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혁 9단
남자시니어팀 지지옥션배 승리
여자팀에 끌려가다 반격
조훈현 8연승뒤 바통터치
유창혁이 3연승 마무리
후배들 젊은 패기 눌러
여자팀에 끌려가다 반격
조훈현 8연승뒤 바통터치
유창혁이 3연승 마무리
후배들 젊은 패기 눌러
갸름했던 얼굴은 세월의 무게에 ‘둥글게’ 바뀌었다. 과거엔 “창혁”이라는 이름이 편했지만, 지금은 선배들도 “유 이사”나 “유 사범”이라고 한다. 세계 최강의 공격수라는 별명처럼 불같은 기세를 자랑했던 유창혁(45) 9단. 그도 마흔다섯에 접어들었고, 최근엔 45살 이상 남자 시니어와 여자 기사의 대결인 지지옥션배에 주장으로 출전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은 날카로운 눈매와 공격형 기풍으로 최후의 수문장 구실을 톡톡히 했다. 조훈현(58) 9단과 펼친 ‘아저씨들의 양동작전’에 박지은 9단 등 한국 최강의 여전사들도 꼼짝하지 못했다. 여성 바둑팬들한테는 야속한 일이지만, 역시 유창혁과 조훈현은 최강 여자기사 틈새에서도 통했다.
22일 열린 지지옥션배 최종전에서 남자팀의 유창혁은 여자팀의 박지은을 183수 만에 흑 불계승으로 물리쳤다. 우승상금 7000만원을 확보해 12명의 팀원한테 나눠줄 수 있게 된 유 9단의 얼굴은 싱글벙글이다. 최종 전적 12승11패로 이번 5회 대회까지 남자팀의 3승2패.
올해는 처음 등장한 유 9단이 100% 제 몫을 다했다. ‘한물갔다’는 평가가 무색할 정도로 잘 짜인 작전의 덕이 컸다. 좌장 격인 조훈현 9단은 마지막 보루로 유 9단을 남겨두고 본인은 1승10패로 절대적인 열세 상황에서 8연승을 거두며 승부의 균형을 맞춰 놓았다. 사상 첫 9연승도 노려볼 수 있었지만, ‘싸움신’도 방심하면 당하는 법. 두 아이의 엄마인 권효진 5단에게 터무니없는 실수를 저지르며 일격을 당했다. 남자팀의 9승11패. 그러나 유일하게 남은 ‘일지매’ 유창혁은 여자팀의 권 5단과 루이나이웨이 9단, 박지은 9단을 제압하면서 해결사 구실을 했다.
올해 처음 ‘아저씨’ 대열에 합류한 유 9단은 어느 때보다 비장했다고 한다. 유 9단은 “상대 전적에서 내가 모두 앞서 있긴 했지만, 세월이 흐른 터라 긴장감은 더했다”고 했다. 원래 낙관파지만 마지막 주자라는 책임감이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피말리는 혈전이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마지막 승부는 유 9단의 압승이었다. 전성기 때를 연상케 하는 거침없는 공격행보로 상대의 혼을 쏙 빼놓았다. 1회 대회 때인 2007년과 지난해 여자팀의 마지막 기사로 우승을 이끌었던 박지은 9단의 ‘삼세판’ 우승 도전은 유창혁의 벽에 막혀 무위로 돌아갔다. 차영구 한국기원 과장은 “유 9단이 바둑도장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한국기원 이사로 활동하며 이런저런 ‘잡무’에 시간을 빼앗기지만 공부는 빼놓지 않는다”고 했다.
쟁쟁한 젊은 후배들의 기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한 무대에서 시니어들의 설 자리는 좁아지고 있다. 유 9단도 랭킹에서 밀려 올해 처음으로 한국바둑리그 48명 명단에 끼지도 못했다. 하지만 쫓아가야 할 상황이나 위기의 순간에 마그마의 폭발력을 보여주는 모습에는 변함이 없다.
유창혁-조훈현의 은근한 활약에 바둑팬들도 흥분했다. 아이디 ‘현해탄’은 사이버오로 댓글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보여줘 존경스럽다. 그 투혼에 찬사를 보낸다”고 했다. 이세신 <바둑티브이> 편성팀장은 “나이가 들면 바둑이 약해진다는 통념을 보기 좋게 깨뜨렸다”며 “8연승을 내달릴 때 조 9단의 기세나 막판 우승을 확정하는 유 9단의 집중력에서 예전보다 더 강력한 힘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사진 사이버오로 제공
조훈현 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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