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ESC] 김치 ‘밀 키트’, 스스로 만들어가는 맛이 매력

등록 2021-04-15 04:59수정 2021-04-15 09:28

김치 밀 키트 체험해 보니
홍신애 김치 밀 키트. 백문영 제공
홍신애 김치 밀 키트. 백문영 제공

엄마가 ‘김장 보이콧’을 선언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먹는 사람도, 돕는 사람도 없는데 할 일만 많고 힘들다’는 이유였다. 처음엔 그리 서운하지 않았다. “사 먹는 김치 맛만 좋더라” 쓸데없는 소리 덧붙여 가며 오히려 엄마의 김장 탈출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엄마표 김장 김치가 없으니 식탁은 늘 앙꼬 빠진 찐빵마냥 허무했다. 그렇다고 엄마에게 ‘김치를 다시 담그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불효도 그런 불효가 있어야지. 이 와중에 기적처럼 찾아든 물건이 ‘김치 밀 키트’다. ‘무슨 김치를 밀 키트로 만들어서까지 먹나’ 싶은 마음 반, 혹시 모를 마음 반에 직접 주문해 보았다. 마침 요리연구가 홍신애가 본인의 ‘평양식 육수 김치’를 밀 키트로 냈다는 소문을 들었다.

스티로폼 박스에 새지 않는 밀폐 김치 통, 단단히 포장한 절인 배추, 김치 양념, 육수가 들어 있었다. 김치를 버무릴 김장 매트와 완성된 김치를 누를 수 있는 밀폐 누름 독까지 완벽히 구비되어 있어 아무것도 준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배추의 물기를 짜고, 김장 매트에 적당량의 김치 양념을 쏟아부었다. 시키는 대로 만들면 보장된 완제품이 나온다는 것이 밀 키트의 최대 장점이지만, 획일화된 맛을 낼 수밖에 없다는 데에서 늘 아쉬웠다. 하지만 이 김치 밀 키트는 달랐다. 내가 원하는 만큼 양념을 덜어내 배추에 비빌 수 있으니 ‘나만을 위한 김치’를 만들 수 있었다. 짠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양념은 약간만 묻히고 시원한 맛을 내기 위해 동봉된 양지머리 육수 두 봉을 모두 부었다. 다소 서툴렀지만 또 얼추 버무리다 보니 즐겁기만 했다. 커다란 배추 세 포기를 금세 ‘김치로 만든 뒤’ 냉장고에 넣고 나니 새삼 뿌듯했다.

바로 먹어도 맛있다는 말에 그날 저녁, 가족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 ‘나의 김치’를 올렸다. “어디서 난 김치냐”며 의심하던 엄마도, “네가 직접 담갔냐”며 당황하던 아버지도 “먹을수록 당기는 맛”이라며 썩 흡족한 눈치를 보이셨다. ‘이런 맛에 김장하는구나’ 싶은 효녀의 마음이 마구 샘솟았다. 백문영 칼럼니스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손가락 줌’과 이별하고 ‘멀티 카메라’ 200% 활용하기 2.

‘손가락 줌’과 이별하고 ‘멀티 카메라’ 200% 활용하기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3.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시어머니 어리광 어찌하오리까? 4.

시어머니 어리광 어찌하오리까?

혜문 대표가 알려주는 ‘삭발의 기술’ 5.

혜문 대표가 알려주는 ‘삭발의 기술’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