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천일염의 이상훈 감독(오른쪽)과 주장 이세돌이 23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2010 한국리그 챔피언결정전 경기를 모니터로 보면서 검토하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형의 용병술과 아우의 재능 합작
신안천일염 ‘KB리그’ 우승 일궈
신안천일염 ‘KB리그’ 우승 일궈
바둑은 ‘절대고독’의 세계다. 그 누구한테도 도움을 바랄 수 없다. 믿을 건 철저히 자기뿐이다. 그러나 그 승부의 세계에도 가족은 특별하다. 친구나 선후배가 채울 수 없는 내밀한 세계를 나눌 수도 있다. 23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특별대국실에서 열린 2010 케이비(KB)국민은행 한국바둑리그 챔피언결정전은 가족의 힘이 도드라졌다. 이날 이상훈(35) 감독이 이끄는 신안천일염은 한게임을 3 대 2로 꺾고 9개월 장정의 정상에 서며, 2억5000만원의 우승상금을 챙겼다. 신안천일염의 주장이자, 감독의 동생인 이세돌(27)은 리그 13승으로 일등공신이 됐다. 형의 지략과 당대 최고의 기재인 동생이 창단 2년째 신생팀의 우승을 합작한 셈이다.
■ 형이 있어 든든한 이세돌 까칠한 이세돌 9단이 유일하게 따르는 사람은 형이라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형의 지도를 받았던 세돌은 형이 프로에 먼저 입문한 뒤로는 더 집중적으로 배우게 된다. 끈끈한 관계는 이세돌의 프로 데뷔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2009년 이세돌이 갑작스런 휴직 선언을 했을 때, 한국기원과 미디어의 이세돌 접촉 창구는 형이 맡았고, 형은 동생의 입장을 대변했다. 같은 팀으로 처음 호흡을 맞췄지만 아무런 불협화음도 없었다. 이상훈 감독은 “팀을 이끌면서 마찰 한 번 없었다. 대국 순서를 짜는 일이 중요한데, 주장인 이세돌이 이의를 제기한 적은 거의 없었다”고 했다. 김만수 7단은 “예전부터 이세돌 사범은 형을 잘 따랐다. 피말리는 승부의 길에서 형이 도움을 주었고, 이번엔 동생이 형에게 빚을 갚았다”고 했다.
■ 맞대결은 사양 둘은 공식 대국에서 맞서는 일이 거의 없다. 첫 맞대결은 2000년 제4기 에스케이(SK)가스배 신예프로10걸전. 당시 결승전 사상 최초로 벌인 ‘형제 대결’에서 이상훈(당시 3단)은 동생을 2 대 1로 누르며 ‘형만한 아우 없음’을 입증했다. 그러나 이후 한국방송 바둑왕전에서 벌인 2차례 대결에서는 동생이 앞서 통산전적은 이세돌의 3승2패다. 2002년 이후에는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이세돌의 누나 이세나씨는 “동생 세돌이 입단하기 전에는 오빠가 많이 트레이닝을 시켰지만, 프로가 된 뒤로는 거의 두지 않는다”고 했다. 가끔 명절 때 고향에 내려오면 연습바둑 한 판 두는 게 고작이다.
■ 초짜 감독의 임기응변 이상훈 감독은 9개 한국리그 참가팀 가운데 양건 넷마블 감독과 함께 최연소 사령탑이다. 올해 처음으로 팀을 맡았고, 팀 구성원인 한상훈, 이춘규, 박시열, 이호범, 안국현 등도 가장 젊은 층에 속한다. 바둑계에서는 “이상훈 감독이 신예를 발굴해 좋은 재목으로 키웠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작전에서도 동생 이세돌 못지않은 기발한 착상으로 정규리그 3위를 챔피언에 올렸다. 챔피언전에서는 확실한 1승을 챙길 이세돌을 5장으로 배치해, 한게임에서 상승세를 탄 진시영을 떨구며 승기를 잡았다. 차민수 한게임 감독은 “이세돌 기용에 허를 찔렸다”며 작전에서의 실패를 인정했다. 이상훈 감독은 “세돌이가 있다는 게 큰 힘이다. 젊은 선수들이 잘 따르고 한마음이 돼서 일군 성과”라며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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