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이세돌(26), 이창호(34)
화려한 기상 이세돌, 이창호 앞에 서면 왠지 멈칫
3월 응씨배 세계기전 시금석…최철한 캐스팅보트
3월 응씨배 세계기전 시금석…최철한 캐스팅보트
다시 이창호(34)와 이세돌(26)이 화제다. 두 천재가 당대 최고의 ‘국수’라는데 이견은 없다. 그러나 누구를 딱 꼬집어 “1인자다”고 얘기하기가 어렵다. 시대의 흐름은 이세돌 9단이 주도하는 것 같다. 하지만 중요 국면마다 덜컥 이창호 9단에 덜미를 잡힌다. 둘의 전성기가 다르지만 이세돌의 독주보다는 ‘양이(兩李)’ 시대가 더 적절해 보인다. 이창호 산맥이 크고 깊기 때문이다.
■ 이세돌의 부담감 바둑은 상대적 게임이다. 1995년 입단한 이세돌은 5년 뒤인 2000년부터 화산같이 폭발했다. 당시 1~5월 무려 32연승(역대 3위)을 달리며 ‘불패소년’의 별명을 얻었다. 첫 타이틀(5기 천원전)을 얻었고, 유창혁 9단을 배달왕기전에서 무너뜨렸다. 그러나 이창호와 만나면 욱일승천한 기세가 주춤한다. 상대 전적은 20승29패. 팽팽한 듯 보이지만 5차례 결승대국 중 2003년 7회 엘지배를 제외하곤 모두 졌다. 올들어도 3연승 신바람을 내다가 2일 열린 27회 바둑왕전 결승 1국에서 이창호에 패했다. 박정상 9단은 “본격적인 국제기전이 아니어서 바둑왕 대국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또 부담은 이창호 선배가 더 많이 느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세돌은 최근 인터뷰에서 “이창호가 1인자다”라고 말했다. 바둑 전문가들은 이창호만 만나면 느끼는 심리적 부담감을 덜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 놓는다.
■ 블랙홀 이창호 1990년대 들어 국·내외 기전을 휩쓸며 전성기를 시작한 이창호 9단은 15년 이상 최정상급 기력을 유지하고 있다. 조훈현 천하를 끝내고, 새롭게 부상한 이세돌 앞에서도 요지부동이다. 체력보다는 정신력의 게임인 바둑에서 급전직하는 없다. 최규병 9단은 “아무리 강한 기사라도 한판의 승률은 50대 50”이라며 “각각의 전성기가 달라 평면적 비교는 어렵지만 이창호가 실력에서 밀리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발빠른 행마, 기를 발산하는 듯한 강렬함, 눈부신 공격력 등은 조훈현과 이세돌 같은 천재기사의 기풍이다. 반면 이창호는 수비적인 전형에다, 상대의 기를 빨아들이는 듯한 블랙홀의 힘으로 새로운 천재기사의 유형을 창조해냈다. 그 힘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 응씨배를 보자 3월 열리는 응씨배 세계기전은 이세돌과 이창호의 역관계를 가늠해볼 시금석이다. 결승전에 오른 이창호가 최철한 9단을 꺾는다면 ‘이세돌 시대’는 유보가 불가피하다. 상금 40만달러의 최중량급 국제기전이기에 이창호는 건재를 과시하게 된다. 만약 최철한이 우승한다면 그 때는 ‘이세돌 독주’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이세돌 9단은 1월 삼성화재배 우승을 차지했고, 곧 엘지배 세계기전 타이틀을 놓고 싸움을 벌인다. 이세돌은 자존심이 센 기사다. 그러나 ‘돌부처’ 이창호를 완벽하게 제압하지 않는다면 1인자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상대전적
2005~2008년승률 추이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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