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적 가치를 내세운 옷이 인기다. 코오롱스포츠의 폐페트병으로 만든 셔츠와 힙색, TBJ의 커피찌꺼기로 만든 티셔츠와 청바지, 올버즈의 친환경 소재로 만든 신발, 나우의 폐플라스틱으로 만든 모자. 각 업체 제공, 사진 윤동길(스튜디오어엡터 실장), 그래픽 김은정 기자 ejkim@hani.co.kr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멋을 추구하는 패션계의 최근 화두는 단연코 ‘환경’이다.
‘폐의류를 재활용한 셔츠’·‘그린슈머의 마음을 사로잡은 제로 웨이스트 아이템’…. 이 같은 제목의 보도자료들이 하루가 멀다고 쏟아져 나온다. 소비자라면 ‘착한 패션을 이끌어가는 브랜드 리스트’ 따위의 인터넷 쇼핑몰 광고 메일을 받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렇듯 요즘 패션의 대세는 착한 옷. 즉,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는 옷이다.
‘친환경’하면 막연하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어쩐지 자연 염료(치자 같은)로 염색한 개량 한복이나 여러 사람이 오랜 시간 돌려입는 빈티지 아이템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요즘 착한 옷의 범위는 한층 넓어졌다. 쓰레기가 될 뻔한 다양한 재료가 패션 아이템으로 재탄생한다. 커피 찌꺼기로 청바지를 만들고, 폐그물망으로 알록달록한 색상의 모자를 만든다. 버섯 균사체로 만든 인공 가죽은 명품 브랜드 가방의 소재로 활용된다. 자연 소재에서 이제는 자원 재활용에까지 손길을 뻗는 모양새다. 한 해 동안 패션·섬유산업이 배출하는 의류 폐기물이 21억t에 달한다니 자연에서 친환경을 찾기보다는 집안 단속이 급한 상황.
친환경 재료의 범위가 넓어지자 디자인도 다양해지고, 힙(Hip)해졌다. 자연스럽게 친환경은 윤리의 차원을 너머, 가장 핫한 패션 트렌드가 됐다. 패피(패션 피플)들의 옷 고르는 기준은 플렉스(과시)에서 친환경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들은 그것을 ‘힙환경’또는 필수라는 의미의 ‘필(必)환경’이라고 표현한다. 무턱대고 비싼 명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비가 지구에 해를 얼마나 끼치는지, 이왕이면 더 좋은 선택은 없는지 안테나를 곤두세우는 것. 특히 유행과 윤리적 소비에 민감한 엠제트(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태어난 세대)가 유행을 주도하고 있다.
이런 소비 경향에 따라 패션을 선도하는 세계적 브랜드부터 일상적인 브랜드까지, 매 시즌 환경을 중요한 콘셉트로 내세운다. 구찌는 지난해부터 재활용 폴리에스터와 재생 나일론, 유기농 직물 등으로 만든 자원 순환 라인인 ‘오프 더 그리드’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발렌시아가는 올 시즌 패션 경향을 짚은 2021년 봄·여름 파리 패션위크에서 ‘지구 종말 이후의 삶’이란 주제를 내세워, 업사이클링 원단으로 만든 의류를 무대에 세웠다. 아웃도어 브랜드도 예외는 아니다. 파타고니아, 코오롱스포츠 등 브랜드들은 최근 100% 재생 소재로만 옷을 만들거나, 판매 수익금의 일부를 지속가능 사업에 기부하는 등 환경적 가치를 최전선에 내세운다.
어떤 브랜드들은 지속가능한 패션을 추구한다. 패션 브랜드 아르켓, 텐먼스 등은 옷장을 열면 항상 있었을 법한 옷, 오래 입어도 질리거나 촌스러워 보이지 않는 옷, 1년 중 심하게 춥거나 더운 시기만 빼고 사계절 내내 입을 수 있는 옷을 판다. 소비 자체를 줄이는 게 환경을 돕는다는 취지다.
우리의 선택이 지구를 좀 더 오래 숨 쉬게 할 수 있을까. 환경을 해치지 않으면서 소비를 지속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것들을 영위하면서 지속가능성을 추구할 수 있을까. 이런 윤리적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면, 한 가지만 기억하자. 친환경은 멋있다, 그리고 가장 힙한 유행이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