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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변칙 강수에…알파고 고장난듯 3차례 이상 ‘떡수’

등록 2016-03-13 19:49수정 2016-03-13 20:41

이세돌 9단이 13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AI) 알파고와 5번기 4국에 앞서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구글 제공
이세돌 9단이 13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AI) 알파고와 5번기 4국에 앞서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구글 제공
인간-인공지능 ‘세기의 대결’

‘기계고장’ 비쳐질 이상한 수 연속
이세돌 불같은 의지로 승리
“부담 덜었다…5국도 승리할 것”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대단하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1~4번 대국을 지켜본 프로기사들은 이세돌 9단의 반격을 반겼다. 김만수 8단은 “5개월전 판후이 2단과의 대결 기보로만으로 알파고를 판단했다가 1~3국 낭패를 봤다. 그러나 이세돌 9단이 불같은 의지로 승리를 거뒀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사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은 이세돌 9단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추형석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1월 네이처지에 나온 설명만으로는 보통의 컴퓨터 바둑프로그램처럼 1~2초 간격으로 둘 경우 2~5단이라고 했다. 생각시간이 2시간으로 늘었다고 하지만 이 정도로 강력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실제 충격적인 3연패로 가장 타격을 입은 것은 이세돌 9단이다. 세계 최강이라는 이 9단은 알파고를 이겨야겠다는 일념으로 3국부터는 프로기사로서는 잘 두지 않는 위험천만한 강수를 연발했다. 4국에서는 알파고가 엄청난 손해를 불러오는 ‘떡수’를 3 차례 이상 두었기에 승기를 잡았다. 알 수 없는 상대를 향해 실험대상이 된 듯한 그가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팬들은 안쓰러움마저 느꼈다.

기계와 인간의 대국이라는 전혀 새로운 대국 방식은 인간에게 절대 유리하지 않았다. 알파고를 대신해 바둑판 앞에선 이는 구글딥마인드 직원인 아자 황 박사다. 아마 6단의 실력이라고 하지만 그는 이세돌 9단을 쳐다보지 않고 왼쪽의 컴퓨터 모니터만 주시한다. 바둑돌을 놓을 때는 고수의 손맛이라기보다는 초급자가 두듯 한다. 이런 분위기도 이세돌한테는 매우 낯선 것이다. 5시간 동안 한번도 화장실을 안 간다. 때문에 평균 2차례 자리를 비우는 이세돌은 거의 5~6분의 시간을 까먹을 수밖에 없다.

생각 시간을 2시간 준 것도 인간보다 컴퓨터에게 유리했다. 40대의 컴퓨터에 1200여개의 중앙연산처리장치와 200여개의 그래픽카드를 장착한 알파고의 인공신경망은 초당 수만개의 확률을 연산하는 데, 평균 1분 정도를 돌려야 이기는 수를 찾아낸다. 추형석 선임연구원은 “무조건 30초 안에 두는 판후이와 알파고의 비공식 속기대결에는 알파고가 3승2패로 두번 진 적이 있다. 그래서 이세돌과의 대국에서는 생각시간을 늘렸을 것”이라고 했다.

프로기사들은 대국 전 상대 기보를 연구한다. 그러나 알파고의 기보는 판후이 2단과의 기보밖에 참고할 자료가 없었다. 조혜연 9단은 “상대를 모르고 두는 것과 똑 같다. 베일에 가린 상대를 만난 것과 같다”고 했다. 구글의 대국 제안을 가볍게 받아들인 것이 이세돌 9단이라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그러나 한국기원이 좀더 심사숙고하지 못한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구글의 행태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영국 뉴캐슬대학에서 전산학을 강의하는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는 “아이티(IT) 세계에서는 생리상 소프트웨어의 ‘성능’을 평가하는 과정을 수반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인간을 대상으로 이벤트하듯이 소프트웨어를 실험하는 것은 과학철학적 측면에서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기계와 인간의 대결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김만수 8단은 “기존에 효율적으로 생각했던 정석이나 수순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졌다. 바둑의 새로운 발전을 위한 새로운 자극이 될 것”이라고 했다.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딥마인드 최고경영자도 “알파고의 승리가 바둑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질병의 사전예방 등 건강관리나 기후변화 연구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세돌 9단은 이번 대국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자신의 바둑 기풍을 버리고 알파고의 약점을 파악하기 위해 우악스런 수도 두었다. 4국에서도 알파고가 ‘기계 고장’으로 비쳐질 이상한 수를 연속해두자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이세돌 9단은 “1~3국과는 달리 마음의 부담을 털었다. 5국에서도 승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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