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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사월’에 꽃이 지면

등록 2021-04-16 04:59수정 2021-04-16 17:44

최현우의 오늘의 날씨
4.16안산시민연대 한 회원이 지난달 27일 세월호 참사 7주기를 앞두고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잊지않겠습니다’라고 적힌 노란 우산을 쓰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4.16안산시민연대 한 회원이 지난달 27일 세월호 참사 7주기를 앞두고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잊지않겠습니다’라고 적힌 노란 우산을 쓰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텔레비전 속에서 배가 가라앉고 있었다. 그 배에 수학여행을 떠난 고등학생들이 타고 있다는 사실이 모든 채널에서 속보로 터졌다. 당시에 그들을 구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은 당연히 하지 못했다. 밤낮을 바꾼 채로 서툴게 작품 마감을 하던 나는 책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가족과 함께 화면을 지켜봤다

내게는 4월 징크스가 있다. 사월. 표기법은 출판사나 언론사마다 규칙이 조금씩 다르지만, 나는 4월의 아라비아숫자 표기를 ‘사월’이라고 한글로 쓰기를 고집할 때가 있다. 사월은 동음이의어로 모래 위의 비치는 달이라는 뜻의 ‘사월(沙月)’, 서쪽 하늘로 지는 달이라는 뜻의 ‘사월(斜月)’이 있는데, 여러모로 한가지 표기에 다양한 의미가 담기는 그 미묘한 느낌을 좋아한다.

이는 개인적으로 시에서도 자주 사용하는 감각이다. 출판사 표기법에 따라 ‘오후 4시’로 표기해야 하는 부분을 ‘오후 네시’로 사용하는 식이다. ‘4시’라는 시각 표기와 너의 시간(時) 혹은 너의 시(詩)라는 의미를 담은 ‘네 시’라는 표기를 겹쳐 표현하는 일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한글이 표음문자라는 점에서 비롯되는 특징이고 외국인들은 이런 부분 때문에 한글을 어렵게 여기기도 하지만, 나는 이런 점이 한글이 가지는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생각은 알아보는 이 없는 혼자만의 만족이거나 착각에 가깝다.

그리고 4월은 내게 한가지 표기가 더 있다. 어쩐지, 시대와 사람에게 많은 비극이 일어난 ‘사월(死月)’이기도 한 것이다.

*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나면 1월 1일 신문에 작품과 이름과 사진이 실리며 시를 쓰는 사람이라고 호명을 받게 된다. 물론 당선 통지는 2~3주 전에 미리 받아서 알게 되지만, 내가 쓴 작품이 세상에 공표되고 모종의 공식적인 인증을 받은 듯한 경험은 살면서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체험이었다. 사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이고 또 내일이 올 뿐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하루아침에 복권에 당첨된 기분과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고 쫄딱 망한 기분이 반반 섞인 듯한 상태가 된다. 기쁨은 아주 잠시뿐이고 동시에 ‘이다음엔 무얼 해야 하지?’라는 막막함이 들이닥친다. 그리고 곧 깨닫는다. 전력으로 달려서 도착한 결승선이 사실은 진정한 출발선에 불과하다는 걸. 드라마 〈미생〉에도 이런 대사가 있지 않았나. 어쩌면 인생이라는 건 문을 열고 그 안에 들어가면 또 다른 문이 있고, 계속 다음과 그다음 문만 열다가 끝나는 일 같다고.

스물다섯, 시인으로 호명된 그해 4월에 나는 여전히 시인이라는 정체성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과 생각에 과도하게 힘을 주고 마치 세상에 마지막 남은 현자라도 된 양, 쓸데없이 거창한 부담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밥벌이를 위한 또 다른 ‘직업’을 준비하지 못하면 사는 내내 가난하리라는 두려움에!) 도무지 이 삶은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지 알지 못하겠고 슬쩍 엿보고 따라 해볼 생활적인(?) 선배도 주변에 없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오락가락하는 자기 확신과 자기비판. 지금 돌아보면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자기 과몰입의 시절이었다. 문예지들로부터 처음 받아본 작품 청탁들은 기쁘기보다 무서웠고, 타인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평가에 몸살을 앓으며 그해 봄을 소심하게 끙끙거렸다.

텔레비전 속에서 배가 가라앉고 있었다. 그 배에 수학여행을 떠난 고등학생들이 타고 있다는 사실이 모든 채널에서 속보로 터졌다. 당시에 그들을 구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은 당연히 하지 못했다. 밤낮을 바꾼 채로 서툴게 작품 마감을 하던 나는 책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가족과 함께 화면을 지켜봤다. 구하겠지. 에이 설마. 뒤집힌 배의 바닥이 수면 아래로 다 들어가고 그 위로 밤이 깔렸다. 나는 그렇게 공포로 가득한 어둠을 본 적이 없었다. 말 그대로 칠흑이었다. 이튿날, 무언가를 직감한 엄마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것을 보았다. 부모라서 예감하고 공감하는 절망. 내가 감히 아우를 수 없는 절망. 시인이 된 지 4개월, 내가 시인이든 시인이 아니든, 그런 건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살아있음으로 인해 가질 수 있었던 자랑과 허무와 고뇌는 더 이상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등단했던 동료 시인들과 가끔 모여 얘기할 때면, 우스갯소리로 우리는 너무 슬픈 시절에 시인이 되어서 만날 슬픈 글만 쓰나 봐, 말하곤 한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암묵적으로 가장 먼저 금지되는 일은 문화예술이다. 당시 장르를 불문하고 수많은 공연과 페스티벌들이 취소됐다. 친구로 지내던 예술인들 역시 수입이 끊겨 힘든 계절을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함부로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문인들은 각종 추모제에 사용될 추모글을 작성하거나 낭송을 했다. 나 역시 몇번의 추모 행사에서 시인이랍시고 추모 시를 낭송한 적이 있었는데, 고작 스물다섯짜리인 내가 함부로 이해한다거나 감당할 수 있는 슬픔이 아니었으므로 나중에는 정중히 거절했다. 살아있다는 게 몹시도 민망했다. 시간은 4월 16일에서부터 너무 느리게 흘렀다.

*

코로나 시대 이전에는 일년에 두세번씩 제주로 떠났다. 마지막으로 갔던 제주에서는 4‧3평화공원에 들렀다. 제주도 북동쪽, 근처에 있는 휴양림에 가려다가 길에 이끌려 의도치 않게 잘못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 제주 4‧3에 대해 처음 면밀하게 알게 되었다. 평화공원은 넓고 지대가 높아서 멀리 보이는 마을들이 순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 평원은 생각보다 절경이었고, 내부에 있는 4‧3평화기념관은 예상외로 놀라웠다. 전시의 내용과 순서가 서사를 갖추고 있고 관람객의 감정을 효과적인 기승전결로 이끌었다. 마치 잘 다듬은 문학작품처럼. 전시된 당시의 증거 물품들과 상황을 재현한 설치작품들의 수준도 전혀 조악하지 않았다.

그러나 평화공원을 빠져나오면서는 슬며시 슬픈 생각이 들었다. 이 아름다운 조경과 기획들이 결국, 누군가의 절박함이고 처절함이었겠구나. 후대의 누군가들이 잊지 않았으면 하는, 그래서 같은 폭력을 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그런 소원이었겠구나. 자주 오게 하고, 자주 기억하게 해서, 반복하지 않고 싶었겠구나.

*

비극만 있었던 건 아닐 것이다. 민주주의 혁명이라고 여기는 4‧19도 4월의 일이다. 임시정부 수립도 4월 11일에 있었다. 4월 5일은 식목일이 있고, 7일은 보건의 날, 20일은 장애인의 날, 21일은 과학의 날, 22일은 심지어 지구의 날이 있다. 28일은 충무공 이순신의 탄신일도 있다. 자연과 과학, 민주주의와 인권, 지구와 영웅의 날이 모두 4월에 있다.

그러나 나는 4월을 지내는 내내 영 기운이 없다. 내 삶의 외부에서 일어난 불행과 내부에서 일어난 불행들이 모두 4월 달력 속에 고여 있다. 어쩐지 세상의 슬픈 일들은 대체로 4월에 일어났고, 다소 잔혹한 표현이지만 나는 4월을 곧잘 ‘피 내리는 사월’이라고 부른다. 4월에는 도무지 어떤 일도 자신이 없다. 중요한 일들이 4월에 있으면 그 일들을 곧잘 망쳤고, 4월이 되면 나는 인간으로서 가장 나약한 기분이 되어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다. 완연한 꽃들도 끝내, 4월을 지나가며 잎을 떨군다.

얼마 전에 아내가 된 짝꿍에게 이런 징크스를 고백한 적이 있다. 그때도 왜인지 모르게 얼이 나가, 직장 업무에서 사소한 실수를 하고 그것을 덮으려다가 큰 잘못으로 만든 4월의 어느 날이었다. 다만 그때 아내가 내게 아주 쾌활하게 했던 말을 나는 종종 떠올린다. “괜찮아, 앞으로의 4월에는 내가 같이 있어 줄게. 같이 망하자.” 그리고 거짓말처럼 4월 징크스가 조금은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사람이 기억을 견디지 못하는 게 아니라, 기억이 사람을 견디지 못하기도 한다. 마음은 문과 문틀 사이에 달린 경첩 같은 것이어서, 어떤 기억은 사람을 뛰쳐나가며 마음을 밀어 접는다. 나는 그 과정을 슬픔이라고 부르지만, 슬픔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어떤 진실이 있을 것이다.

올해 사월은 아무리 만져도 사라지지 않는 모래 위에 비친 예쁜 달그림자거나, 서쪽 하늘로 지며 동쪽에서부터 빛을 불러오는 사월이 되었으면 좋겠다. 결국, 살아있는 모두에게 말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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