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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은 대 조혜연…여기사 첫 500승 금자탑은 누가

등록 2014-03-20 19:37수정 2014-03-20 22:53

박지은(왼쪽)과 조혜연(오른쪽)
박지은(왼쪽)과 조혜연(오른쪽)
저변 얇은 여자바둑에선 대기록
상반기 중 두사람 가운데 나올듯
488-485.

여자 기사 최초의 500승 돌파를 향해 오랜 두 라이벌이 달리고 있다. ‘여전사’ 박지은(31·사진 왼쪽) 9단과 ‘팔방미인’ 조혜연(29·오른쪽) 9단이 그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똑같이 지금까지 855판의 대국을 했다. 그리고 박지은이 488승(365패·2무), 조혜연이 485승(369패·1무)을 거둬 500승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24일 개막하는 물가정보배와 4월 엘지(LG)배 통합예선, 5월 여류명인전 등이 있어 상반기에 500승 달성이 예상된다.

남자 기사 중에는 ‘조-서 시대’를 열었던 전통의 라이벌 조훈현 9단(1274승)과 서봉수 9단(1210승)이 일찍이 1000승을 돌파한 바 있다. 500승을 기록한 기사만 45명이다. 그러나 아직 뿌리가 얕고 저변이 얇은 여자 바둑의 통산 500승은 1000승 이상의 가치가 있다.

‘외골수’ 박지은 488승
중학 자퇴뒤 연구생 돼 바둑만 고집
한국 첫 여자 ‘입신·’ 세계 우승 기록

‘팔방미인’ 조혜연 485승
연구생 과정없이 여자 최연소 입단
학업·바둑보급 앞장서며 광폭행보

1997년 같은 해에 입단한 두 사람은 10대 시절 루이나이웨이 9단의 아성을 넘기 위해 함께 경쟁하며 지난 십수년간 한국 여자 바둑의 대표적인 라이벌 관계를 형성해왔다. 최근 최정(18) 4단, 오유진(16) 초단 등 어린 기사들이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며 두 사람의 라이벌 관계는 다소 퇴색된 면이 있다. 그러나 통산 500승은 어린 기사들의 실력이 제 아무리 뛰어나다해도 쉽게 넘보지 못할 대기록이자 하나의 이정표다. 오랫동안 바둑계에서 켜켜이 쌓아온 시간의 깊이다. 박지은이 30대에 접어들었고 조혜연은 승부 외에 보급과 학업 등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면서, 500승 고지를 향한 경쟁은 어쩌면 두 라이벌의 마지막 승부가 될지도 모른다. 조혜연은 “여성 최초 9단은 지은 언니가 차지했으니 첫 500승에는 욕심이 난다. 지은 언니가 강하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고, 박지은도 “승수에 연연하지 않지만 500승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며 의욕을 냈다.

■ 앞서거니 뒤서거니 먼저 주목을 받은 것은 조혜연이다. 어린 시절 조혜연은 재능 만큼은 이세돌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을 들었다. 보통의 프로 기사들이 유명 도장의 문하생, 한국기원 연구생의 과정을 밟는 것과 달리 조혜연은 독학으로 바둑을 공부해 인터넷 바둑으로 실력을 쌓아 입단한 특이 케이스였다. 1997년 4월, 조혜연은 11살10개월의 나이에 제11회 여류입단대회를 통해 프로에 입문했다. 여자 최연소였고, 9살7개월에 입단한 조훈현 9단과 11살1개월에 입단한 이창호 9단에 이어 역대 세번째 최연소 입단이다.

7개월 뒤 박지은이 같은 대회를 통해 프로에 발을 디뎠다. 입단은 늦었지만 한국 최초의 여자기사 입신(9단의 다른 말) 등극은 박지은의 차지였다. 박지은은 2008년 원양부동산배에서 루이나이웨이를 물리치고 우승하며 9단으로 승단했다. 한국 최초이자 세계에서 3번째 여자 입신이었다. 첫 세계대회 우승과 여자기사 최초 국가대표 선발도 박지은의 차지였다. 조혜연은 박지은과 함께 출전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여자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박지은보다 2년 뒤 9단이 됐다.

■ 외골수 vs 팔방미인 두 사람의 다른 스타일 만큼이나 바둑 인생도 확연히 달랐다. 조혜연이 자신의 재능을 주체하지 못했던 천재형이라면, 박지은은 바둑 한길만 고집한 외골수였다. 11살때 바둑 애호가인 아버지를 통해 처음으로 바둑을 배운 박지은은 프로의 꿈을 꾸면서 학업도 중단하고 한국기원 연구생이 됐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어린 아이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릎쓰고 학업을 중단한 채 바둑에 자신의 인생을 건 것이다. 기풍조차 이런 박지은의 고집스런 성격을 닮아 공격적이고 매서웠다. 그래서 ‘여전사’, ‘여자 유창혁’ 같은 별명을 얻기도 했다. 박지은은 자신의 바둑 인생을 “잘나갈 때도 있었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잘 견디면서 오랫동안 후회없이 해왔다”고 돌아봤다. 많은 여자기사들이 결혼을 계기로 승부를 접거나 방송 쪽으로 가는 것과 달리 박지은은 18년째 반상을 지키며 488승을 거뒀다.

반면 조혜연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바둑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조혜연이지만, 일요일에 대국 일정이 잡힌 2005년 마스터스 대회 여자부 결승전을 종교적인 이유로 기권한 것은 조혜연의 바둑인생에 중요한 사건이었다. 조혜연은 이후 일요일이 대국일정에 포함된 모든 대회에 불참하며 자신의 신념을 지켰다. 조혜연은 “아쉽기는 하지만 후회는 없다. 오히려 신앙에 어긋나게 일요일 대국을 했다면 오히려 지금 만큼의 실력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능도 많고 호기심도 많은 조혜연은 승부 외에 다방면에서 재능을 발휘했다. 학업을 계속하며 대학원까지 진학했고, 뛰어난 외국어 실력으로 해외 바둑 보급에도 기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조혜연은 “바둑없는 인생은 상상할 수 없다”며 바둑판 앞에서만큼은 언제나 최선을 다했고 어느덧 485승을 거뒀다.

■ 여자 바둑 역사는 이제 시작 박지은은 여자가 살아남기 힘든 바둑계에서 승부사 외길을 걸어왔고, 조혜연은 침체된 바둑의 부활과 보급을 위해 여러 곳에서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남성이 주도했던 수천년의 바둑 역사에서 여자 바둑은 이제 막 시작일지도 모른다. 김성룡 9단은 “여자 바둑의 저변은 남자 바둑의 100분의 1수준이다. 그러나 루이나이웨이가 여자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조혜연과 박지은이 한국 여자 바둑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최정 같은 어린 기사들이 꿈을 꿀 수 있었다”며 두 라이벌이 여자 바둑 발전에 기여한 바를 높이 평가했다. 두 사람이 세울 통산 500승 고지는 어린 후배들에게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사진 한국기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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