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한국과 호주의 2023 세계야구클래식(WBC) 1라운드 조별리그 1차전. 한국이 4-5로 역전 당한 7회말 1사 뒤 강백호(kt)가 최정(SSG) 대신 타석에 들어섰다. 강백호는 KBO리그에서도 뛴 적이 있는 워릭 소폴드(KBO리그 활약 당시 등록명 워윅 서폴드)를 상대로 좌중간으로 큼지막한 타구를 날렸다. 추격의 불씨를 살리는 2루타였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2루에 안착한 강백호는 동료들이 있던 3루석을 향해 힘차게 기쁨의 세리머니를 했다. 역전을 당한 뒤 가라앉은 팀 분위기를 되살리려는 의도된 몸짓이었다. 그 순간 호주 2루수 로비 글렌디닝이 강백호를 태그한 뒤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다. 비디오 분석 결과 세리머니를 하던 강백호의 발은 베이스에서 떨어져 있었다. 강백호는 태그아웃이 됐고 1사 2루가 됐을 상황은 2사 주자 없음으로 바뀌었다. 초유의 세리머니 태그아웃이었다.

글렌디닝은 7회초 한국 바뀐 투수 김원중을 상대로 역전 3점포를 터뜨린 주인공이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마이너리그 더블 A에서 22홈런을 터뜨렸던 선수다. 글렌디닝은 경기 뒤 공식 인터뷰에서 “예전에 주자가 베이스에서 떨어졌을 때 태그아웃을 한 적이 있었다. 어쩌면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면서 “태그를 할 때 그(강백호)가 베이스를 밟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화면이 확실하게 보여줄 것을 알았기 때문에 코칭 스태프에게 단호하게 비디오 판독을 요청할 수 있었다”고 했다.

데이브 닐슨 호주 대표팀 감독은 “사실 나는 그 순간을 놓쳤다”면서 “로비 혼자서 태그아웃을 만들어냈는데 그 장면이 경기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훌륭한 선수에 의한 훌륭한 순간이었다”고 칭찬했다.

그라운드 위에서 수비수는 주자의 움직임을 끝까지 주시해야만 한다. 주자는 끝까지 베이스는 밟고 있어야만 한다. 글렌디닝은 수비 기본을 지켰고 강백호는 주루 기본을 망각했다. ‘기본’의 차이가 총력으로 맞선 호주와 한국의 희비를 갈랐다고 하겠다. 글렌디닝은 “오늘 친 홈런도 그렇고 경기가 팽팽한데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이어가니까 할 수 있었다”고 했다.

호주의 ‘포기하지 않는 정신’에 한국은 2013년, 2017년에 이어 3회 연속 WBC 1라운드 탈락 벼랑 끝에 몰렸다.

도쿄/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