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사다하루 일본 감독이 경기가 잘 풀리지 않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애너하임/연합뉴스
“안되네~” “……” “짐싸자”
9회말 2사 주자 1루, 2스트라이크 1볼. 홈런 한방이면 역전되는 긴장된 순간. 한국의 마무리 오승환이 힘차게 뿌린 공을 다무라가 홈런을 의식한 듯 온 힘을 다해 휘둘렀다. 배트는 허공을 갈랐고, 다무라의 오른 쪽 무릎이 땅에 닿았다.
그 순간 더그아웃에서 초조하게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한국 선수들은 “와!”하는 함성을 지르며 뛰쳐 나왔다. 박찬호와 이종범이 앞장섰고, 오승환을 중심으로 서로 부둥켜 안았다. 그리고 손을 마주치며 땅을 굴러댔다. 이미 세계 정상의 기쁨이었다.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민국”을 외치던 1만여 한국동포들도 서로 부둥켜안고 조국의 승리를 만끽했다. 선수들은 손에 태극기를 들고 경기장을 한바퀴 크게 돌며 4강 진출을 자축했고, 김인식 감독은 쏟아지는 축하 인사에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반면, 일본의 더그아웃은 침통하기 그지없었다. 오 사다하루 감독은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이 입을 꽉 다문 채 눈만 껌벅거리며 허공을 쳐다봤다. “30년 동안 일본을 이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공언을 했던 스즈키 이치로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분에 못 이긴 듯 큰 소리로 욕을 내뱉고 고개를 돌렸다. 이치로는 또 8회초 파울공을 놓치고도 관중을 탓하는 행동을 하는 등 대스타로서의 절제를 잃은 모습을 보였다.
다른 선수들도 더그아웃에서 턱을 괸 채 아무 말 없이 승리를 기뻐하는 한국 선수들을 바라보다가 말 없이 빠져 나갔다.
이 와중에서 한국의 서재응은 태극기를 마운드에 갖고 올라가 마운드 정상에 꽂으며 승리의 기쁨을 표시했다. 관중도 한국 야구가 사실상 세계 정상에 올랐다는 것을 알리는 서재응의 상징적인 행동에 박수로 화답했다.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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