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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휴가 내고 가는 ‘와인 성지’…인기 이유가 있네!

등록 2021-05-27 04:59수정 2021-05-27 11:21

와인족 열광 춘천세계주류마켓
4천평 부지 3천 종 와인 빼곡
지역화폐 사용하면 추가 할인
옆 레스토랑은 ‘콜키지 프리’
춘천 세계주류마켓 내부 전경. 사진 춘천/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춘천 세계주류마켓 내부 전경. 사진 춘천/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춘천은 조금 애매한 위치다. 고속도로를 조금 더 달리면 바다를 볼 수 있는 속초나 양양이 나온다. ‘춘천은 호수 보고 닭갈비 먹으러 가는거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와인을 좋아하는 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의의로 춘천에는 술꾼들의 성지가 있다.

강원 춘천시 동내면 학곡리에 있는 세계주류마켓이 그곳이다. 와인만 3천 종, 그외 위스키, 사케, 막걸리 등 4500 종류의 술이 즐비하다. 기본 가격도 좋은 데다 강원사랑상품권, 춘천사랑상품권 등 지역화폐를 사용하면 10% 더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어 술꾼들의 마음이 설레이지 않을 수 없다.

반대로 이렇게 말하는 이도 있다. “아무리 싸다지만 술 사러 무슨 춘천까지 가냐”고. 하지만 세계주류마켓은 서울 시내 전통 시장 안에 있는 새마을구판장, 조양마트 등과 함께 와인 홈술족들이 열광하는 곳 가운데 하나다. 요즘은 고속도로가 막히는 주말을 피해 평일에 휴가를 내고 가는 이들도 많단다. 코로나19 이후 ‘홈술’·‘혼술’ 인구가 늘면서 와인 시장이 급격하게 팽창한 지금, 홈술족 사이에서 세계주류마켓은 더 자주 언급되고 있는 상황. 단순히 술을 싸게 판다는 이유만으로 기름값 들여가며 먼 곳을 찾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성지 순례하는 마음으로 지난 29일 이곳엘 다녀왔다.

와인을 고르고 있는 손님들. 사진 춘천/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와인을 고르고 있는 손님들. 사진 춘천/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마켓 입구에서 사람들을 반기는 거대한 황금빛 조니워커 동상부터 어쩐지 이런 예감을 들게 한다. ‘아, 이 곳은 술꾼들의 천국이겠구나’. 평일임에도 수십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에 차가 80% 이상 들어차 있었다. 1만3223㎡(약 4천평) 부지에 마켓 외에 카페, 레스토랑, 반려견 놀이터 등이 함께 있다. 앞으로는 현재 주류 창고 자리에 지하 셀러 겸 매장도 꾸릴 계획이란다.

입구에 놓여 있는 카트를 힘차게 밀며 입장했다. 와인이 빼곡히 진열된 매장은 창고형 매장 스타일로 꾸며져 있는데, 실제로 주류 창고 부지였다고 한다. 2년 전 아내 조명희 대표와 세계주류마켓을 연 손종혁 대표는 20대 때부터 27년 동안 춘천에서 주류 도매업을 해왔다. 수입 주류부터 전통주까지 다양한 술을 취급하면서도 소비자로서 와인 한 병 사 마시는 일이 어려워 일을 벌였다. “2만~3만원짜리 와인 한 병 사 먹으려 해도 백화점, 와인숍 가면 어쩐지 문턱이 높고 너무 불편했다”는 것이다.

“아내와 얘기하다가 외국엔 카트 끌고 편하게 와서 맥주 담고, 와인 담는 가게들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왜 그런 시설이 없지? 여기 도매장 마당에 창고 하나 짓고 해볼까? 한 것이 시작이죠.”

편안한 분위기이지만 와인 구성은 짱짱하다. 석가탄신일 연휴에 남편과 강원도 여행 중 이곳을 들렀다는 장지혜(34)씨는 이번이 4번째 방문이라고 했다. “평소 이탈리아 와인을 좋아하는데, 여기는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좋은 이탈리아 와인도 많고 가격도 좋은 편이라 춘천 인근에 갈 일이 있으면 여기를 꼭 거쳐 가는 편”이라고 했다.

세계주류마켓 와인 교육 공간. 사진 춘천/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세계주류마켓 와인 교육 공간. 사진 춘천/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데일리 와인’, ‘호텔 레스토랑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와인’ 등 주제별 섹션 뿐 아니라 화이트, 레드 등으로도 나뉘어 있고, 나라별로도 구획이 나뉘어 있었다. 손님들은 와인 검색 앱인 비비노, 와인서처 등을 켜고 손에 쥔 와인이 무슨 맛인지, 해외 평균 판매가는 어떤지 부지런히 검색하고 있었다. 일부 고객들은 와인을 고르며 동행인에게 열심히 브리핑하기도 했다. 얼마나 진지한지 학구열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휴가를 내고 이 곳을 찾았다는 직장인 김정진(가명·35)가 그랬다. 그는 “공부용으로 이것저것 일부러 사서 마시는데, 오늘은 국내에서 찾기 힘든 프랑스 론 지방의 바케라스 지역의 와인이 있어서 사봤다”고 말했다.

기자도 한손으론 카트를 밀고 한 손으론 비비노 앱을 켜고 부지런히 매장을 누비기 시작했다. 매장엔 전문 와인 교육을 받은 직원들이 여럿이었지만 부담스럽게 ‘필요한 와인 있으십니까’라고 묻지 않았다. 대신 궁금한 와인을 물으면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순 있다. 세계주류마켓을 지키는 점장과 매니저는 업계에서 10년 이상 종사한 이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굳이 묻지 않더라도 만화 〈신의 물방울〉급으로 귀를 혹하게 하는 설명들이 와인 가격표에 함께 쓰여 있었다. ‘우아한 산도와 뛰어난 구조감의 타닌’이 돋보이는 부르고뉴 피노누아는 얼마나 매혹적일까. ‘붉은 딸기의 풍부한 향과 스파이시한 노트가 느껴지는 풀 바디 와인’이란 문구엔 어쩐지 진한 과일향이 느껴졌다. 2만원대에 ‘전통 샴페인 방식으로 만든 까바(스페인의 스파클링 와인)’라니…. 홀라당 마시기엔 부담스러운 비싼 샴페인 대신 손을 절로 뻗게 하는 멘트다.

세계주류마켓 반려견 놀이터. 사진 춘천/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세계주류마켓 반려견 놀이터. 사진 춘천/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하나 둘 담기 시작하니 어느새 카트가 가득 찰 지경이었다. 결제에 앞서 지역 화폐를 충전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달엔 춘천사랑상품권이 일찍이 소진돼 강원사랑상품권만 사용할 수 있었다. ‘탕진잼’의 기운을 겨우 누그러뜨리고 다음을 기약했다.

어느새 사람들은 마켓 옆 레스토랑 ‘와우’에 모여 있었다. 레스토랑에서는 세계주류마켓에서 와인을 구매한 뒤 콜키지 프리로 와인을 마실 수 있다. 초여름 저녁의 푸르스름한 하늘빛이 어쩐지 와인 홀짝이기 딱 좋은 시간 같았다.

문턱 낮아진 와인숍에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두 대표에게서 이 공간에 대해 설명을 들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단어가 ‘편하게’였다. 와인을 사러 온 손님들이 편안하게 머물고 갈 수 있도록 한 마음 씀씀이가 곳곳에서 보였다. 매장에서는 대체로 신나는 한국 대중 가요가 흘러나온다.

“아이든 어른이든 다 같이 오는 공간인데 팝이나 어려운 노래보다는 자주 듣는 편안한 노래가 좋다”는 게 조 대표의 설명이다. 노인들이 보기 편하도록 제작한 큼직한 글씨의 카페 메뉴판, 반려견 놀이터, 아이들을 위한 젤리와 아이스크림 등의 품목도 “누가 와도 불편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비롯했다. ‘노키즈존’이 아닌 ‘예스키즈존’인 것이 반갑다고 하자 손 대표가 말했다.

“술 취한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바글거리는 게 훨씬 좋아요.”

춘천/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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