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가 중요하지 않은 때는 없었다. 로마제국 때도 웅변술은 가장 중요한 일상 기술 중의 하나였다. 하필 지금 말하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데에는 기술적인 배경을 무시할 수 없다.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의사소통 기술인 말하기가 하이테크와 결합해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귀를 점령하고 있다. 그 사실을 방증하는 단적인 사례가 음성 기반 애플리케이션 ‘클럽하우스’(Clubhouse·줄여 ‘클하’로도 불림)의 성공이다.
지난해 3월 출시된 지 1년 만에 폭발적인 다운로드로 화제의 중심에 선 클럽하우스는 쌍방향 음성 기반 에스엔에스다.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기능을 삭제하고 음성 송출 기능에 집중한 클럽하우스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시이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등 세계적인 인물이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창구로 이용해 더욱 주목받았다.
지난해 5월만 해도 클럽하우스의 하루 이용자 수는 대략 270명에 불과했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 2월 클럽하우스의 주간 이용자 수는 대략 200만명, 가입 회원은 6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과 독일을 비롯한 4개국에서 앱스토어 소셜네트워킹 부문 다운로드 1위를 기록했다.
클럽하우스가 다른 에스엔에스에 견줘 도드라지는 차이는 참여자 모두가 실시간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이다. 모두가 이 온라인 플랫폼에선 연설과 토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시간 연설과 토론이 가능해지기까지 여러 방향의 기술이 진화를 거듭했다. 그 진화의 배경엔 사람들 생각의 변화가 한몫했다.
2000년대 초반 블로그가 생기면서 모든 인터넷 사용자는 사전적인 의미의 출판이 가능해졌다. 트위터는 모든 사람이 ‘속보’를 뿌릴 수 있도록 했다. 거기에 더해, 유튜브는 모든 인터넷 사용자가 스스로 시청각 콘텐츠를 제작하고 송출할 수 있게 만들었다.
블로그에서 인스타그램, 유튜브, 클럽하우스까지, 사람들은 지난 20여년간 중요한 사실에 익숙해졌다. 모든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사용자가 콘텐츠고 자신이 크리에이터란 사실 말이다. 모두가 메시지를 쏘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21세기 커뮤니케이션 환경 변화의 핵심이다. 즉 마음에 안 드는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더는 없어졌고, 여차하면 내 이야기를 아주 편하게 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음성 언어는 글쓰기보다 쉽게 전달되고, 영상보다는 만들기 쉽다. 클럽하우스에 사람이 몰리는 건 어찌 보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중은 유명 강연자를 찾아다니면 귀를 쫑긋할 필요가 없어졌다.
클럽하우스 인기엔 눈에 잘 띄지 않는 기술적 진보, 즉 에어팟 개발도 있다. 한 전자 회사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에어팟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종일 블루투스 이어폰만 끼고 중얼거릴 수 있는 세상이 왔다. 클럽하우스 입장에서 보면, 어디서나 클럽하우스 방을 열거나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 요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선 없는 이어폰을 낀 사람들을 쉽게 발견한다. 스마트폰과 무선으로 연결된 이어폰만 있다면 누구나 가상의 연설 무대 위로 올라가는 세상이 왔다.
무선 이어폰은 사람이 외부 메시지를 들을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편리한 방식이다. 인터넷 라디오와 유튜브에 이어 클럽하우스까지 인기인 지금은 ‘스피커’의 문턱도 낮아졌다. 유명인만 마이크를 쥐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그에 맞춰 말하기가 새삼 중요해진 요즘이다. ‘클하’에서 돋보이려면 말 잘하기는 기본이다. 말을 잘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말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한 이가 많다. ESC가 누구나 말 잘하는 이가 되는 법을 취재했다. 말실수를 했다면 어떻게 사과해야 하는지도 함께 알아봤다.
박찬용(전 <에스콰이어> 에디터) iaminseoul@gmail.com
[ESC] ‘클하’ 점령할 말하기 기술 알려드립니다
전·현직 아나운서 등에게 ‘말 기술’ 물어보니
발음이나 발성보다 ‘정리된 생각’이 더 중요
최근 말하기 강좌가 늘어나고 있다는데…
아나운서들은 정확한 말을 전달하도록 훈련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하기의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할까? 이들에게 물어보면 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기술을 알 수 있을까? 그래서 나도 아나운서만큼은 아니라도 ‘말 잘하는 이’로 꼽힐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말을 잘하는 기술이라면 전달력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말의 빠르기나 발음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유튜브를 봐도 말 잘하는 이들은 전달을 잘한다. 들을 때 답답하지 않다. 음색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의 빠르기나 발음, 말을 전할 때의 표정은 연습으로 고칠 수 있다.” 실명을 밝히길 꺼린 ‘10년차 아나운서’의 말이다. 그는 한 방송국에서 시사프로그램 등을 오랫동안 진행한 이다. 그가 말하기 방법으로 표정을 꼽은 게 의외였다. “같은 이야기를 해도 표정에 따라 전달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 표정까지 신경 써야 한다니 프로급 말 잘하기는 간단치 않아 보인다.
<문화방송>(MBC) 아나운서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지금은 유튜브 채널 ‘김소영의 띵그리TV’도 운영하는 10년차 방송인 김소영(34)씨의 조언은 결이 다르다. “잘 말하는 방법엔 좋은 발음이나 발성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목적하는 바를 대상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생각의 정리’가 중요하다.”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소리다. 결국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10년차 아나운서’는 “최대한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게 말하는 게 중요하다”며 “들을 때는 유려해도 ‘말하고자 하는 게 뭐야’라는 생각이 드는 말이 있다”고 한다. “한국어는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작은 표현이라도 뉘앙스는 달라질 수 있다.”
잘 말하기엔 기술도 있고, 재료가 되는 생각도 있다. 비유하면 말하기는 ‘요리’고 생각은 ‘식재료’다. 요즘은 특별한 재료가 중요한 시대다. 누구나 어디서든 말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김소영씨는 흥미로운 견해를 들려주었다. “예전에는 유명인이 아닌 일반인에게 마이크를 주면 자기 의사를 전달하는 이가 적었지만, 지금은 누구에게나 말을 하라고 주문하면 자기의 생각을 말한다.” 이런 세태 변화 때문에 말하기의 기술도 변하고 있다.
예전엔 정확한 발음 등 말의 형식을 잘 수행하는 게 중요했다고 한다. 아나운서나 방송인 등 말하기가 직업인 이들이 매달린 기술이었다. 하지만 마이크 잡는 데 주저하지 않는 이들이 늘면서 그런 기술의 중요성도 사라지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한다. “누구나 자신의 플랫폼을 만들 수 있는 시대다. 이런 세상에서는 전달 방식도 중요하지만, 자기 얘기를 자주 말해본 사람이 ‘스피커’로 인기를 얻고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말은 할수록 는다.” 김씨는 역설적으로 말하는 게 직업인 이들의 말이 덜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유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라도 연습은 필수다. 여러 아나운서와 크리에이터는 이구동성으로 ‘자기 자신의 말 모니터링하기’를 추천했다. ‘10년차 아나운서’는 “자신이 한 말을 잘, 계속 들어야 한다. 말할 때 자신만의 버릇이나 추임새를 알 수 있다. 그걸 자각해야 고칠 수 있다.” 자각한 정보를 바탕으로 연습을 꾸준히 하는 게 신기술이다.
글 쓸 때는 문법에 충실해도, 말할 때는 자신도 모르게 입에 붙은 비문이나 틀린 표현을 하기 마련이다. <지큐> 등에서 에디터로 오래 일하다 미디어 스타트업 ‘더파크’를 운영하며 유튜브 콘텐츠도 제작하는 정우성(40) 대표의 조언은 새길 만하다. “내 경우, ‘약간’이나 ‘굉장히’ 같은 말이 입에 붙어 있다. 녹음해서 다시 듣지 않았다면 발견하기 어려웠을 거다. 이젠 그런 건 쓰지 않으려 노력한다.”
말 잘하는 조건에 뭔가를 더한다면 무엇이 있을까? 정 대표는 예의나 품위를 꼽는다. “말하기의 기술과 재료, 생각에 더해 또 하나 중요한 게 있다. 태도다.” 공적인 말하기와 글쓰기라면 어느 정도 함량의 품위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혼잣말이나 개인적인 대화를 한다면 상관이 없지만, 공적인 글쓰기를 해온 나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도 일종의 ‘공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의 책임감이 필요하다.” 말하기의 책임감은 어디에서 무슨 의도로 말하느냐에 따라 그 무게가 달라진다. 정 대표는 “책임감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본인의 품위도 결정된다”고 말한다. 누구나 공평하게 말할 수 있는 세상일수록 개인의 품위가 두드러진다. 품위는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이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 말하기 강좌도 많아졌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이하 ‘한터’)의 ‘말하기’ 강좌를 담당하는 최화진 팀장은 “올해 말하기 강좌를 개설한 건 더 많은 이가 말하기에 관심을 갖기 때문”이라며 “비대면 시대가 되자 역설적으로 말하기가 더 중요한 표현 수단이 된 듯하다”고 말한다.
‘한터’의 말하기 강좌는 3개 파트로 나뉜다. 하나는 ‘목소리와 말하기’다. ‘성우나 아나운서처럼 음성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쪽에 방점을 둔 교육’이다. 설득과 토론 파트도 있다. ‘말하기에서 논리적인 구조를 쌓고 표현력을 기르는’ 강좌다. ‘대화와 소통’ 분야가 특히 눈에 띈다. 최 팀장은 “말하기의 기술도 중요하지만, 의사소통 자체가 중요하다고 여겨 그런 부분에 중점을 둔 강좌”라고 말한다. 이 교육에선 시인의 주도로 ‘그림책과 함께하는 공감법’을 배울 수 있다고 한다. 온라인 말하기 강좌도 활발하다. 동영상 강의 플랫폼 ‘클래스 101’에서는 발성 전문 트레이너 폴쌤과 성악가 출신 뮤지컬 배우 이예슬이 ‘스피치 발성법’을, 뉴욕주 변호사 문성후씨가 ‘직장인의 말하기’를, <에스비에스>(SBS) 기상캐스터 출신 최윤정씨가 ‘스피치 처방전’을 진행하고 있다.
아나운서·유튜브 크리에이터가 전하는 말 잘하는 법
생각을 정리합시다!
말을 잘하는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 확실하다. 생각이 잘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말의 깊이가 얕아 보인다. 아무리 많이 알아도 정리되지 않은 얘기를 늘어놓으면 말솜씨가 서툰 이로 보인다.
너무 형식에 치중하지 말자!
요즘 ‘클럽하우스’(최근 인기 있는 쌍방향 음성 기반 에스엔에스)만 봐도 말의 형식을 강좃하는 분위기면 방을 나가는 이가 많다. 자유로운 말하기 습관을 길러 보자. 강연을 가족이나 친구들 앞에서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간결하게 말하기 연습하자!
자신의 말을 모니터링하자. 듣는 이 입장에서 다시 들어보면 고치고 싶은 언어 습관을 발견한다. 평소 고치려고 노력하면서 되도록 간결하게 말해보자. 하지만 생각을 간결하게 하지 않으면 간결하게 말하지 못한다. 평소에 간결하게 생각하는 습관이 기르자.
박찬용(전 <에스콰이어> 에디터) iaminseou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