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상 9단의 흑돌백돌
박정상 9단의 흑돌백돌 / 지난달 중국 베이징에 갔다. 그곳에서 평소 절친한 중국 프로기사 왕레이 6단과 만났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중국 여자 프로기사들의 실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왕레이 6단은 “중국의 국가대표팀 여자 프로기사들은 세다. 남자 국가대표팀이라도 이기기 위해서는 진땀을 빼야 한다. 위빈 9단과 같이 과거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일류 기사들이 여자 대표팀의 감독을 맡고 훈련시키면서 예전보다 엄청나게 강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여자 기사들과 견줘 보면, 2년 전만 해도 우리 여자 기사들 성적이 훨씬 좋았지만 현재는 그렇지가 않다. 한·중·일 5명의 선수가 나와 연승전 방식으로 벌어지는 정관장배에서 지난 대회 중국은 무려 4명의 선수를 남겨둔 채 손쉽게 우승을 차지했다. 현재 진행중인 정관장배에선 한국과 일본이 1명의 선수만을 남겨둔 반면 중국은 3명이 남아 있어 우승이 유력하다. 이런 위기감 속에 여자대표 상비군이 출범했다. 양재호 9단이 감독을, 윤성현 9단이 코치를 맡은 상비군은 한국 여자 바둑계의 실력 향상과 11월 열리는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있다. 지난달부터 19명의 여자 선수들이 약 한 달 동안 선발전을 치른 끝에 1기 여자대표 상비군 10명을 구성했다. 박지은 9단이 17승1패로 1위를 차지했고, 김미리·김윤영 초단이 14승4패로 공동 2위가 돼 상비군에 이름을 올렸다. 이 밖에 박지연 2단과 이슬아 초단(이상 13승4패), 김은선 3단, 문도원 2단(이상 11승8패), 박소현 2단(10승9패), 김혜민 5단, 이다혜 3단(이상 9승10패)이 선발됐다. 이들은 일주일에 세 차례 아침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훈련을 하며, 아시안게임 룰에 맞춰 실전 대국 훈련을 갖는다. 앞으로 5차례에 걸친 리그전을 통해 아시안게임 한국 대표 4명 중 2명을 확정하며, 나머지 2명은 최종 선발전을 벌여 뽑게 된다. 리그전마다 성적 하위자 3명은 새로운 선발전을 통과한 3명과 교체되는 치열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윤성현 코치는 “아직은 고된 훈련에 많이 힘들어한다. 하지만 차차 적응이 될 것이다. 1차 목표는 최강의 선수들로 아시안게임 대표팀을 선발하는 것이다. 상비군 선수들은 수읽기가 아직 부족한데, 사활 과제를 내주며 이 점을 보강하고 있다. 실전 대국은 남자 일류 기사들이 복기를 해주면서 잘못된 곳을 지적하며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대해선 실력과 함께 운도 조금 필요하다며 신중한 견해를 보였다. 2008년의 월드마인드스포츠 바둑 부문 남자 개인전이 생각난다. 당시 강동윤 9단과 내가 금메달과 은메달을 차지해 시상식에선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그날의 감동은 아직 내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다. 그 느낌을 아시안게임을 통해 여자 대표팀도 느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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