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ESC] 두유만, 식초만…만병 다스리는 ‘원푸드’ 식이요법?

등록 2021-02-05 07:59수정 2021-02-05 09:14

인간의 메커니즘이란 무엇을 먹든
그 모든 것을 인체를 움직이는 에너지로 바꿔

내가 살고 있는 곳 근처에 열병합발전소가 들어선다고 한다. 폐기물을 소각해 인근 수만 세대가 사용할 전기를 생산할 것이라고 했다. 아마 먼지도 많이 나고 공기도 안 좋아질 테지. 보통 사람들은 이런 소식을 들으면 우울해 하다가 왜 하필 내가 사는 곳이냐며 화를 내는데, 그게 정상일 텐데,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인간에 대한 성찰에 빠져들었다.

왜냐하면 우리 애들 때문이다. 나는 자주 집에서 애들을 돌본다.(그다지 열심히 돌보고 있지는 않지만) 집에서 걔들과 함께 있으면 걔네들이 입에 욱여넣는 것들을 보게 된다. 싫어도 보게 되는 그 광경은 인체야말로 재료 따지지 않고 먹어치우고 에너지를 뽑아내는 쓰레기 재활용 처리장이 아닌가 하는 깨달음으로 나를 인도한다. 내 아이들은 실제로 연료를 가리지 않고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발전소 같다. 내 아이들의 몸뚱어리라는 이 신비스러운 메커니즘은 무엇을 연료로 삼든지 전혀 상관없이 모두 동작으로 변환시키며 소음을 내고 카오스로 치환한다. 캔디를 한입에 삼키든, 머리가 띵해지는 찬 음료를 꿀꺽꿀꺽 마시든, 젤리를 한 주먹 가득 쥐어서 입에 털어 넣든, 공장에서 만든 빵을 먹든, 내가 매일 먹이려고 노력하는 오가닉 채소구이를 먹든, 전자레인지에 돌린 치킨 요리든 유의미한 차이를 내지 못하는 것 같다. 아니지, 오히려 몸에 나쁘다고 하는 음식일수록 에너지 생산 효율이 높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그런 음식들은 에너지로 잘 바뀌는 당분 함량이 높다.

하지만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 그럴 리 없지 않은가? 확실히 우리는 우리가 먹는 음식이다. 만물 에너지 공장의 위력은 인생의 어느 때가 되면 거짓말처럼 멈춰버린다. 위대한 프랑스 미식가인 장 앙텔름 브리야사바랭(1755~1826)이 일갈한 바 있다.(그분이 쓰신 바에 따르면 내 몸은 치즈 반 초콜릿 반으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지구상에서 돌아가는 산업 전체는 우리가 우리를 좀 더 건강하게, 날씬하게, 행복하게 먹을 수 있다고 확신하게 만들기 위해서 굴러가는 것에 불과하다고.

광고를 보면 식품업체가 만들어내는 파우더건, 헬스 보조제건 사기만 하면 더욱 건강하고 아름다워지리라는 얘기 일색이다. 튼튼한 뼈와 안 부러지는 손톱, 건강한 모발을 위해서 사골 육수를 먹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있는데(아, 물론 사골로 우려낸 국은 훌륭한 전통 음식이기는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곧바로 다시마차야말로 장내 박테리아 환경을 개선해주는 아이템이라고 호들갑을 떨고, 티브이 채널을 돌리면 카레야말로 우리가 100살까지 살 수 있게 하는 진정한 아이템이라고 열변을 토하는 전문가들을 만날 수 있다.

다년간 나는 수많은 식이요법의 흥망성쇠를 지켜보았다. ‘식초를 먹어라’부터 ‘콜라겐을 뿌려 먹어라’까지. (홋카이도에 갔을 때 콜라겐 아이스크림을 먹어보기도 했다. 콜라겐 아이스크림은 불행의 맛이었다. 자매품으로 성게맛, 낫토맛 아이스크림도 있더라. 이건 먹어보지 않았다.) 건강을 위해 ‘건강 소금’을 음식에 뿌려서 먹으라더니(하지만 건강한 미네랄을 얻으려다 염분 과다 섭취, 소금 중독으로 죽을 수도 있겠더라) 이제는 두유를 먹으라고 한다. 두유는 두유라테 등 각종 커피전문점 메뉴에 당당히 올라간 것은 물론 어느 슈퍼마켓에서도 쉽게, 종류도 다양하게 한쪽 푸드 코너를 차지하게 되었다.(한국에서는 베지밀이라는 긴 전통의 두유 브랜드가 독주하는 체제였으나 얼마 전부터는 엄청나게 많은 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식초, 두유 먹어라’, ‘건강 소금 좋다’ 등
사기만 하면 건강해진다고 강조
다양한 건강식 광고, 따져 보면 다 헛소리
균형 있는 식단과 짝을 잘 이룬 식재료들이 중요

두유 열풍은 아마도 최근 몇 년 사이 뿌리내린 ‘단백질 많이 먹기’ 광풍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고단백질 식사를 하면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되며, 살 빼기보다 백배는 더 어렵다는 뺀 살 유지하기에 좋을뿐더러 혈당을 일정하게 유지하게 되므로 몸의 에너지 수위를 조절할 수 있게 한다고 했다. 또한 두유는 유방암의 위험을 줄여주며 혈압을 낮추고 심장을 건강하게 만들어준다고도 했다. 일정 부분 사실이겠지만 어디까지나 일정 부분일 것이다. 두유가 몸에 좋은 것도 균형 잡힌 식사 속에서 두유를 먹을 때 몸에 좋다는 것이지, 사실 많은 콩 관련 식품들은 염분이 과하게 높다. 간장, 된장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콩 관련 식품들에 포함된 나트륨양을 보면 다른 장점들을 전부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높다. 심지어 그 좋다는 고구마도 몸에 치명적인 해를 입힐 때가 있다. 내가 아는 사람은 고구마만 지속적으로 먹다가 에너지 불균형으로 면역률이 떨어져 온몸이 두드러기성 발진으로 뒤덮인 적이 있다. 고구마를 끊고 집밥으로 돌아선 며칠 뒤 그의 몸을 덮었던 두드러기는 씻은 듯 없어졌다.

그러므로 건강한 먹거리, 식이요법에 대해 이렇게 말해야겠다. 세상에 만병통치약은 없노라고. 제아무리 좋다고 하는 음식들도 섭취할 때 주의할 점이 주렁주렁 달려 있고 독소 조항도 가지고 있노라고.(못 믿겠으면 제품을 사서 자세히 한번 읽어보라.) 두유 만들 때 쓴 콩이 사실 유전자변형 콩은 아닌지, 화학비료와 살충제에 노출되지는 않았는지 등등.

하지만 대부분의 음식은 다른 음식과 같이 먹을 때, 균형 잡힌 식단을 통해 섭취했을 때, 진정으로 몸에 좋은 음식이 된다. 때로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이라 해도 다른 음식이랑 같이 먹으면 괜찮은 것도 있다. 요는 골고루 먹어야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골고루 먹는다는 건 생선, 고기, 나물, 채소, 두부, 김치, 아이스크림, 과일, 술, 곡류, 빵, 사탕, 국수 등 가리지 않고 마음 편히 먹는 것을 말한다. 어느 하나만 집중적으로 과다하게 먹지 않는다면 우리의 몸은 이 재료들을 흡수해서 당신을 황소처럼 튼튼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식이요법은 ‘건강하게 장수하기’라는 프로젝트의 일부다. 그것은 당신의 사회적 삶, 인간관계,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운동과 유전자가 우리에게 부과한 피할 수 없는 운명과 함께 고려해서 봐야 하는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거기에 행운도 한 숟가락 타서 먹어야 한다. 아무리 두유를 열심히 먹어도 횡단보도 건널 때 좌우를 잘 살피지 않으면 신호 무시하고 달려오는 버스에 받힐 수 있으니까 말이다.

마이클 부스(푸드 저널리스트), 일러스트 이민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연애하러 ‘러닝 크루’ 모임 하냐”는 이들은, 대부분 달리지 않아요 [ESC] 1.

“연애하러 ‘러닝 크루’ 모임 하냐”는 이들은, 대부분 달리지 않아요 [ESC]

[ESC] 소곤소곤 내 뒷말, 어떻게 하지? 2.

[ESC] 소곤소곤 내 뒷말, 어떻게 하지?

[ESC] “12~14시간 공복은 건강 유지의 기본” 3.

[ESC] “12~14시간 공복은 건강 유지의 기본”

화분 하나로 내 방에서 만나는 ‘작은 아프리카’ [ESC] 4.

화분 하나로 내 방에서 만나는 ‘작은 아프리카’ [ESC]

연탄불에 보글보글 끓던 빨간 국물 5.

연탄불에 보글보글 끓던 빨간 국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