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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타오, 무사하니?” 미얀마 친구 답장을 기다리며

등록 2021-04-02 04:59수정 2021-04-02 18:53

예전엔 끊기기 쉬웠던 여행자와 인연
SNS 발달로 이젠 수시로 연락 가능
그중 미얀마 사는 타오가 제일 걱정돼
치앙라이 근교 도이항 산비탈에 지어진 여행자 숙소들. 사진 노동효 제공
치앙라이 근교 도이항 산비탈에 지어진 여행자 숙소들. 사진 노동효 제공

여행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세계를 확장한다. 낯선 풍경, 음식, 소리 등등 집에서라면 결코 겪지 못했을 감각을 경험하는 동안 세계의 폭이 점점 더 넓어진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지 않았던가. 세상은 한 권의 책이며,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한 페이지만 읽는 것과 같다고. 물론 취향에 따라 저마다 늘어나는 페이지는 다르다. 미식가는 맛의 세계를 확장하고, 사진가는 풍경의 세계를 확장하며, 음악가는 소리의 세계를 확장한다. 나의 경우, 여행할수록 이웃이 늘어났다.

치앙라이 도이항의 주요 볼거리. 후아이깨우 폭포. 사진 노동효 제공
치앙라이 도이항의 주요 볼거리. 후아이깨우 폭포. 사진 노동효 제공

20세기까지 국외에서 만난 여행자들과 맺은 인연은 작별과 함께 끊어지기 일쑤였다. 주소를 주고받아도 내 쪽에서든, 상대 쪽에서든 이사하면, 보낸 편지가 수취인불명이 되고 말았으니까.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집을 옮겨도 바뀌지 않는 주소가 생겼다. 여행자들은 헤어지며 전자우편 주소를 주고받았다. 2010년대에 이르자 에스엔에스(SNS)가 일상화되었다. 고국으로 돌아간 친구가 오늘 먹은 음식과 들은 음악까지 알 수 있었고, 실시간 소통이 가능해졌다. 이웃의 폭과 친구 수가 늘어났고, 머나먼 나라와 지역이 곁으로 확 당겨졌다. 그야말로 지구촌이 된 것이다.

카트만두에서 지진이 일어나면 네팔 친구에게 무사하냐고 물었고, 파리에서 폭탄 테러가 있으면 프랑스 친구의 안부를 물었고, 자카르타에서 화산이 터지면 인도네시아 친구의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봄꽃이 피어도 환하게 웃을 수 없는 날도 생겼다. 이웃의 슬픔은 나의 슬픔이기도 했으니까. 2월1일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미얀마에 사는 친구들이 떠올랐다. 한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왔다가 귀국한 마웅저, 내전을 피해 타이로 이주했다가 돌아간 타오. 에스엔에스에 접속했다. 마웅저는 ‘시민불복종운동’에 나섰다는 소식을 전했고, 타오는 ‘세손가락 경례’ 사진을 올린 후 소식 두절이었다. 메시지를 보냈다. “타오, 무사하니?”

치앙라이의 롱쿤 사원. 사진 노동효 제공
치앙라이의 롱쿤 사원. 사진 노동효 제공

타오를 만난 건 치앙라이에서였다. 동남아시아의 무더위로 살갗이 접히는 부위마다 땀띠가 돋던 무렵이었다. 나는 서늘한 기후를 찾아 타이의 최북단 주로 향했다. 골든트라이앵글(타이·미얀마·라오스 3국의 국경지대)과 접한 치앙라이주로 들어섰다. 한때 아편 생산지로 유명했던 곳으로 마약왕은 고산족에게 양귀비를 키우게 하고 아편을 사들였다. 마약왕이 투항하고 단속이 강화된 후 고산족은 녹차밭을 일구거나 관광으로 눈을 돌렸다. 숲속에 방갈로를 짓고, 오지 트레킹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서구 여행자들이 공정여행, 에코투어리즘 등등 선의로 꾸려진 프로그램의 주요 소비자가 되었다. 아유타야 숙소에서 만났던 일본인 도모코가 경험한 오지마을도 그런 프로그램의 일부였으리라. “많은 여행자는 치앙마이를 찾아가지만, 난 조용한 산골에서 휴식할 수 있었던 치앙라이가 더 좋았어.”

큰 배낭을 등에 지고 치앙라이터미널을 나서는데 체구가 작은 청년이 다가왔다. “어느 나라에서 왔니?” “한국!” “숙소는 예약했니?” “아니.” 청년이 ‘아카힐하우스’라고 적힌 브로슈어를 내밀었다. “아카족이 운영하는 홈스테이야. 여기서 30㎞쯤 떨어진 도이항에 있어. 산속이라 시원하고 좋아.” 반짝이는 눈, 또렷한 영어 발음. 여행자들에게 숙소를 소개하는 여리꾼이지만 당당했고, 신뢰감 가는 목소리였다. “그곳까진 어떻게 가?” “저기 서 있는 차로 픽업해. 10분쯤 더 손님을 기다려보고 출발할 거야.” “좋아. 내 이름은 로, 넌?” “타오!”

필자가 묵은 방의 욕실. 대나무창 너머 초록빛 풍경이 아름다웠다. 사진 노동효 제공
필자가 묵은 방의 욕실. 대나무창 너머 초록빛 풍경이 아름다웠다. 사진 노동효 제공

손님은 더는 없었다. 픽업트럭에 올라탔다. 조수석에 앉으며 물었다. “너도 아카족이니?” “응. 고향은 미얀마야.” “라오스에서도 아카족을 만난 적이 있는데….” “아카족의 시조는 티베트에서 살았는데 세대를 거듭하며 남동쪽으로 이동해서 지금은 미얀마, 타이, 라오스, 중국 윈난성에 걸쳐서 살아.” “시조가 누군데?” “슴미오. 아카족 남자는 1대부터 아버지에 이르는 조상의 이름을 외울 줄 알아야 해. 대략 50대에 이르는데, 위로 6대까지 같은 이름의 조상이 있는 남녀 사이의 결혼은 금해. 이제 거의 다 왔다. 저 언덕만 넘으면 숙소야.”

경사진 녹차밭 사이 비포장도로를 지나 아카힐하우스에 닿았다. 아카족 여인이 방을 안내해주었다. 황토집, 굵은 대나무 둥치로 만든 침대, 대나무 잔가지로 만든 옷걸이. 선선한 날씨. 울창한 숲. 쉬어 가기에 좋은 곳이었다. 배낭을 내려놓았다. 아카족 마을에서 지내며 낮에는 녹차밭을 산책하거나 후아이깨우 폭포에 다녀오곤 했다. 저녁엔 여행자들을 태우고 숙소로 돌아온 타오와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미얀마의 사정에 관해 묻곤 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알렉산더 앞에 던져진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평화’라는 이름의 칼로 싹둑 자르지 않으면 풀기 어려운 문제였다.

골든트라이앵글 지역 원주민들이 양귀비 대신 재배하기 시작한 차나무. 사진 노동효 제공
골든트라이앵글 지역 원주민들이 양귀비 대신 재배하기 시작한 차나무. 사진 노동효 제공

“모든 문제는 영국이 미얀마를 식민지배하면서 시작돼. 영국은 미얀마왕국을 무너뜨린 후 식민지 인도의 한 개 주로 편입시켰어. 영국 관리가 1등 계급, 이주해 온 인도인, 벵골인들이 2등 계급, 농사를 짓는 대다수 버마인은 3등 계급으로 핍박받았지. 아웅산은 영국을 몰아내기 위해 일본군 공작부대를 찾아가 군사훈련을 받았어. 함께 훈련받던 서른명을 ‘30인의 동지’라고 불러. 영국이 세계대전에 참전한 틈을 노려 아웅산은 일본군을 도와 영국을 몰아냈어. 근데 물러나겠다던 일본군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지. 유럽의 전황이 수습되자 영국이 다시 돌아왔어. 로힝야족, 카렌족, 카친족 등 소수부족에게 땅을 되찾으면 자치권을 주겠다며 무기를 제공하고 불교도인 미얀마 독립군과 싸우게 했지. 독립전쟁이 미얀마 내 부족 간 전투가 되고 말았어. 우여곡절 끝에 일본군이 후퇴하고 아웅산이 주도권을 잡았어. 근데 그는 독립을 코앞에 두고 폭탄 테러로 사망하고 말았지. 아웅산의 동지이자 오른팔이던 우 누가 수상이 되었지만 당파 싸움이 심했어. 독립군 총사령관 출신의 네 윈이 잠깐 정부를 맡기로 했지. 1년 후 정식 선거가 치러지고 우 누가 이끄는 당이 다수석을 차지했어. 근데 한번 권력 맛을 본 네 윈은 권력의 추가 문민정부로 기울자 쿠데타를 일으켜 스스로 최고 권력자에 올라버렸지.” “그럼 네 윈에게 아웅산 수치는 독립군 시절 동지의 딸인 거네?” “응. 영국에서 살던 수치가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귀국했다가 시위대를 지지하는 연설을 하면서 민주주의의 상징이 되자 가택연금을 시켰지.”

아카힐하우스에서 먹은 타이식 주먹밥. 사진 노동효 제공
아카힐하우스에서 먹은 타이식 주먹밥. 사진 노동효 제공

“너는 어쩌다 타이로 온 거니?”

“네 윈은 소수부족을 극도로 싫어했어. 정부군과 소수부족의 내전이 끊이지 않았고, 내 고향도 평화로울 날이 없었어. 우리는 전쟁을 피해 타이로 넘어왔어. 임시 체류증을 받아 지내곤 있지만 여기선 시민권도 재산권도 없어.”

“아카족은 수치를 지지하니?”

“저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지지해.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면 소수부족까지 끌어안는 연방제가 이뤄질 수도 있겠지. 그러나 군부가 정권을 차지하고 있는 한 평화는 오지 않아. 군부에게 소수부족은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필요악’ 같은 거니까.”

아카족 마을을 떠나던 아침. 타오가 운전하는 픽업트럭 짐칸에는 시내로 출근하는 마을 청년들이 타고, 나는 조수석에 앉았다. 녹차밭을 지날 즈음 길 위의 유럽계 커플이 엄지손가락을 흔들었다. 타오가 차를 세우자 커플이 말했다. “고개 너머 버스정류장까지 태워줄래? 곧 우리가 탈 버스가 도착할 거거든.” 그러곤 덧붙였다. “아이 돈트 해브 타임!”(나는 시간이 없어) 그러자 타오가 웃으며 응답했다. “하하하, 시간이 없다면 당신은 이미 죽은 사람이군.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시간을 갖고 있거든. 난 내 차에 송장을 싣고 싶지 않아!” 차 안의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고, 커플은 뜻밖의 대답에 당황했다. 곧 타오는 농담이었다며 그들을 짐칸에 태우고 다시 출발했다. 난 그 대화가 농담 같지 않았다.

아카힐하우스의 식탁. 원주민이 직접 대나무로 만든 가구들이다. 사진 노동효 제공
아카힐하우스의 식탁. 원주민이 직접 대나무로 만든 가구들이다. 사진 노동효 제공

한국으로 돌아온 후로도 타오와 연락을 주고받곤 했다. 내가 골든트라이앵글 지역을 다룬 여행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게 되었을 땐 현지 큐레이터로 타오를 추천했다. 다시 타오를 만났고, 타오 덕분에 한정된 시간 내 타이의 축제 풍경을 담을 수 있었다. 아웅산 수치가 가택연금에서 풀린 후 타오는 미얀마에도 민주주의가 싹트기 시작했다며 고국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의 귀국을 응원했다.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지 두 달이 지났다. 2월19일 군경이 쏜 실탄에 맞아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 2월28일, 단 하루 만에 18명의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다. 3월3일 ‘다 잘될 거야’라는 글귀가 새겨진 옷을 입고 시민불복종운동에 나섰던 19살 소녀가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했다. 3월5일 사망자가 100명을 넘어섰다. 유엔은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3월17일 사망자가 200명을 넘어섰다. 유엔은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3월27일 사망자가 400명을 넘어섰다. 유엔에선 아직 실질적인 조치가 나오지 않고 있다.

타오에게 보낸 메시지엔 여전히 답이 없다. 침묵이 묻는다. “두 유 해브 타임?”

노동효(<남미 히피 로드> 저자·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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