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기자
[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야구]
최근 미국 텍사스의 한 고등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야구부 선수 두명이 경기를 앞두고 어린 닭을 운동장에서 죽였다. 그들은 이유에 대해 함구했다. 하지만 추측은 가능했다. 바비 매킨타이어 야구부 코치는 “야구는 미신을 가장 많이 믿는 스포츠이다. 아마도 어린 선수들이 <메이저리그> 등을 따라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야구 영화 <메이저리그>에는 한 선수가 방망이를 잘 치기 위해 살아있는 닭을 제물로 바치는 장면이 나온다.
야구처럼 거의 매일 경기하는 스포츠일수록 엉뚱한 믿음은 많이 생긴다. 대표적인 것이 공수 교대 때 파울라인을 밟지 않는 것이다. 뉴욕 양키스 에이스였던 멜 스토틀마이어는 이런 믿음이 멍청하다고 생각, 하루는 의도적으로 파울라인을 밟고 경기에 나섰다가 큰 낭패를 봤다. 첫 타자가 자신의 정강이를 정통으로 때리는 타구를 날리는 등 5연속 안타를 두들겨 맞고 5실점을 떠안았다. 이후 그는 절대 파울라인을 밟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도 대부분 파울라인을 껑충 건너뛴다. 에스케이 김광현은 이에 대해 징크스가 아닌 어릴 적 경험에 의한 습관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즉, 아마추어 때는 선수들이 직접 파울라인을 그려야 해서 라인을 밟으면 선배들이 많이 혼냈다는 것. 이유야 어떻든 동서고금 막론하고 파울라인은 ‘밟아서는 절대 안 될 선’이 돼 있다.
잘나갈 때 수염 등을 깎지 않는 것도 유명한 징크스다. 제이슨 지암비(콜로라도 로키스)는 양키스 소속이던 2008년 초 콧수염을 기르면서 안타가 계속 터지자 몇달 동안 수염을 길렀다. 성적이 떨어지자 그는 곧바로 덥수룩해진 콧수염을 밀었다. 김성근 에스케이 감독도 작년 연승 때 수염을 깎지 않았다. 최근 김 감독은 수염과 관련된 새로운 징크스가 생겼는데, 홈구장인 문학구장에서는 절대 면도를 하지 않는 것이다. 삼성전(10일)에 앞서 생전 처음으로 문학구장에서 수염을 깎았다가 팀이 대패하는 것을 보고 생긴 믿음이다.
불운으로 끝난 면도 징크스도 있다. 90년대 후반 마이너리그 최고 유망주였던 론 라이트는 손목밴드를 차는 왼손목을 면도한 뒤부터 성적이 좋아지자 “앞으로 계속 왼손목을 밀겠다”고 선언했다. 5년 후인 2002년, 라이트는 가까스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지만 결과는 영 신통치 않았다. 왼손목을 밀고 선발 출전한 경기에서 첫 타석 삼진을 당했고, 두번째 타석에서는 흔치 않은 트리플 플레이를 경험했다. 세번째 타석에서도 병살타로 물러났다. 그는 다음날 트리플 A로 밀려났고 이후 단 한번도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지 못했다. 3타석 6아웃이 그의 통산 메이저리그 기록이 됐다. 어쩌면 그는 왼손목을 면도하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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