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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술이 술술, 참치 통조림

등록 2021-04-30 10:59수정 2021-05-03 09:48

〈한겨레〉자료 사진
〈한겨레〉자료 사진

간혹 기발한 발명품이나 기획을 보고는, 도둑맞은 듯한 기분이 든 적이 있으신가. 아, 저거 내가 생각한 건데. 난 요리 쪽으로 그런 경험이 꽤 있다. 짬짜면, 이경규씨가 히트시켰던 하얀 치킨라면, 덜 익힌 돈가스 같은 것들. 아주 많다. 이 얘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킥킥 웃으면서 이랬다.

“네가 그 생각할 때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사람이 만 명은 된다고 보면 틀림없다. 실천하는 놈이 이기는 거지.”

풀이 죽었다. 음식 말고도 그런 게 참 많을 거다. 우주선도, 전기자동차도 누군가는 동시에 생각하던 거였다. 밀어붙이고 할 줄 아는 놈이 했을 뿐이다. 적어도 아이폰은 동시에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 같지 않지만. 하여간 지금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라. 스티브 잡스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선점(?)했다고 생각한 음식 아이디어 중에 정말 아까운 게 있는데, 바로 고추참치다. 맵게 양념한 참치 통조림. 오랫동안 나는 참치살은 원래 하얀 줄 알았다. 통조림이 내가 봤던 참치의 전부였으니까. 동원참치라는 브랜드가 나오고, 학교 친구들 중에 동원이는 모두 별명이 참치가 됐다. 축구선수 지동원씨도 별명이 지참치… 아, 아닙니다.

통조림 참치의 전성기에는 어떤 애는 도시락 반찬으로 그걸 덜렁 캔째 들고 오기도 했다. 엄마가 바쁘시거나, 통이 큰 엄마셨을 거다. 학교 다닐 때 몰래 술을 마시곤 했는데, 독서실 연탄난로에다가 여러 가지 안주도 만들어 마셨다. 처음엔 쥐포를 굽다가 나중엔 간이 커져서 김치찌개도 끓였다. 친구 중에 요리 본능이 꿈틀거리는 소년이 많았던 거다. 그때쯤 참치 김치찌개도 등장했던 것 같다. 어떤 녀석이 집 냉장고에서 김치를 반 포기 훔쳐서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편의점도, 마트도 없던 시절의 소년들은 아주 요리를 잘했다. 스스로 만들어 먹는 데 익숙했달까. 바쁠 때는(?) 그냥 참치를 뚜껑만 따서 난로에 얹으면 안주가 됐다. 지금 따져보면 그다지 추천한 일이 아니다. 통조림 코팅제가 열에 약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매운맛으로 산다던가. 참치 자체에 고소하고 짭짤하게 간이 되어 있는데 뭔가 ‘2프로’ 빠진 맛이다. 바로 매운맛이 없었다. 고춧가루를 뿌리거나 고추장(그때 별표 고추장이라고 비닐봉지에 담아 파는 달콤한 비주류 고추장이 일품이었다)을 한 숟갈 넣어 자글자글 끓이면 소주 안주에 기가 막혔던 것이었다.

참치 요리는 점점 진화했다. 마늘을 다져 넣고 파를 뿌리거나, 후춧가루가 첨가되기도 했다. 맥코믹이 최고야, 이러면서 남대문 도깨비시장에서 사 온 미제상표의 후추를 넣기도 했다. 우리는 그런 올라운드 참치, 갖은 양념 참치를 스스로 제조해내던 소년이었다. 25도 소주에 참치 캔 두 개면 네 명이 먹고 마실 수 있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동네 슈퍼에서 ‘고추참치’라는 걸 발견하고는 얼마나 억울하던지. 거, 로열티 좀 내쇼.

고추참치는 당장 도시락 반찬 시장의 강자로 등장했다. 이거 하나를 들고 온 친구는 급우들의 습격을 받느라 힘들었다. 밥에 비비면 아주 꿀맛의 반찬이었다. 기름 넉넉히 들어 있지, ‘단짠’이지, 단백질이지, 더구나 그 조미의 비밀은 무엇인지 아주 입에 착착 감겼다. (뭔지 다 압니다!)

외국 요리책에는 참치로 만드는 온갖 음식만을 다룬 것도 있다. 정확히 말하면 참치 통조림을 재료로 하는 책이다. 재미있는 건, 참치 통조림이 외국에서는 제법 귀하게 대접받는다. 적어도 유럽에서는 고급 참치 통조림이 있다. 전통 어업으로 잡아서 좋은 올리브유에다 재우고 병에 넣어 파는 건 명품점에서 취급하기도 한다. 참치라고 다 같은 참치가 아닌 셈이다. 흥미로운 건, 내 입에는 그게 그거라는 사실이다. 사실, 고급과 대중 참치는 종이 다르다. 우리가 먹는 건 잘 잡히고 양도 많은 가다랑어류가 많다. 병조림 고급 참치는 우리가 아는 진짜 참다랑어나 황새치가 많다. 한데 그걸 익혀서 담아 놓으니 구분이 잘 안 간다. 혹시라도 그걸 드시고 싶으셔도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구하시자면, 인터넷에 팔더라. 물론 고급인데 캔에 든 것도 있다.

참치 김밥, 참치 김치찌개, 참치 샌드위치, 참치 샐러드, 참치라면…. 참치 요리가 제일 다채롭게 새끼를 친 나라는 단연 한국이다. 내가 추천하는 비장의 참치 통조림 안주는 두 가지다.

첫째, 참치 크로켓. 참치살을 체에 밭쳐 기름을 제거한다. 삶아 으깬 감자와 섞고, 다진 양파와 후추를 뿌린다. 간장으로 간을 한다. 밀가루, 계란, 빵가루(서양식 튀김의 정석. 돈가스 튀김과 같은 방식) 순서로 묻혀서 170도 기름에 색이 나오도록 튀기면 끝. 소스는 마요네즈에 레몬즙 섞어서! 맥주 열 병 보장.

둘째, 참치 번데기 콤보다. 참치와 번데기 모두 통조림으로 산다. 따서 작은 냄비에 국물까지 그대로 넣는다(기왕이면 찌그러진 양은냄비). 다진 양파와 마늘을 넉넉히 넣어 보글보글 가볍게 끓인다. 후추, 고춧가루를 뿌려 먹는다. 소주 열 병 보장.

그런데, 이것도 이미 누가 하고 있다고? 내가 처음인 줄 알았는데.

박찬일(요리사 겸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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