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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공 놓고, 왼손으로 잡은 라켓…“휠체어테니스가 절 살렸어요”

등록 2022-06-23 11:00수정 2022-06-23 11:38

[‘찐’한 인터뷰] 휠체어테니스 국가대표 김명제
두산 투수 유망주 교통사고
격한 종목 휠체어테니스 접해
왼손잡이 변신하고 성적도 올라
동기 이원석·최정 등 연락 이어와
휠체어테니스 선수로 변신한 김명제가 8일 서울 송파구의 한 커피숍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했다. 김명제는 짧은 거리 이동에는 휠체어를 타지 않는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휠체어테니스 선수로 변신한 김명제가 8일 서울 송파구의 한 커피숍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했다. 김명제는 짧은 거리 이동에는 휠체어를 타지 않는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공을 받고, 또 받고. 그러다가 손바닥이 찢어졌다. 피가 흘렀다. 그 순간, 생각했다. ‘나, 지금 살아있구나. 내 심장은 아직 뛰고 있구나.’

신인 계약금 6억원을 받고 프로(두산 베어스)에 입단(2005년)한 야구 유망주였던 김명제(35·스포츠토토)는, 2010년을 나흘 앞둔 그 날의 돌이킬 수 없는 선택으로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됐다. 음주 교통사고로 경추 2개가 골절되면서 다시는 마운드에 오를 수 없었다. 악착같이 재활에 매달렸지만 더 이상 옛날 같은 몸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야구공이 참 많이 무겁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2014년 장애인 직업학교에 서류를 내는데 27살 나이에 경력란에는 아무것도 쓸 것이 없었다. “사회인으로서 김명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무렵 휠체어테니스를 접했다. 운동했던 몸이라서 제법 빨리 습득을 했고 1년도 채 안 돼 국가대표 태극마크를 달게 됐다. 2018 인도네시아장애인아시안게임 휠체어테니스 쿼드(사지 중 세 곳 이상 장애가 있는 종목) 복식 경기에서는 은메달도 땄다.

하지만 한계를 느꼈다. 사고 여파로 오른손 엄지, 검지에 온전한 힘이 들어가지 않아 경기 때마다 손에 라켓을 쥐고 붕대를 칭칭 감았는데 가끔 피가 통하지 않았다. 김명제는 “경기가 오래 진행되면 될수록 상대가 아닌 내 오른팔하고 싸우고 있더라. 너무 고통이 심했다”고 했다.

작년 9월 열린 도쿄패럴림픽 휠체어테니스 쿼드 종목 복식 경기에서 왼손으로 경기를 했던 김명제.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작년 9월 열린 도쿄패럴림픽 휠체어테니스 쿼드 종목 복식 경기에서 왼손으로 경기를 했던 김명제.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그래서 결심한 것이 왼손잡이 변신이다. 오른손잡이에 오른손으로만 야구 했고, 오른손으로 휠체어테니스를 시작했던 그였다. 김명제는 “오른손으로 할 때는 야구 할 때만큼 열심히 안 하는 게 나 자신도 느껴졌다. 2020년부터 손을 바꿨는데 지금은 아주 편해졌다. 그래도 아직은 중학생 레벨 정도밖에 안 된다”고 했다. 그나마 중·고교 시절에 장난삼아 왼손으로도 던져봤기에 많이 어색하지는 않다.

노력의 결실인지 최근 참가한 터키 국제 대회에서는 처음으로 단식 결승에 올랐다. 결승 때 지고서 너무 분해서 라켓을 부수기도 했는데 사실 오른손으로 칠 때는 단식 4강에도 오른 적이 없다. 김명제는 “지금 세계 랭킹이 18위다. 오른손으로 쳤을 때는 21위가 최고 순위였다”고 했다. 세계 랭킹이 오르니까 욕심이 제법 날 법도 하지만 그는 “기본기가 안 된 상태에서 너무 성급하면 기교만 늘게 된다. 더 길게 보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갈 것”이라고 했다.

휠체어테니스는 장애인 스포츠 중에서도 힘든 종목 중 하나로 꼽힌다. 땡볕 아래서 휠체어를 다루면서 한 손으로는 라켓을 쥐고 공을 받아내야 한다. 국내에 선수 저변이 얕은 이유다. 김명제는 “휠체어테니스를 야구와 비교하면 서브할 때는 투수 같고, 공을 받아 쳐낼 때는 타자 같다”면서 “휠체어테니스 선수로 1등이 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 위치에서 열심히 하다 보면 성과는 따라올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그는 일단은 2028 엘에이(LA)패럴림픽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가려는 목표를 정했다.

돌이켜보면, 프로야구 선수 시절에는 하루도 편한 적이 없었다. 고액 계약금에 따른 구단과 팬의 기대치가 그를 내내 짓눌렀다. 고교 시절 이후 그의 공이 좋다고 느껴본 적도 없다. 공황장애약은 그때부터 먹기 시작했다. 사고 나기 직전, 야구가 즐거웠던 때도 있었다. 안 좋았던 버릇이 잡히고 원하던 곳에 공이 쏙쏙 박혔다. “야구에 대한 자신감이 처음 느껴졌을 때” 그만 사고가 났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전적으로 그의 잘못이다. 한때는 야구 경기 자체를 멀리했지만 지금은 휴식 시간에 야구 데이터를 살펴본다.

두산 베어스 소속의 오른손 투수였던 김명제. 연합뉴스
두산 베어스 소속의 오른손 투수였던 김명제. 연합뉴스

프로 동기들과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는다. 최근에는 이원석(삼성 라이온즈)이 에프에이(FA) 재계약 기념으로 고가의 휠체어를 선물해줘 이동이 한층 편해졌다. 김명제의 꿈은 그가 뛰었던 두산 베어스와 친구인 최정이 속한 에스에스지(SSG) 랜더스가 맞붙었을 때 시구를 하는 것이다. 스스로 내건 조건은 있다. 내년으로 연기된 “항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딴 다음”이다.

김명제는 휠체어테니스를 “나를 살려준, 내가 살아있음을 다시 느끼게 해준 것”이라고 정의한다. “야구가 내 심장을 처음 뛰게 한 스포츠라면 휠체어테니스는 나에게 두번째 심장을 줬다”고 했다. 그만큼 잘하고 싶다.

김명제가 오른손으로 꿈꾸던 세계는 한순간 잘못으로 와르르 무너졌다. 그는 이제 왼손으로 다른 세계의 문을 열려고 한다. 심장이 다시 뛰는 것을 느끼면서 마운드가 아닌 코트에서, 두 발이 아닌 두 바퀴로 그는 지금 삶의 불꽃을 태우고 있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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