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의 세계 타이틀 대결은 늘 바둑팬들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흑을 쥔 원성진 9단이 7일 중국 상하이 그랜드센트럴호텔에서 열린 삼성화재배 결승 최종 3국에서 구리 9단을 상대로 신중하게 착점하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삼성화재배 월드마스터스
구리에 핵펀치 2승1패 우승
“입대앞 마지막 기회라 생각”
구리에 핵펀치 2승1패 우승
“입대앞 마지막 기회라 생각”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원성진(사진) 9단이 주섬주섬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전원을 켰다. 눈가가 물기로 촉촉하게 젖어들었고, 휴대전화를 든 손은 파르르 떨렸다. 그러곤 27년 전 남아공 더반에서 울렸던 권투선수 홍수환의 외침이 중국 상하이에 울려 퍼졌다. 스물여섯살이 돼서야 처음 맛본 세계대회 우승. 그것도 권위의 삼성화재배. 챔피언이란 전혀 다른 세계였다. 국내 톱 기사임에도 ‘국내용’ 꼬리표가 붙어 마음이 상했지만, “앞으로는 부담감 없이 편하게 둘 것 같다”고 했다.
‘원 펀치’ 원성진이 7일 중국 상하이 그랜드센트럴호텔에서 막을 내린 제16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결승 3국에서 지난 대회 우승자인 중국의 구리(29) 9단을 흑으로 235수 만에 불계로 물리치고 종합전적 2승1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구리와의 통산 전적은 4승4패. 한방에 상대를 고꾸라뜨릴 수 있는 핵 펀치가 통했다. 무엇보다 중국 최강 기사한테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한-중의 세계바둑 주도권 다툼에서 한발 치고 나가게 됐다.
1985년생 동갑인 박영훈·최철한과 함께 ‘송아지(소띠) 삼총사’로 불리며 어려서부터 한국 바둑의 기대주로 촉망받았던 원성진. 그러나 최철한과 박영훈이 저만치 앞서 나갈 때 홀로 뒤처졌다. 88년 입단 이후 세계대회의 경우 2002년과 2003년 엘지(LG)배에서 4강에 오른 것이 최고 성적. 국내 타이틀의 경우 2007년 천원전과 지난해 지에스(GS)칼텍스배에서 처음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프로 13년째인 이제 첫 세계 타이틀을 차지했다.
그동안 박영훈이나 최철한에게 처져 자존심이 상했던 원성진은 국내 랭킹 5위권 안팎의 정상급 기사. 늘 우승 후보이지만 뒷심이 달려서인지 정상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그러나 이제 만리장성을 뛰어넘으면서 명실공히 한국의 간판기사로 우뚝 서게 됐다. 상금 2억원은 덤. 울컥하는 감정을 다스린 원성진은 “친구들 만나면 밥값은 내가 내겠다”며 기쁨을 만끽했다.
대기만성의 전형인 원성진은 거북이걸음으로 목표에 도달한 만큼 앞으로 더욱 기대감을 높인다. 바둑 전문가들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깊은 맛이 우러나오고 있다”고 평가한다.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은 “원성진이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을 텐데 이번 우승으로 훌훌 털어버리고, 앞으로 상승세를 더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다만 내년 입대를 앞두고 있어 절정기에 일시적인 휴지기를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 아쉽다.
원성진은 이번 결승전을 앞두고 “오로지 구리만을 생각했다”고 했다. 구리의 약점을 찾으려고 수도 없이 복기하고 분석했다. 1국에서는 이런 연구 때문인지 기록적인 대승을 거뒀다. 하지만 세계대회 7회 우승에 결승전을 제집 안방 드나들듯 하던 구리의 반격이 매서웠다. 결국 2국에서 대마를 잡혀 자칫 이번에도 타이틀과는 연이 닿지 않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자아냈다. 그러나 최종 3국에서 원 펀치라는 별명처럼 상대방의 약점을 잡아낸 뒤 끝까지 물고 늘어져 결국 숨통을 끊어냈다. 그는 “마지막 기회라는 절절한 생각으로 구리의 약점을 파고 또 파고든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원성진은 “주변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성적이 나빠지는 기사를 많이 봤다. 이제부터가 시작이고,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입대하더라도 성적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날을 세웠다. 도도한 물결을 탄 대기만성 기사의 자신감이 단아하다.
상하이/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원성진 9단
상하이/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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