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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길이 존재하는 한 영원한 이별은 없기에

등록 2021-05-28 05:00수정 2021-05-28 09:44

남아메리카 대륙 떠돌며 만난 유랑자들
영화 ‘노매드랜드’ 속 등장인물 같아
경제난, 도시 탈출 등 떠남의 이유 다르지만
‘현재, 이곳’보다 ‘미래, 저곳’으로 가고자 해
국제유랑서커스단이 되어 함께 여행하던 마리, 케노, 존, 나노, 파블로(왼쪽부터). 사진 노동효 제공
국제유랑서커스단이 되어 함께 여행하던 마리, 케노, 존, 나노, 파블로(왼쪽부터). 사진 노동효 제공

“유랑생활을 하면서 제일 좋은 건 영원한 이별이 없다는 거예요. 여기서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나는 그들에게 작별인사를 안 해요. 늘 ‘언젠가 다시 보자!’고 하죠. 그리곤 만나요. 한 달 뒤든, 일 년 뒤든 더 훗날이라도 꼭 만나죠.”

영화 〈노매드랜드〉의 등장인물이자 ‘칩알브이리빙닷컴(cheapRVliving.com)’의 운영자인 밥 웰스가 남편을 여윈 펀을 위로하며 했던 말이다. ‘언젠가 다시 보자!’로 번역된 말의 원어는 “씨유 다운 더 로드!”

〈노매드랜드〉는 제시카 브루더의 논픽션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미국 내 주택 중 87%가 압류당했고, 사태가 진정되었을 무렵엔 미국인 약 800만명이 일자리를, 약 600만명이 집을 잃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집세를 내는 대신 차박을 하며 떠도는 유랑 노동자들이 생겨났다. 이들을 워캠퍼(Workamper)라고도 부르는데, 제시카는 3년간 그들을 뒤따르면서 ‘유랑인의 땅’이 된 미국 경제의 이면을 다룬 책을 펴냈다. 영화화 과정에서 감독 클로이 자오가 추가한 펀을 제외하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유랑 노동자들은 자기 자신을 연기하고, 펀이 경험하는 세계는 제시카가 논픽션 〈노매드랜드〉를 통해 보여준 모습 그대로다. 밴을 타고 아마존 물류센터, 국유림 캠프장, 놀이공원 식당, 사탕무 농장에서 일하며 떠도는 삶. 펀은 애리조나 사막에서 ‘타이어 떠돌이들의 랑데부’ 모임을 접하고 그곳에서 만났던 방랑자들을 다시, 또다시 만나며 영화가 전개된다.

나 역시 남아메리카를 3년에 걸쳐 떠도는 동안 길 위의 친구들과 만나고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했다. 거대한 대륙에서 헤어진 친구를 다시 만날 때면 늘 경이로웠다.

1970년대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퍼진 ‘레인보 패밀리’ 모임(제시카의 논픽션에도 등장하지만 ‘안정된 삶이 한순간에 날아간 노년의 삶’을 파고들기 위해 그는 히피의 후예에 관해선 관심을 두진 않는다)이 안데스 산맥의 기슭에서 개최되었다. 인구 3천명에 불과한 볼리비아의 소도시로 히피들이 모여들었다. 미국의 토지관리국이 운영하는 애리조나 사막에서 밴 생활자가 체류할 수 있는 최대 기간은 15일이지만, 아무도 남미의 외딴 국유림에서 열리는 히피 모임엔 신경 쓰지 않기에 ‘레인보 패밀리’ 모임은 한 달(초승달이 뜰 때부터 그믐달이 질 때까지) 동안 지속되었다. 참석자들은 갓 집을 나온 청년부터 뼛속까지 방랑에 물든 여행자까지 다양했다. 젊은이들은 베테랑 히피로부터 길에서 살아가기 위한 다양한 기술을 익혔다. 악기 연주법, 수공예품 만드는 법, 저글링 같은 기예를 부리는 법 등. 보름달이 뜨자 모닥불이 타올랐고, 그날을 정점으로 하나, 둘 제 갈 길을 찾아 흩어졌다. 그믐달이 질 때까지 남은 무리 중 노엘과 그 친구들이 있었다. 악기를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그들은 버스킹을 하며 여행할 작정이라고 했다. 포옹을 나누고 헤어지며 내가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갈 거니?” “페루!”

텐트와 배낭을 이고 지고 길 떠나는 노엘과 친구들. 사진 노동효 제공
텐트와 배낭을 이고 지고 길 떠나는 노엘과 친구들. 사진 노동효 제공

카리브 해변에서 디아블로 기예를 연습하는 파블로. 사진 노동효 제공
카리브 해변에서 디아블로 기예를 연습하는 파블로. 사진 노동효 제공

내가 쿠스코에 닿은 건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난 후다. ‘세계의 배꼽’이란 뜻을 가진 잉카의 옛 수도 쿠스코는 남아메리카 여행자들이 반드시 거치는 도시로 동남아시아로 치자면 카오산 로드였다. 쿠스코에 닿기 직전 콜롬비아 출신의 방랑자를 만났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술잔을 나누던 중 내가 쿠스코로 갈 거라고 말하자 그가 아우키하우스를 찾아가 보라고 권했다. “쿠스코에서 가장 싼 숙소이자 히피들의 안식처지!” 나는 베테랑 방랑자의 안내를 따라 아우키하우스를 찾아갔고, 12인용 도미토리룸의 침대가 정해지자마자 곯아떨어졌다. 그리고 다음 날, 공동부엌에서 노엘 무리를 만나게 될 줄이야! 볼리비아의 사마이파타로부터 차로 40시간가량 떨어진 페루의 쿠스코에서 마주친 우리는 반가움에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그 숙소에서 다양한 방랑자들을 만났다. 일하고 여행하며 지구 세 바퀴를 돌아서 다시 쿠스코로 온 카를라를 비롯해 프랑스에서 스페인을 거쳐 남아메리카까지 흘러온 히피 알렉산더도 있었다. 알렉산더는 산페드로 시장 근처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며 여행경비를 벌었고, 나는 곁에 앉아서 손뼉으로 박자를 넣곤 했다.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노래 부르던 날들이 지나고 그는 해변사막에 조성 중인 비파사나 공동체로, 나는 아레키파로 떠났다. 콜카 캐년 등지를 여행하고 한 달 후 피사크로 갔다. 환각 성분이 있는 식물들이 그려진 게스트하우스를 잡고 근교 유적을 찾아 나섰다. 산기슭 따라 흩어진 유적을 다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왔을 땐 해가 기운 후. 뒷마당으로 갔더니 새끼 고양이가 잠든 나그네의 발가락을 핥고 있었다.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나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가 알렉산더라는 걸!

3년에 걸쳐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던 친구 중엔 히피들 말고 뜨내기 노동자 친구도 있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파블로는 단기 일자리를 구해서 일하고 이동하며 각국을 떠돌았다. 처음 만난 곳은 페루, 1년이 지나 다시 만난 곳은 아르헨티나. 그는 대도시에서의 삶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안데스의 고산지대야말로 자신이 있을 곳이라며 투덜댔다. 해발 3700m 쿠스코에서보다 멘도사에서 더 기운이 없어 보였다. 7년 만에 고향에 들렀던 그는 곧 안데스 산맥으로 돌아갔다.

지구상에서 가장 깊은 콜카 캐년을 지나는 비포장 도로. 사진 노동효 제공
지구상에서 가장 깊은 콜카 캐년을 지나는 비포장 도로. 사진 노동효 제공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으로 꼽히는 아타카마 사막을 지나는 도로. 사진 노동효 제공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으로 꼽히는 아타카마 사막을 지나는 도로. 사진 노동효 제공

또 다른 파블로와의 ‘만남’과 ‘헤어짐’은 더욱 각별하다. 남아메리카에 온 지 1년 6개월쯤 지났을 무렵, 나는 키토에서 칼 든 강도들에게 갖고 있던 소지품(카메라, 외투, 신용카드, 현금)을 다 털린 후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그때 우연히 길거리 서커스로 돈을 벌며 떠도는 방랑자들을 만났다. 존, 마리, 케노, 나노, 파블로. 나는 서커스 대열에 합류했고 함께 도시들을 떠돌았다.

급조된 국제유랑서커스단은 한 달쯤 지나 뿔뿔이 흩어졌는데 마지막까지 함께 한 친구가 파블로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스무살 청년은 음악학교를 졸업한 후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바이올린 연주, 세마포로(신호등 앞에서 기예를 선보이고 차량 운전자로부터 푼돈을 버는 일), 게스트하우스 단기 스태프 등으로 일하며 여행하는 친구였다. 우리는 카리브해와 접한 콜롬비아의 해안 도시까지 올라간 후 타이로나 국립공원에 텐트를 치고 며칠을 보낸 후 헤어졌다. 그리고 5개월 후, 파블로에게서 연락이 왔다. 고국에 도착했다고, 며칠 후면 고향인 마르아술에 도착할 거라고. 마침 내가 머물던 마르델플라타에서 머잖은 곳이었다.

“로, 우리 집으로 놀러 와, 네게 진 빚도 갚아야지!”

헤어지기 전 터미널 앞에서 내가 건넨 100달러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고국까지 돌아가려면 멀고 먼 길이 남았기에, 나는 더 많은 여비를 챙겨주지 못한 걸 늘 아쉬워했더랬다. 파블로를 만나러 갔다. 숲 속 레스토랑에 온 가족이 모였는데, 그건 내가 본 중 가장 아름다운 귀환 파티였다. 동네 밴드가 돌아온 그를 환영하며 음악을 연주했고, 어머니는 가족의 지원 없이 9개월간 남아메리카를 여행하고 돌아온 아들을 환영하며 춤을 췄다. 파블로가 빌린 돈을 갚으려고 했을 때 나는 말했다. “네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것만으로도 이미 다 갚은 셈이야!” 손재주 좋은 그는 세상에서 유일한 현악기를 만들고 다시 길을 떠났다.

아르헨티나 엘찬튼에서 만난 히치하이커들. 사진 노동효 제공
아르헨티나 엘찬튼에서 만난 히치하이커들. 사진 노동효 제공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같은 재난이 갑작스레 인류를 길 위로 내몰기도 하지만, 그런 재난과 무관하게 인류는 근원적으로 유랑인이다. 기후 변화, 전쟁, 경제난, 한 번의 생에서 여러 겹의 생을 경험하기 위한 목적 등 떠남의 이유가 다를 뿐, 아프리카 대륙을 벗어나 유럽으로, 아시아로, 얼어붙은 베링해협을 지나 아메리카로 이동한 유랑의 역사는 인류의 디엔에이(DNA)에 각인되어 있다. 물론 인류가 파타고니아에 닿을 때까지 아프리카 대륙에 머물며 살아온 이들도 있었다는 걸 기억한다면 늘 ‘머무는 자’와 ‘떠나는 자’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두 무리를 가르는 기준은 ‘현재, 이곳’에 적응하는 능력의 차이일 수도 있다, ‘현재, 이곳’보다 ‘미래, 저곳’으로 가고자 하는 기질의 차이일 수도 있다. 2021년 2월엔 미국의 퍼시비어런스가, 5월엔 중국의 톈원1호가 화성에 착륙했다. 2천년대가 가기 전 인류가 ‘태양계 둘레길’에서 유랑자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날이 오려는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우주방랑자들은 헤어질 때 어떤 인사를 나눌까?

남아메리카 대륙을 떠돌며 수많은 방랑자와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지만, 우리는 결코 “아디오스!(‘굿 바이’에 해당하는 스페인어)”라고 말하지 않았다. ‘길이 존재하는 한 영원한 이별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서로의 가슴을 맞대고 이렇게 말하는 거지.

“아스타 루에고!(나중에 다시 보자)”

노동효 <남미 히피 로드>저자·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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