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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바둑

우정은 우정일 뿐
반상의 ‘끝장승부’

등록 2013-11-28 19:36수정 2013-11-28 22:49

이세돌(30) 9단
이세돌(30) 9단
이세돌-구리 ‘세기의 10번기’ 확정
내년 1~10월 매달 한 차례씩 대결
6번 먼저 이기면 8억7천만원 독식
‘절친’이지만 자존심 건 혈투 기대
“설령 패해 정상에서 추락한다고 해도 원망하거나 후회하진 않을 것이다.”(이세돌 9단)

“이세돌과의 대결이 기대된다. 그와는 60살이 될 때까지 반상에서 겨루고 싶다.”(구리 9단)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세기의 바둑 라이벌 이세돌(30) 9단과 구리(30) 9단의 10번기가 드디어 확정됐다. 중국의 가구회사 헝캉의 니장건 회장과 한국기원 양재호 사무총장, 중국기원 류스밍 원장은 24일 중국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몽백합배 이세돌-구리 10번기’의 일정을 발표했다. 내년 1월26일 중국 베이징 1국을 시작으로 10달 동안 매달 마지막 일요일 열린다. 중국에서 9번, 한국(4월27일)에서 1번 개최된다. 이세돌은 “두려운 것은 패배가 아니라 내가 바라는 바둑을 두지 못하는 것이다. 두려움을 즐기면서 임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구리는 “이세돌 9단에게 결승에서 1번 이기고 2번 패했으니 이번 10번기에서는 반드시 이길 것”이라며 전의를 불태웠다.

구리(30) 9단
구리(30) 9단

각자 제한시간 4시간에 1분 초읽기 5회씩이 주어지는 이번 대결의 승자는 500만위안(약 8억7000만원)을 독식한다. 패자는 여비 20만위안(3500만원)을 받는다. 5승5패로 비긴다면 상금은 절반씩 챙긴다.

■ 우칭위안 이후 가장 치열한 10번기 10번기는 연속 10번을 두기 때문에 실력 차이를 뚜렷이 나타낼 수 있다. 진 쪽의 자존심은 산산이 조각난다. 가장 유명한 10번기는 ‘살아있는 기성’으로 추앙받는 우칭위안(오청원) 9단이 1930~50년대 일본에서 벌였던 치수고치기 10번기다. 10번을 두면서 4승 이상 차이가 나면 치수를 고친다. 덤이 없던 시절 대등한 상대끼리 흑-백을 번갈아 두는 호선, 하수가 흑으로 2번, 백으로 1번씩 두는 선상선, 하수가 흑으로만 두는 정선 등 서로 간의 실력차를 교정하는 것으로 치수가 고쳐진다는 것은 자신이 하수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잔혹한 승부에서 오청원은 기타니 미노루, 하시모토 우타로, 이와모토 가오루, 사카다 에이오 등 당대 일본의 최고수들을 제압했다. 11번의 10번기에서 1번을 패하고 1번을 비기고 9번을 이겼다.

이제 그 치열한 싸움이 21세기 초 세계바둑의 양강인 이세돌과 구리의 10번기로 부활한 셈이다. 이번 대결은 치수고치기는 아니지만 승자에게는 상금을 몰아줘 자존감을 높여주고, 패자에게는 푼돈(?)을 쥐여주는 방식으로 페널티를 준다. 이세돌과 구리는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 용호상박, 전적도 16승1무17패 1983년 동갑내기인 이세돌과 구리는 나란히 1995년 12살의 나이에 프로에 데뷔했다. 지난 10여년간 한국과 중국의 1인자로 군림했다. 기풍도 비슷하다. 이세돌은 전투형 기사로 난전에 능하다. 취약한 포석 때문에 불리해진 초반 형세를 강력한 전투나 대마 사냥으로 반전시킨다. 구리도 적극적인 행마를 한다. 보통 정상급 기사들이 공수의 균형을 중시하는 것과 달리 구리는 무섭게 싸움을 건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세계 최강의 아마추어’. 전투력이 넘치기에 둘의 대국은 “멀리서 바둑판만 봐도 알 수 있다”는 평을 듣는다.

둘은 2004년 6월 중국 갑조리그에서 첫 맞대결을 벌였다. 처음에 웃은 사람은 구리였다. 그러나 5개월 뒤 열린 9회 삼성화재배 준결승에서는 이세돌이 설욕을 했다. 이렇게 점차 대치전선을 넓혀간 둘의 역대 공식 전적은 16승1무17패의 백중세. 세계대회 결승전에서는 이세돌이 2009년 엘지(LG)배(구리 2-0 승)에서 졌지만 2011년 비씨카드배(이세돌 3-2승), 지난해 삼성화재배(이세돌 2-1승)에서 이겨 2승1패로 우위다. 비공식 대결 두판을 포함하면 이세돌의 18승1무17패.

둘의 대결을 꼭 승부로만 볼 수는 없다. 절친이기도 한 둘은 상대방과 바둑 두는 것을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기뻐한다. 이세돌은 “그의 기풍이나 평소의 교류와는 관계없이 ‘구리’라는 기사에 대한 감정이 각별하다. 구리는 내 바둑인생 최고의 선물”이라며 우정을 과시했다. 구리 역시 “이세돌은 내가 바둑에서 끊임없이 추구하던 목표다. 2014년은 최강의 우리를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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