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씨
*14승15패: <상반기>
통산승률 71%의 절대강자에서
처음으로 랭킹 3위까지 밀려나
“초중반에 형세 불리해도
역전승 따내던 치열함 약해져”
통산승률 71%의 절대강자에서
처음으로 랭킹 3위까지 밀려나
“초중반에 형세 불리해도
역전승 따내던 치열함 약해져”
정점을 지난 것일까? 아니면 재도약을 위한 숨고르기일까?
최근 이세돌(30) 9단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5일 한국기원이 발표한 7월 랭킹에서 이세돌은 1위에서 3위로 추락했다. ‘포스트 이세돌’의 자리를 노리는 박정환 9단과 김지석 9단이 이세돌을 밀어내고 1·2위에 등극했다. 한국 바둑의 ‘절대강자’로 군림했던 이세돌은 간혹 2위로 떨어진 적은 있었지만 3위까지 추락한 것은 2009년 1월 현 랭킹 제도가 도입된 이후 처음이다. 그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2006년 4월 이후 7년3개월 만에 3위로 떨어졌다. 조훈현-이창호의 계보를 이은 간판 이세돌의 확고부동했던 이미지가 흔들리고 있다. 과연 이세돌의 시대가 저무는가?
■ 사라진 카리스마 이세돌이 이세돌답지 못하다. 통산 71%의 승률(1016승 414패 2무)을 자랑하는 이세돌은 올해 들어 6월 말까지 29번의 공식 대국에서 기권승 1번을 포함해 14승15패로 반타작도 못했다. 특히 지난달 엘지(LG)배 16강 탈락(퉈자시 3단에게 불계패), 춘란배 우승 좌절(천야오예 9단에게 1-2 패), TV바둑 아시아대회 1회전 탈락(왕시 9단에게 불계패) 등 세계대회에서 부진했다.
정상급 기사들 사이에 실력은 종이 한장 차이다. 이때 승부를 결정짓는 것이 기세나 카리스마다. 과거 이세돌은 아무리 형세가 안 좋아도 이겨야 하는 순간에는 상대를 제압했다. 올해 이세돌은 카리스마가 사라졌다. 지난달 춘란배를 포함해 3번의 결승 대국에서 모두 패했다. 3월 맥심배 입신최강전 결승에서 박정환한테 2연패를 당했고, 4월 지에스(GS) 칼텍스배 결승에서도 김지석에게 2-0으로 졌다. 정동환 한국기원 홍보부장은 “예전엔 결승처럼 이겨야 될 곳에서는 어떻게든 이겼다. 그러나 지금은 결정적인 순간에 패하다 보니 다른 기사들에게 절대강자가 아닌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로 보여지게 됐다”고 평했다.
■ 치열함이 약해졌다 중요한 것은 성적보다 대국의 내용이다. 유창혁 9단은 “초중반 형세가 불리하더라도 중반 이후 치열한 전투로 끝내 역전승을 만들어내는 힘이 이세돌의 가장 큰 장점이었는데 요즘 그런 치열한 맛이 약해졌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천야오예와의 춘란배 결승 1국이 그랬다. 예전의 날카로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끝내 무기력하게 졌다. 초반 포석이 약해도, 짜여진 판을 뒤엎는 한 수로 바둑판을 전쟁터로 만들고 역전승을 따내는 강렬함이 덜하다. 구기호 <월간 바둑> 편집장은 “이세돌의 바둑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계산된 바둑을 두는 이창호와 전혀 다른 스타일이다. 그래서 무너지면 한번에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고 했다.
■ 건재냐, 하향세냐? 엇갈려 이세돌은 지난해 상반기에도 부진한 모습으로 랭킹 1위 자리를 박정환에게 넘겨준 바 있다. 당시 이세돌은 가족을 캐나다에 보내고, 미국에 바둑보급 사업을 시작하는 등 바둑 외적으로 신경쓰는 일들이 많았다. 올해 부진의 이유를 두고도 비슷한 진단이 나온다. 이세돌의 누나인 이세나씨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겉에서 볼 때 무슨 고민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미 세계를 제패했고, 라이벌 구리 9단의 퇴조 등으로 승부욕이 떨어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그러나 김성룡 9단은 “이창호 9단도 지금의 이세돌 나이 즈음부터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세돌 9단이 정점에서 내려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연착륙하느냐 경착륙하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30대에 진입한 이세돌은 바둑계에서 통용되는 20대 초반 전성기에 비하면 노장에 속한다. 아무래도 체력이나 집중력에서 완벽하지는 않다. 정동환 한국기원 홍보부장은 “2009년 휴직 사태 뒤 복귀 때도 이세돌이 예전 같은 실력을 보이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깨고 복귀하자마자 비씨(BC)카드배 우승을 했다. 누구도 이세돌의 하향세를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사진 한국기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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