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천부적인 해결사였고 '아시아 홈런왕'이라는 수식어가 이날따라 더욱 빛나 보였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대표팀 부동의 홈런타자 이승엽(30.요미우리)이 전매특허인 대포를 애너하임시 창공에 쏘아올리며 한국의 4강행에 환한 불을 밝혔다.
이승엽은 1회 1사 1루에서 멕시코 선발 로드리고 로페스(볼티모어)와 풀카운트 접전 끝에 몸쪽으로 떨어지는 84마일(135Km)짜리 체인지업을 가볍게 걷어올려 에인절 스타디움 우측 깊숙한 곳을 넘어가는 결승 투런포(비거리 115m)를 작렬시켰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15승(12패)을 거둔 로페스를 상대로 첫 만남에서 홈런포를 앗아낸 이승엽은 메이저리그 관계자와 스카우트의 이목을 모으면서 올 시즌 후 추진할 빅리그 재도전에도 상당한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점쳐진다.
지난 4일 중국과의 예선전에서 홈런 2방을 몰아친 이후 3경기 연속 대포 행진이다. 또 5일 일본전에서 패색이 짙던 8회 역전 결승 투런포를 터뜨린 뒤 다음 게임 첫 타석에서 나온 연타석 홈런이었다.
'도쿄대첩'을 이끈 뒤 미국으로 넘어온 이승엽은 시차 적응에 고전하며 메이저리그 두팀과 가진 평가전에서 8타수 1안타에 그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도 했으나 결정적인 순간 홈런포를 가동하며 해결사로서의 본능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이날 홈런으로 4홈런에 9타점을 올리며 도미니카공화국의 애드리언 벨트레(시애틀)과 홈런, 타점 부분 공동 선두로 올라선 이승엽은 "크게 스윙한다는 생각보다 가볍게 치려는 생각으로 들어섰고 마침 좋은 코스에 공이 떨어졌다. 타이밍도 좋았다"고 말했다.
오른손 거포인 김동주가 어깨 탈구로 이탈하고 최희섭(LA 다저스), 이진영(SK) 등 중심타선이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이승엽이 느끼는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시드니올림픽 때와 마찬가지로 꼭 한 방이 필요할 때 어김없이 영양가 만점의 장타를 날리면서 이승엽은 '국민타자'로서 확실한 반열에 올라섰다.
타선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득점력 고갈에 고심하고 있던 한국 코칭스태프는 '이종범 출루, 이승엽 타점' 득점공식이 자리잡히면서 그나마 한 시름을 덜었다.
지난해 일본프로야구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30홈런, 82타점을 거두며 팀내 홈런,타점 1위를 석권한 이승엽은 이 성공을 바탕으로 일본 최고 인기팀 요미우리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었다.
그는 스프링캠프에서도 괴력의 장타 실력을 선보였으나 메이저리거 출신 조 딜런(30)과 주전 1루 경쟁에서 우위 판정을 받지 못하고 WBC 팀에 합류한 터라 약간 떨떠름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WBC에서 연일 맹타를 터뜨리며 쾌조의 타격감을 유지하고 있는 이승엽은 한 단계 진화한 타격 실력을 바탕으로 팀 복귀 후에도 주전 자리를 무난히 따낼 것으로 전망된다.
장현구 기자 cany9900@yna.co.kr (애너하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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