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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LA·파리 거쳐, 나폴리 찍고…영화 여행의 종착지는 도쿄?

등록 2021-06-03 04:59수정 2021-06-03 15:36

여행족 설레게 하는 여행 영화
현지의 현대·과거 모습 오롯이 담겨
생소한 여행지 발견하는 재미는 덤
〈어 워크 인 더 우즈〉.
〈어 워크 인 더 우즈〉.

궁극의 여행 영화들이 있다. 로마에 가고 싶으면 〈로마의 휴일〉을 본다. 파리에 가고 싶으면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본다. 도쿄에 가고 싶으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보는 게 좋다. 〈투스카니의 태양〉 같은 영화는 이제 투스카니(토스카나) 여행을 위한 바이블이 됐다. 그러나 본 영화를 계속해서 다시 보는 것도 지치는 일이다. 이 리스트도 이제는 업데이트할 때가 왔다. 여행 애호가와 영화 애호가를 동시에 만족하게 할 영화 몇 편을 소개한다.

미국 인디애나주 콜럼버스, 〈콜럼버스〉(Columbus, 2017)

엑스(X)세대에게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가 있다면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콜럼버스〉가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한국계 미국 감독 코코나다가 연출하고 한국계 배우 존 조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인구 4만의 작은 도시 콜럼버스를 무대로 한다. 건축 애호가들에게만 잘 알려진 도시 콜럼버스는 건축가 에로 사리넨, 데보라 버크 등이 설계한 모더니즘 건축물로 가득한 희한한 장소다. 이 모던한 건물들 사이에서 주인공들은 우연히 만나 서로의 외로운 영혼을 잠시 이해한다. 정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인디애나주의 작은 도시로 당장 떠나고 싶어질 것이다.

미국 애팔래치아 트레일, 〈어 워크 인 더 우즈〉(A Walk In The Woods, 2015)

지금 단 한 명의 여행작가 책만 읽어야 한다면 가장 권하고 싶은 작가는 역시 빌 브라이슨이다. 그의 장기는 여행지에 대해 끝없이 불평하기다. 그에게 불평은 애정 고백이나 마찬가지다. 가장 아름다운 광경을 마주할 때조차도 빌 브라이슨은 불평을 늘어놓는데, 그게 미치도록 웃긴다면 당신은 이 작가의 문체에 중독된 것이다. 최고 걸작인 〈나를 부르는 숲〉은 로버트 레드포드와 닉 놀티 주연으로 영화화됐다. 빌 브라이슨 역할에 레드포드라니 좀 과하지 않나 싶지만 두 노인의 정신 나간 애팔래치아 트레일 도전기를 보고 있으면 주말에 북한산 하이킹이라도 해보고 싶어질 것이다.

〈500일의 썸머〉.
〈500일의 썸머〉.

미국 로스앤젤레스, 〈500일의 썸머〉(500 Days of Summer, 2009)

싫어하거나 좋아하거나. 〈500일의 썸머〉는 성별에 따라 좋고 나쁨이 대단히 갈리는 로맨틱 코미디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게 여행 영화라고? 그럴 리가? 맞다. 〈500일의 썸머〉는 주인공들만큼이나 배경이 중요한 영화다. 사실 LA라는 도시는 끔찍하게 넓고 삭막한 외양 때문에 범죄 영화의 배경으로 주로 활용됐다. 〈500일의 썸머〉는 오랫동안 오해 받아온 LA라는 도시의 다운타운을 21세기적 로맨틱 코미디에 너무나도 어울리는 장소로 다시 그려낸다. 나성(LA의 한문 표기)을 새롭게 발견할 때가 온 것이다. 지금 극장에서 재개봉 중이다.

프랑스 종단, 〈파리로 가는 길〉(Paris Can Wait, 2016)

다이안 레인은 ‘사랑과 인생을 찾아 세계를 여행하는 중년 여성’ 역할에 최적화된 배우다. 〈투스카니의 태양〉이 모든 것을 빼앗긴 뒤 이탈리아에서 행복을 찾는 여성의 우화라면 〈파리로 가는 길〉은 프랑스에서 중년의 발칙한 사랑을 잠시 느끼는 여성의 여행담이다. 남편의 직장 동료인 프랑스 남자와 자동차를 타고 파리로 향하던 주인공은 계속 삼천포로 빠지는 여행길에서 먹고 마시고 갈등한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부인 엘리노어 코폴라의 첫 상업 영화. 조금 허허실실하지만 프랑스 음식에 환호하는 영화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트립 투 잉글랜드〉.
〈트립 투 잉글랜드〉.

북부 잉글랜드 ‘레이크 디스트릭트’, 〈트립 투 잉글랜드〉(The Trip, 2010)

21세기를 대표하는 여행 영화 시리즈를 꼽으라면 영국의 거장 마이클 윈터바텀이 연출한 ‘트립 시리즈’를 빼놓을 수 없다. 시작은 북부 잉글랜드를 여행하는 〈트립 투 잉글랜드〉다. 이후 시리즈는 〈트립 투 이탈리아〉(2014), 〈트립 투 스페인〉(2017)과 〈트립 투 그리스〉(2020)로 이어졌다. 컨셉은 간단하다. 영국 배우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이 신문 〈옵서버〉의 제안을 받고 최고의 레스토랑을 찾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여행의 즐거움과 식도락의 쾌락에 두 중년 배우의 자조적인 유머가 더해지니 영화적 만찬이 따로 없다. 물론 시리즈 중 최고는 역시 이 첫 번째 영화다.

이탈리아 나폴리·카프리·폼페이, 〈이탈리아 여행〉(Journey to Italy, 1954)

영화광을 위한 선택. 이탈리아 거장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스웨덴 출신 미국 배우 잉그리드 버그먼의 로맨스(혹은 불륜)은 당대 최고의 스캔들 중 하나였다. 두 사람은 세간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함께 몇 편의 작은 영화들을 만들었는데, 하나같이 믿을 수 없는 모더니즘 영화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그중 가장 훌륭한 〈이탈리아 여행〉은 관계가 바스락거릴 정도로 건조해진 부부의 여정을 담아낸다. 전후 이탈리아 남부의 조금은 폐허 같은 아름다움 속에서 잉그리드 버그만의 발길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감각이 황홀해지는 걸작이다.

벨기에 브뤼헤, 〈킬러들의 도시〉(In Bruges, 2008)

대주교를 암살하고 영국에서 도망친 두 킬러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영화는 깨알 같은 장르적 재미가 박혀 있는 숨은 걸작 블랙 코미디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당신은 주인공인 콜린 패럴보다 브뤼헤라는 도시의 아름다움에 살짝 눈이 멀지도 모른다. ‘유럽 북부의 베니스’라 불리는 이 도시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지만 가장 덜 알려진 관광지 중 하나다. 〈킬러들의 도시〉는 지명을 앞세운 영어 제목에서 짐작이 가듯이 브뤼헤라는 도시를 아예 숨은 주인공 중 하나처럼 다룬다. 파리와 로마와 베니스를 무대로 한 영화들에 질렸다면 탁월한 선택이다.

〈동경 이야기〉.
〈동경 이야기〉.

일본 히로시마현 오노미치, 〈동경 이야기〉(Tokyo Story, 1953)

당신은 ‘이 영화가 왜 여기서 나와?’라고 지금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영국 영화 잡지 〈사이트 앤 사운드〉가 선정한 영화 역사상 최고 걸작 3위를 차지하고 있는 〈동경 이야기〉는 자식들을 만나기 위해 동경으로 상경한 노부부의 쓸쓸한 모습을 통해 변해가는 가족의 의미를 그린다. 1950년대 동경의 모습도 근사하지만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건 노부부가 사는 항구 도시 오노미치의 풍경이다. 일본의 지중해라 불리는 세토내해의 좁은 해로를 품고 있는 이 작은 도시는 당신이 계획하고 있을 ‘일본 소도시 여행’의 정점이 될 것이다. 글 김도훈(전 〈허프포스트〉편집장·작가) 사진 각 영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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