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바둑의 간판은 최정이었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 최정 독주체제도 균열하기 시작했다.
오유진(23) 9단이 14일 저녁 서울 성동구 마장로 한국기원 바둑 TV스튜디오에서 열린 제5기 한국제지 여자기성전 결승 3번기 제2국에서 최정(25) 9단을 213수 만에 흑 불계로 제압했다.
전날 1국에서도 승리했던 오유진은 종합전적 2-0으로 데뷔 뒤 첫 여자 기성에 올랐다.
지난달 여자국수전 결승에서도 최정을 2대1로 물리치고 정상에 올랐던 오유진은 ‘최정 무섬증’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두 개 대회 결승 맞대국에서 최정에 4승1패로 압도했기 때문이다. 통산 맞전적은 최정이 26승6패로 여전히 오유진에 앞선다.
하지만 오랜 기간 최정과 대결하면서 15연패까지 당했던 오유진이 아니다. 지난달 여자국수전 우승으로 9단으로 승단한 오유진은 더 성장했다.
이날 기성 결승 2국의 내용도 변화를 상징한다. 오유진은 중반부터 판을 장악했고, 최정이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촘촘한 판 운영으로 대세를 결정했다. 최정의 막판 흔들기로 약점을 노렸지만, 오유진은 강대강의 적극적인 방어로 빈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오유진은 대국 뒤 “한국제지 여자기성전에서 꼭 우승하고 싶었는데 정말 기쁘다. 굉장히 강한 선수에게 결승전에서 이겨 더 기쁘다”고 말했다.
또 “예전에는 선택할 때 좀 더 안전한 수를 더 많이 뒀는데 요즘에는 더 적극적인 수를 두게 된 것 같다. 저 스스로 정체기라 판단했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라며 최근 달라진 기풍을 설명했다.
97개월 연속 한국 여자바둑 랭킹 1위를 지키고 있는 최정은 여자 기성 4연패에 실패했다.
최정은 지난달 여자국수전에서 오유진에 진 뒤, 이달초 제4회 오청원배 세계여자바둑챔피언십 우승으로 다시 회복했다. 하지만 피로한 탓인지 오유진에게 완패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자기성전은 각자 1시간에 40초 3회의 초읽기로 이뤄졌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
오유진 9단(오른쪽)과 최정 9단. 한국기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