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로봇이 공 던져 관중들은 야유로 ‘화답’
대통령 등 정치인 위주서 연예인·일반인으로 변화
최근 손연재 ‘하이킥’ 눈길
대통령 등 정치인 위주서 연예인·일반인으로 변화
최근 손연재 ‘하이킥’ 눈길
미국프로야구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밀워키 브루어스의 경기가 펼쳐진 21일(한국시각) 시티즌스 뱅크 파크. 팔 하나와 3개의 바퀴로 이뤄진 로봇이 마운드에 올랐다. ‘필리봇’이라고 명명된 이 로봇은 힘차게 시구를 날렸지만 공은 땅바닥에 한차례 바운드된 뒤 포수 미트에 꽂혔다. 미국프로야구에서 로봇이 시구로 나선 것은 2005년 6월12일 피츠버그 파이리츠-볼티모어 오리올스전 이후 이번이 두 번째. 시구는 ‘인간’다워야 하기 때문일까? 로봇 시구 뒤 관중은 야유를 퍼부었다.
■ 야구 시구의 시작 최초의 야구 시구자는 오쿠마 시게노부 전 일본 총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와세다대학 창립자이기도 한 그는 1908년 고시엔에서 와세다팀의 경기에 앞서 첫 공을 던졌다. 미국야구에서는 윌리엄 태프트 대통령이 1910년 처음 시구를 했다. 태프트 대통령 이후 지미 카터를 제외하고 모든 미국 대통령이 메이저리그 개막전이나 올스타 게임, 혹은 월드시리즈 시구 경험이 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1940년 시구 때 <워싱턴 포스트>의 카메라를 박살내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현 미국 대통령도 지난해 대통령 시구 100주년을 맞아 워싱턴 내셔널스의 개막전 때 시구를 했다. 프로야구도 첫 시구자는 전두환 전 대통령(1982년 프로 원년 개막전)이었다.
■ 감동적인 애덤 킹의 시구 국내 프로야구 시구는 80년대 말까지 주로 정치인들이나 고위 관료가 맡았다. 1989년 4월8일 해태-빙그레 광주 개막전에서 영화배우 강수연이 공을 뿌리면서 시구 문화를 다양화했다. 야구인들이 가장 인상 깊은 시구자로 꼽는 것은 2001년 4월5일 잠실 개막전 때의 애덤 킹(한국 이름 오인호)이었다. 킹은 뼈가 굳고 다리가 썩는 선천적 중증장애를 갖고 태어나 부모에게 버림받고 미국으로 입양된 아홉살 소년이었다. 당시 티타늄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마운드에 선 뒤 씩씩하게 공을 뿌려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 일반인 시구 기회도 활짝 2000년 이후 여자 연예인 시구는 활발해졌다. 탤런트 홍수아는 이를 꽉 깨문 힘찬 시구로 메이저리거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본뜬 ‘홍드로’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이킥 시구는 2007년 천상지희의 스테파니가 처음 선보였다. 리듬체조 손연재는 최근 180도 가까운 하이킥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유명인만 시구를 하는 것은 아니다. 에스케이(SK)는 올 개막전에서 만학도 부부인 한철원(57)·문현숙(53)씨에게 시구와 시타를 맡겼다. 21일 문학 에스케이-엘지(LG)전 시구에서는 정보통신의 날을 맞아 남인천우체국의 권병우 집배원이 시구를 했다. 권 집배원은 4년 넘게 독거노인들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야구 시구자의 변화와 궤를 같이하는지도 모른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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