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에서 구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5번기 제3국 맞대결에 패한 뒤 대국장을 나서며 머리를 만지고 있다. 2016.3.12 연합뉴스
완생(完生;완전히 삶)으로 살던 ‘쎈돌’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벽에 부딪혔다.
이세돌 9단은 12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와 세번째 대국을 펼쳐 176수 만에 흑 불계패했다.
1·2국 패배에 이은 3연패다. 이로써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세기의 대국’은 알파고의 승리로 끝났다. 이번 대국에서는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5번기를 벌여 3판을 이기는 쪽이 승리한다.
이세돌 9단은 세계 최고의 바둑기사로 인정받으며 알파고의 도전에 맞설 상대로 선정됐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는 이세돌 9단이 10년 이상 세계 최정상 자리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그와 알파고의 대국을 원했다.
1983년 전남 신안군 비금도에서 태어난 이세돌 9단은 고향에서 바둑 신동으로 불리다가 8세에 서울에서 바둑 유학을 했다.
12세인 1995년 입단, 2000년 제5기 박카스배 천원전 우승으로 생애 첫 타이틀을따낸 이세돌 9단은 2002년 제15회 후지쓰배에서 처음으로 세계대회 정상에 올라섰다.
20세인 2003년에는 32연승을 달리며 ‘불패소년’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해 LG배 세계기왕전에서 당시 세계 1인자인 이창호 9단을 꺾으면서 세계 최고 자리에 올라섰다.
이후 중국 랭킹 1위 커제 9단과 한국 랭킹 1위 박정환 9단 등 새 강자들의 도전을 받고 있지만, 이세돌 9단은 쉽게 물러서지 않으며 자신의 시대를 이어가고 있다.
그만큼 이세돌 9단의 패배는 충격적이다. 눈부시게 발전한 인공지능의 습격에 인류 대표가 첫 세 판을 내리 지면서 최종 패배했기 때문이다.
이는 이세돌 9단도 예상치 못한 결과다. 그는 알파고의 도전을 받아들이면서 “한 판을 지느냐 마느냐의 문제”라며 자신의 완승을 점쳤다.
그러나 알파고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이세돌 9단도 긴장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세돌 9단은 첫 대국 전날 기자회견에서 알파고의 원리에 관한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CEO의 설명을 듣고나서 “아직도 여전히 자신감은 있다”면서도 “5대 0으로 승리하는 확률까지는 아닌 것 같다”며 자신감 수위를 조금 낮췄다.
9일 제1국에서 이세돌 9단은 알파고에 ‘충격의’ 흑 불계패를 당했다. 알파고는 생각보다 무척 강했다. 이세돌 9단은 “진다고 생각 안 했는데, 너무 놀랐다”며 앞으로의 승리 가능성을 “5대 5”로 봤다.
10일 제2국에서도 백 불계패를 당했다. 2연패는 2연패 대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1국에서는 심리적으로 무너진 모습을 보였고, 2국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가는 작전을 펼쳤다.
그러나 알파고는 여전히 허점을 보이지 않으며 이세돌 9단의 백기를 이끌어 냈다. 이세돌 9단은 “알파고는 완벽한 바둑을 뒀다”며 완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이세돌 9단에게 더 큰 동기부여가 됐다. 이세돌 9단은 친한 프로기사들과 함께 밤을 지새우며 알파고를 연구했다.
비장한 표정으로 알파고와 다시 마주한 이세돌 9단은 1·2국과 달리 초반부터 굉장히 전투적인 바둑 전략을 펼쳤지만, 이번에도 스스로 돌을 거둬야 했다.
결국 이세돌 9단은 최종 승리를 알파고에 내줬다.
그러나 이세돌 9단에게는 아직 두 판의 기회가 더 있다. 남은 제4·5국에서 알파고를 이겨 아직 인간이 인공지능에 완전히 제압되지 않는다는 모습을 보여줄 기회다.
전문가들은 완벽한 계산으로 ‘이기는 바둑’을 두는 알파고를 넘어서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넘는 것’과 같다고 본다.
정상에서 인공지능이라는 벽에 부딪힌 이세돌 9단은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새로운 도전 과제를 받아 들었다. 최고의 자리에서도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한 아름다운 도전이다.
이세돌 9단의 스승 권갑용 8단은 “진다는 건 승부사의 시각에서 유쾌하지는 않지만, 이번 대국은 넓은 시각에서 문화와 과학의 싸움”이라며 “이세돌은 여기까지 승부하는 것 자체로도 승자라고 생각한다”고 응원했다.
연합뉴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