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9단이 지난 22일 전남 신안 자은도의 라마다프라자앤(&)씨원리조트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낮은 목소리. 부드러운 얼굴빛. ‘돌부처’ 이창호(47) 9단의 느낌은 한결같다. 프로 입단 이후 36년의 세월. 그는 승패의 전장에서 살았다. 통산 전적 1834승746패(승률 71.09%)의 기록은 훈장이자, 상처다. 하지만 명상 음악의 투명한 물소리처럼, 그와 마주 앉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바둑의 수법이 과거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진 시대. 어느덧 지천명을 바라보는 이창호는 요즈음 무슨 생각을 할까? 최근 전라남도 신안 자은도 라마다프라자앤(&)씨원리조트에서 열린 ‘1004섬 국제시니어바둑대회’에서 중년 바둑팬들의 우상인 그를 만났다.
이창호는 1986년 11살 때 입단한 뒤 1988년 케이비에스(KBS)바둑왕전 우승으로 세계 최연소로 타이틀을 따냈다.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10여년 이상 세계 1위로 군림했다. 이세돌 9단이나 조치훈 9단도 세계 최정상에 올랐지만 기간은 5년 이내였다. 세계 개인전 타이틀 최다 획득 기록(23개)까지 고려하면 이창호의 ‘존재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995년 당시 두 개뿐이던 국제기전 동양증권배와 후지쓰배를 제패한 중국의 마샤오춘이 이듬해부터 이창호에 막혀 내리막길을 걷자, “하늘은 마샤오춘을 내고, 이창호도 냈는가”라는 한탄이 중국 바둑계에서 나온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천하의 이창호도 요즘 인공지능을 기력 향상을 위한 파트너로 삼고 있다. 그는 “제가 사용하는 인공지능은 중국의 골락시다. 지난해 후반부터 시작했다”라고 밝혔다.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이 펼쳐졌고, 2018년부터는 범용 바둑 인공지능이 나오면서 프로기사들이 일찌감치 달려들어 연구했던 것과 비교하면 조금 늦은 편이다.
이창호가 애초부터 인공지능에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다. 새로운 것에 늘 흥미를 느끼는 성격이다. 다만 세계 최고의 기사로서의 자존심이 있었고, 여기에 더해 쉽게 유행에 휩쓸리려고 하지 않으면서 본격적인 공부가 늦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 인공지능의 등장 뒤 이창호의 ‘반집 끝내기’나 일본의 다케미야 마사키의 ‘우주류’ 등 개별 기사의 전통적 바둑 색깔은 더 이상 찾기 힘들어졌다. 모양 중시(일본), 실전형(중국), 융합형(한국) 등 국가별 바둑의 특징도 사라지고 있다. 정석도 무의미해지면서, 바둑은 인공지능으로 획일화됐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이창호는 “과거 바둑의 독특성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이전의 기사들은 이창호를 집중 연구했지만 이제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포석이나 중반 운용까지 달통할 정도에 이르렀다. 바둑의 속기화도 조금이라도 유리한 길을 찾고, 최상의 수읽기를 해내는 이창호한테는 불리한 조건이다. 일찍이 조훈현 9단의 유일한 내제자로 들어가, 당시로써는 ‘알파고급 노하우’를 갖춘 스승의 가르침을 받았던 이창호도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셈이다.
최규병 9단은 “아무리 인공지능이 앞서가도 종반에는 인간의 실력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창호가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기사들과의 교류를 통해 아이디어를 나눈다면 기량이 늘 것”이라고 했고, 김찬우 6단도 “이창호는 습득력과 응용력에서 차원이 다르다. 세계 대회 우승 등 남들이 하지 못한 경험이 인공지능을 해석하는 데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의 명석한 두뇌는 그대로란 이야기다. 문제는 체력이다. 이창호는 이미 10대 시절부터 연간 100판 이상을 두는 등 극한으로 몰린 바 있다. 진을 빼는 듯이 한판 한판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요즘도 변하지 않는다. 지난 시즌 케이비(KB)바둑리그 유후팀 소속으로 4시간50분의 사투로 반집승을 따내는 등 팀 승리를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김찬우 6단은 “바둑은 두뇌 스포츠이지만, 체력 없이 두뇌 활동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창호 9단이 지난 20일 전남 신안 자은도의 라마다프라자&씨원리조트에서 열린 ‘1004섬 국제시니어바둑대회’ 개막식에서 대진 추첨을 하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테니스, 탁구 등의 운동을 했던 이창호는 “요즘은 아파트 주변의 산책로를 돌면서 몸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로 자기 방에서 연구에 몰두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 1학년 두 딸에게는 자상한 아빠다. ‘딸 바보’이기도 한 그는 “옛날에는 보드게임도 하며 자주 놀아줬는데, 큰 아이는 학원 공부 때문에 바쁘다”고 소개했다. 아내를 위해서는 동네 마트에 장을 보러 가기도 하는데, ‘남편’ 이창호의 몫을 피할 수 없다.
이창호는 늘 최초, 최연소 우승 등 화려한 길을 걸어왔다. 가족과 떨어져 유학생활을 했고, 한국기원의 지원이나 도장 시스템이 갖춰지기 전에 홀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다. 이런 성장기는 심리적으로 자신을 억누르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늘 자신을 낮추고, 바둑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달려가 홍보맨 구실을 하는 것은 그의 천품을 보여준다. 이번 시니어바둑대회 16강에서 탈락했지만, 팬과의 다면기에 나서는 등 최선을 다했다.
반상에서는 흑백의 한수 한수에 천변만화가 일어난다. 그 변화무쌍한 세계를 관통해온 이창호의 한결같은 목표는 “팬들에게 최상의 기보를 보이겠다”는 한 마디에 응축돼 있다. 인터뷰 사진을 위해 “이 국수님, 밖에서 한장 찍을까요?”라고 묻자, “그냥 이대로 찍자”고 한다. 그의 마음엔 일절 ‘조미료’가 없다.
글·사진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