 야구를 못해서 아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다. 그래서 아기도 안 생기는 것 같다”며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아기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씩씩한 표정으로 마운드에서 공을 뿌리던 그가 그런 아픔이 있는지 전혀 몰랐다.
롯데 양승호 감독은 요즘 문자메시지 테러에 시달리고 있다. 많게는 하루 400통씩 온다. 격려의 말도 있지만 욕이 대부분이다. 양 감독이 안전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문자 내용이 거칠다. 최근 어떤 구단 누리집에는 ‘선수 죽음 릴레이를 펼치자’는 살벌한 글이 올라왔다. 몇해 전 살인용의자로 자살한 모 선수 곁으로 가라는 내용이었다. 구단 직원의 초기 대응으로 삭제됐으나, 구단 누리집에는 오늘도 선수와 그의 가족들의 인격을 훼손하는 글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얼마 전 프로야구 휴식일인 월요일에 수도권 팀의 한 중심 투수가 다른 동료 투수와 골프를 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순간 부상자 명단에 올라 있는 그가 왜 골프장에 있는가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한번 더 생각해보면 부상자 명단에 있다고 해서 지루한 재활의 시간만 보내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싶다.
영화 <나를 미치게 하는 남자>에서는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남자 주인공이 나온다. 보스턴이 패한 날, 그는 세상 모든 것이 끝난 것과 같은 기분으로 맥주를 들이켜다가, 동료들과 함께 웃으면서 식사를 하는 보스턴 선수를 본다. 그러곤 깨닫는다. 야구가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야구장 밖에서는 선수도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결국 좋아하고 싫어해야 할 대상은 그라운드 안의 야구선수이지, 그라운드 밖의 생활인이 아니다. 야구선수는 야구선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일 뿐이다.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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