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기자
[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야구]
소년은 아버지 손에 이끌려 자주 전주 구장을 찾았다. 그가 목놓아 외치던 팀은 메이저 구단이 아니었다. 쌍방울 레이더스.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더 많았다. 그래도 쌍방울이 좋았고 야구가 좋았다. 야구 방망이 한자루가 갖고 싶어 가족 몰래 갓 태어난 강아지를 쌍방울 코치에게 안겨주기도 했다. 비록 강아지와 맞바꾼 게 부러진 방망이였지만 온 세상을 품은 듯 행복했다.
자연스레 공을 잡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선배들에게 시달릴 때면 힘들었지만 야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만큼 야구는 그의 마음을 요동치게 했다. 처음에는 다른 선수들처럼 어깨 위로 공을 던졌다. 그런데 전주고 2학년 때 그를 유심히 지켜보던 감독이 임창용처럼 옆으로 던져보라고 권했다. 이후 투구폼이 편해졌고 성적이 나기 시작했다.
2008년 여름, 박현준(25)은 에스케이 와이번스에 신인지명됐다. 그가 응원했던 쌍방울을 인수해 재창단된 팀이라 낯설지가 않았다. 신기하기도 했다. 관중석에서 응원했던 박경완, 김원형이 자신 눈앞에 있는 게 마치 꿈만 같았다. 티브이 안에 그대로 들어온 느낌이랄까. 전주고 선배이기도 했기에 그들은 살갑게 그를 대해줬다.
2010년 7월 그에게 변화가 생겼다. 엘지 트윈스로 트레이드됐다. 속상했다. 에스케이에서 뭔가 보여줄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현실은 냉혹했다. ‘정말 야구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버쩍 들었다. 다행히 등판기회는 에스케이 때보다 많아졌다. 겨울 동안 최계훈 투수 코치와 함께 릴리스 포인트를 고치는 연습을 매일 했다. 원하는 곳에 공을 뿌리는 요령을 점점 터득해갔다.
2011시즌 개막 1주일 전, 그는 개막 다음날 선발을 통보받았다. 기뻤고, 한편으로는 떨렸다. 준비 시간은 충분했다. 개막전에서 팀은 두산에 0-7, 영봉패를 당했다. 2차전 책임감이 무거웠지만 즐기려 했다. 6⅓이닝 6안타 무실점 승리. 가라앉은 팀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투구였다. 그는 다음 등판 때도 적어도 7회까지는 버티고 싶다.
기분좋게 첫 승을 올리고 쉬는 날, 박현준은 편한 친구와 놀이공원을 찾았다. 사실 그는 놀이기구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 전날만 해도 그는 최고 148㎞ 직구를 앞세워 파괴력 넘치는 두산 타자들을 힘으로 눌렀던 터. 하지만 그는 김동주, 김현수와 상대하는 것보다 놀이기구 타는 게 더 무섭다. 지기 싫어하는 그의 승부욕은 사물이 아닌 사람에게만 적용되나부다.
그의 부모가 고향에서 하는 가게에는 조인성, 이대형 등 엘지 스타 선수들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다. 그의 사진도 가게 한 편을 차지하고 있지만 다른 선수들 것에 비하면 초라하기만 하다. 쌍방울 키즈 박현준은 매일 꿈꾼다. 언젠가 그의 사진이 그 가게에 제일 크게 걸릴 그날을. 그날이 되면 그는 엘지 트윈스 부동의 선발 투수로 우뚝 서 있지 않을까.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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