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칼국수는 강원도 대표 분식이다. 대대로 메밀이 우세인 지역에서 밀가루로 살아남은 요리다. 뭐 별것 없다. 한국전쟁 이후 밀가루가 대량 공급되면서 저렴한 비용으로 배를 채울 수 있는 국수 메뉴가 탄생했다. 국물만 달랐다. 보통은 칼국수다.
제면기가 귀했고 수타 제면이 어려웠던 까닭에 그저 반죽을 홍두깨로 밀고 썰었다. 공장 소면보다 싸고 푸짐해 팔기도 쉬웠다. 국물은 지역마다 구하기 쉬운 재료를 썼지만 가장 흔한 국물 재료인 멸치·디포리도 귀했다. 강원도에선 생물을 넣으면 좋지만 비쌌다. 궁여지책으로 맹물에 장(醬)을 풀어서 먹었다. 고추장. 그게 장칼국수다.
새벽 조업을 마친 어부들도, 새벽시장에 나온 상인들도, 선창 잡일 하는 아낙네도 모두 얼큰하고 뜨끈하게 장칼국수 한 그릇에 한기를 녹이고 허기를 달랬다. 장을 풀어 바로바로 끓이는 칼국숫집들이 선창마다 생겨났다. 입맛에도 맞았다. 원래 강원도에서 육수엔 된장이니 고추장을 풀어서 먹었던 까닭이다.
강원도 동해안에서 가장 큰 도시 강릉에는 장칼국수를 파는 맛집이 많은데 이 중 ‘벌집’은 현지 주민들의 맛집이었다. 지금은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관광객까지 몰려 기나긴 줄을 길게 드리우는 곳이다. 정말 ‘벌집’처럼 작은 방들로 마당을 빙 두른 ‘미음(ㅁ)’자 한옥이다. 담장을 따라 줄 선 손님을 빼면 그냥 주택가의 오래된 집이지만 더우나 추우나 비가 오나 인산인해를 이룬 모습이 크게 다르다.
얼큰한 국물에 애호박과 김 가루, 고기 다짐 등이 들었다. 직접 반죽을 밀어 칼로 썬 면발은 굵직한 게 억센 강원도의 산세를 닮았다. 한두 가닥만 집어 먹어도 입안이 꽉 찬다. 국물은 얼큰하면서 제법 묵직하다. 그리 달지도 않은 것이 풍성하면서도 시원하다. 밥을 말자면 여느 국밥과 견줘 손색없을 정도다. 심을 박은 듯 고들고들한 국수도 씹는 맛이 좋다. 고추장이라면 꽤 낯설게 들리겠지만 사실 여느 고추장이 아니다. 곱게 흩뿌린 김 가루엔 외면할 수 없는 정성까지 깃들었다.
강원도 특유의 투박한 장맛이 이상하게도 세련되게 국물에 녹아난다. 물리지 않을 맛이다. 그래서 지척에 사는 현지인도, 인터넷 소문 들은 젊은 관광객도 찾아온다. 몇 번을 가도 초심을 잃지 않은 맛도, 넉넉한 인심도 여전하다.
이우석(놀고먹기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