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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세상에 단 한장뿐인, 흑백 즉석사진 어때요?

등록 2021-05-20 04:59수정 2021-05-20 09:35

식상함 벗어난 이색 기념사진
흑백 즉석사진으로 기념일 축하하고
스마트폰 플래시로 반딧불이 만들어
연희동 사진관.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연희동 사진관.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인생을 긴 끈에 비유한다면, 크고 작은 일들을 기념하는 사진은 중간 매듭이 된다. 매듭을 더듬어 지난 추억을 되새기고 규칙적인 간격의 매듭을 통해 행복을 확인하기도 한다. 매듭 자체도 중요하지만, 너무 뻔하다면 지루하지 않을까. 이런 식상함에서 탈피하고자, 조금 더 이색적인 기념 사진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중요한 이벤트 중 하나인 결혼기념일에 소박한 매듭을 만드는 흑백 즉석사진과 결혼식에 반짝이는 빛이 되는 반딧불이 사진이 최근 인기라고 해, 관련 사진가들을 만났다.

필름 고집하는 흑백 즉석사진관

“오는 사람마다 꼭 물어본다. ‘작가님 여기 몇 년 계실 거예요?’라고. 사진관이 문 닫을까 걱정하는 것 같다.”

지난 12일 서울 연희동의 고즈넉한 주택가 1층. 건물까지 직접 디자인하고 간판을 내건 지 7년째인 ‘연희동 사진관’ 김규현 작가의 말이다. 필름 사진만 다루는 사진관의 수는 손에 꼽을 정도고, 그중에서도 흑백 즉석사진을 찍던 곳들은 2018년 전후로 필름 수급이 어려워져 대부분 취급을 중단했다.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은 사진관도 예외가 아니어서 매년 기념일마다 찾아오는 손님들에겐 사진관의 안위가 궁금할 법하다.

이곳에서 찍은 흑백 즉석사진을 살피면 결혼기념일에 부부가 함께 찍은 사진이 유독 많다. 첫해나 이듬해는 둘만 나란히 서서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있고, 그 다음 해에는 만삭인 아내가 새 식구를 품고 있으며, 네 번째 해는 사진 속 얼굴이 셋이 된다. “사진관에 시간이 쌓이니 기쁜 일도 많이 생긴다”고 김 작가는 말했다.

연희동 사진관의 흑백 즉석사진.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연희동 사진관의 흑백 즉석사진.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작년 가을의 일이다. 계절마다 와서 즉석사진을 찍던 커플이 다음 달에 결혼한다고 3년 치 사진 열두장을 모아 와 하나의 액자로 제작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액자를 예식장 입구 포토 테이블에 놓았는데 너무 예뻤다. ‘저희 이제는 일 년에 한 번만 올게요’라고 말하는데 너무 뿌듯했다.”

1년에 네 번 오던 손님이 앞으로 한 번만 오겠다는데도 기뻐할 직업은 의사뿐인 줄 알았는데 사진사도 추가해야겠다. “그분들이 사계절을 기록하던 이유가 재미있었다. 자기들이 이걸 도대체 몇장이나 찍을지 궁금했었다고 하더라. 다 모아서 보니, 계절마다 사진 찍던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결혼기념일마다 찍은 사진이 늘어나며 한 가족의 역사를 기록하고, 어느 한순간을 기록한 사진이 모여 특별한 날을 장식하는 기념사진이 된다. 기념과 기록의 매개물이 되어준 흑백 즉석사진은 현상까지 2분이면 족하다.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점이 마음을 가볍게 해 사진관에 자주 들를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수정하거나 복제할 수 없는 단 한장의 원본이라는 특징 때문에 디지털카메라 앞에 섰을 때와 다른 긴장감을 준다. 기억이 또렷하게 남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연희동 사진관의 김규현 작가.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연희동 사진관의 김규현 작가.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연말이나 연초, 20대의 마지막, 혹은 30대의 출발을 남기러 오기도 한다. 그분들이 아날로그 사진이 진짜고 디지털 사진은 가짜라고 생각해서 아날로그 사진을 찍으러 오는 게 아니다. 사진 찍기 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디지털 사진하고는 좀 느낌이 달라서’, ‘이거는 한 번 찍으면 끝이잖아요, 그 느낌을 그대로 가지고 싶다’고 한다. 디자털 사진하고는 다른 사진이라고 받아들이는 거다.”

아날로그 즉석 사진에 매력을 더하는 것은 희소성이다. 하지만 희소성은 걱정을 낳는다. 생산이 중단되어 한정된 수량이 남아있는 필름으로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의미도 있지만, 매해 꾸준히 기록하고 싶은 이들에겐 내년에도 사진을 찍을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사용해온 필름이 후지의 FP-3000B라는 고감도 흑백필름인데 단종된 지 10년이 넘었다. 인화지에 시트가 덮여 있고. 2분 정도 후에 시트를 벗겨내는 박리식 필름이다. 다른 흑백 즉석사진용 필름이 있지만 사진 품질이 성에 차지 않는다. 각 나라에 흩어진 재고를 계속 모아서 매년 1년 치 물량을 확보 한다. 동시에 이걸 대체할 수 있는 필름도 개발했다. 실제로 테스트 몇 번을 거쳐봤고 샘플도 있는데, 아직 생산단계까지는 가지 않았다. 만약 기존 필름을 교체한다면 1년 전에 미리 공지를 드릴 계획이다.” 김 작가 말로는 지금도 후지 흑백필름이 3천장 준비되어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단다.

연희동 사진관에서는 즉석사진을 찍은 손님들에게 사진관 배경으로 폰카 사진을 찍어주는 것이 일종의 코스처럼 되어있다. 필름만 다루는 사진사가 왜 손님 핸드폰 사진을 찍어주는지, 홍보라고 해도 귀찮은 일 아닌지 물었다. ‘손님들이 가게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게 유리창 밖으로 보이길래 사진사인 내가 찍는 게 낫지’ 하면서 나가서 찍어주던 게 시작이란다. 싱거운 이유다. 싱거운 사람이 계속 사진관을 지킬 예정이다.

결혼식 반딧불이 사진. 온유어사이드 제공
결혼식 반딧불이 사진. 온유어사이드 제공

결혼식 하객이 반딧불이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의 주요 임무 가운데 하나는 사진에 얼굴을 남기는 것이다. 예식과 관련해 흔히 쓰이는 용어로 ‘원판’은 예식을 마치고 신랑·신부가 양가 직계가족과 친지들, 친구들과 직장 동료 순서대로 정면을 바라보고 찍는 단체 기념 촬영 사진을 말한다. 원판은 그러니까, 기념사진이기도 하고 하객이 예식의 끝까지 지켜보고 축하했음을 ‘증명’하는 사진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1.5단계부터는 예식 진행시간은 물론, 원판 촬영 때도 마스크를 필수로 착용해야 한다. 하객의 존재감은 마스크로 얼굴을 반 가린 만큼 옅어졌지만, 이 시국이라 더 근사한 사진이 있다. 하객들이 치켜든 핸드폰 플래시가 신랑과 신부를 둘러싸고 반짝이는 일명 ‘반딧불이 샷’이다.

최근 2~3년 전부터 퍼지기 시작해 결혼식 사진의 필수요소가 될 정도로 인기를 끄는 핸드폰 플래시 사진은 이전에 식을 치렀던 기혼자들이 ‘결혼식 다시 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부러움과 탄성을 자아낸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어둠 속이라 그리 어색하지 않으며, 가만히 서 있는 것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진이라 뜻깊다. 웨딩 사진 업체 ‘온유어사이드’ 김평화 작가는 “일단 식장 내부 조명을 완전히 암전을 해주는 게 중요하다. 예전에는 이 과정이 번거로웠는데 요즘은 필수 컷이 되어서 대부분 식장에도 협조를 잘 해주는 편이다”고 말했다. 단, 야외예식이나 식장에 창문이 있는 경우는 촬영이 불가능하다.

핸드폰 플래시를 든 하객은 몸을 움직이지 않고 사진사의 지시를 잘 따라야 한다. 밝은 공간에서의 촬영은 셔터 속도를 확보할 수 있어서 조금 움직이더라도 흔들리지 않게 촬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딧불이 컷은 최소한의 빛으로 촬영하기 때문에 하객이 움직이면 잘 나온 사진을 건지기 힘들다. 김 작가는 “반딧불이가 신랑과 신부를 비추는 조명 역할을 하게 찍을 때는 플래시가 신랑·신부 쪽으로 향해야 하고, 반딧불이 하나하나의 빛을 살리는 사진은 플래시를 정면으로 들어 달라고 요청한다”고 촬영 팁을 설명했다.

반딧불이 샷과 유사한 사진으로 하트 샷도 있다. 마치 네온사인 같은 여러 개의 하트가 신랑과 신부 주변을 장식한다. 역시 플래시를 이용한 사진이다. 일반 촬영보다 장노출을 해서 ‘찰칵’하는 시간을 길게 갖고 그 사이에 핸드폰 플래시를 든 팔로 하트 모양을 그리면, 그 궤적에 따라 빛의 흔적이 남는 원리다. 예식의 당사자가 될지 아닐지는 기약이 없는 하객이라도 누군가의 결혼사진에 반딧불이로 혹은 하트로 남는 것도 꽤 낭만적인 일일 것. 곧 결혼을 앞둔 분들 모두 멋진 사진을 남기시길!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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