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학 온 외국인 여자프로 기사가 바둑계 미투 폭로를 했다. 여 기사가 밝힌 상황이 구체적이고, 내용도 충격적이어서 파문이 예상된다.
이 외국인 여자 기사는 최근 프로기사회 전용 비공개 게시판에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 프로기사에게 성희롱과 성폭력을 당했다고 썼다.
그는 “요즘 미투 행동 때문에 옛날 기억이 다시 돌아왔다. 어떻게든 잊으려고 했던 시간인데…역시 그럴 수 없다”라고 시작한 글에서, 2009년 선배 기사인 김 아무개 9단에게 당한 일을 소상하게 적었다.
그는 2009년 6월의 일이라며, “저녁 초대를 받아서 (김 아무개 9단의) 집에 갔다. 함께 초청받은 미국의 친구가 피곤해서 오지 않겠다고 해 혼자 기다리다가 술을 마셨다. 이후 피곤해서 그곳에서 잠들었는데 정신이 들어왔을 때 누가 얼굴을 가까이 대고 키스를 하려고 했다. 옷은 모두 벗겨져 있었다”며 그날의 상황을 설명했다.
여자 기사는 “나는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고 무서움을 느꼈다”며 “바둑TV에서 그 사람 목소리가 들리면 채널을 돌린다. 학생들이 바둑TV를 꼭 보겠다고 하면 소리라도 없애라고 했다”고 적었다.
김 아무개 9단은 방송에서 해설을 맡고, 프로리그 감독을 역임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해왔다. 김 아무개 9단의 얘기를 듣고 싶어 접촉을 시도했으나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한국기원 쪽은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외국인 여자 기사는 한 프로기사가 운영하는 도장의 부원장으로 바둑 유망주를 가르치고 있다. 또 이번 미투 고발을 하기 위해 동료 여자 기사 여섯명이랑 상의를 한 뒤 용기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그냥 나만 마음을 강하게 먹으면 잊고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러기를 바랐다”며 “그러나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텔레비전에서 미투 얘기 나올 때 옛날 일이 생각나고, 옆 사람들도 미투 얘기할 때 그 날 일이 생각나는 등 하루하루가 괴로운 시간이었다”고 토로했다. 또 “당시에는 가장 친한 친구 기사에게 얘기했다. 그러나 이 일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렸고 무서웠다. 그냥 그 사람을 피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고 덧붙였다.
파문이 커지자 한국기원은 17일 미투 운동 대응을 위한 임시 운영위원회를 열고 윤리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한국기원 이사인 임무영 대전고검 검사가 윤리위원장을 맡았고, 남녀 프로기사들이 위원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윤리위는 미투 관련 의혹의 사실관계를 확인해 단호하고 엄정한 조처를 내릴 예정이다. 또 여자 기사에 대한 2차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미투 고발을 한 여자 기사 쪽은 “김 아무개 9단과 마주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