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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 간호만 20년 해보니…“환자에게 병을 솔직히 말하세요”

등록 2010-01-11 19:19

김연희 간호팀장(사진 맨 앞 오른쪽)이 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웃음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김연희 간호팀장(사진 맨 앞 오른쪽)이 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웃음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건강2.0] 김연희 서울아산병원 간호팀장
암환자 가글액 고안…지침서도 펴내
“가족의 긍정 에너지, 치료에 큰 보탬”
“지난해 4월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셨어요. 20년 넘게 암 환자와 그 가족들을 돌봐왔음에도 평상심을 유지하는 게 쉽지만은 않더라고요. 의료진을 믿고, 병의 예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최선입니다.”

김연희(48) 서울아산병원 간호팀장은 종양 간호 분야의 개척자로 꼽힌다. <암환자 간호 증상 관리>, <쉽게 배우는 통증관리>, <쉽게 배우는 간호 약리학> 등의 책을 펴냈고, 암 환자들이 가글에 두루 사용하는 중조(소다) 식염수는 그의 작품이다. 지난해 3월 암센터를 열 때도 주도적인 구실을 했다.

그렇지만 그가 암 환자의 가족이 되어보니, 현실은 임상과 많이 달랐다. 여느 사람들처럼 당황했고, 겁부터 덜컥 났다. 아버지에게 ‘병 상태를 알려드려야 할까, 하지 말아야 할까’부터 심신이 지쳐 있는 아버지를 어떻게 편안하게 모실 수 있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암은 위중과 예후를 예측할 수 없는데다, 수개월에 걸친 항암치료 기간에 환자와 그 가족이 겪는 고통과 불안이 크다는 것을 수많은 임상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암 환자 가족들은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김 팀장은 “차분하게 환자를 지켜봐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처음에는 오버했다가 나중에는 환자에게 무관심해지기 쉬운데, 너무 긴장하거나 과잉행동으로 환자를 불안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가족은 환자에게 병의 위중과 예후 정도를 명확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 지난해 아버지가 위암 4기 판정을 받았을 때, 그는 아버지 스스로 인생의 마지막을 정리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의사 입장에서는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다 얘기합니다. 환자와 가족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죠. 과거에는 환자에게 병을 숨기는 것을 미덕으로 보기도 했는데, 환자가 치료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게 치료와 예후에 좋습니다.”

김연희 서울아산병원 간호팀장
김연희 서울아산병원 간호팀장
환자가 자살 등의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 주변을 정리하거나, 치료 방법을 결정하는 데 환자가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근거 없는 막연한 걱정과 근심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병의 상태를 숨기더라도, 환자들은 직감적으로 압니다. 특히 항암제를 투여할 때는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소상히 알려줘야 덜 불안해합니다. 간암 환자에게 간염이라고 속인 뒤 항암제를 투여했는데 머리가 빠졌다면 환자들은 어떻겠습니까?”

평상심 유지도 환자 가족들이 지녀야 할 자세다. 암 환자 가족에겐 ‘○○이 좋다’ ‘○○ 해야 낫는다’ 등 각종 유혹의 손길이 많다. 이럴 때 흔들리기보다는 주치의와 간호사의 치료와 조언을 믿고 따르는 게 더 좋다고 그는 설명했다. 대신 환자에게 희망을 주고, 격려를 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고, 좋은 생각을 하며, 긍정적으로 미래를 바라보면 암의 진행상황도 ‘긍정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희망을 가진 환자와 절망으로 똘똘 뭉친 환자의 암 진행 과정은 차이가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암도 긍정적으로 작용을 합니다. 환자든 그 가족이든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차분한 마음으로 순간순간을 열심히 살면 좋은 결과가 나타납니다.”

매일 환자들에게 ‘오늘을 열심히 살라’고 격려하는 것은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하는 한 방법이다. 그는 “하루하루를 후회 없이 살다 보면, 기억하고 싶은 좋은 과거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소중한 추억도 쌓여간다”며 “오늘을 열심히 살았기에, 환자들은 내일 살아갈 힘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환자들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하거나 심신이 절대적으로 지쳐있을 때라면, 그는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른 환자들, 병이 호전된 환자들을 만나게 해주는 방법을 추천했다. “같은 암을 앓고 있거나, 항암제를 맞아 머리가 빠져 있는 환자, 회복중에 있는 환자들을 만나면 마음의 안정을 얻기 쉬워요. 저 역시 눈에 림프종이 생겨서 방사선 치료를 받았는데, 동병상련이 얼마나 끈끈한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됐답니다.”

작은 키, 앳된 얼굴, 빼빼 마른 체구의 그가 환자를 돌볼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심”이라고 답했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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