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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오래된 우리, 뜨겁지 않아 헤어진 걸까요?

등록 2021-01-08 07:59수정 2021-01-08 09:33

Q1 7년 만난 남친과 심드렁해진 관계
갑작스러운 헤어짐에 허무하기만 해
A2 언제나 뜨거운 관계는 환상에 불과
신뢰와 존경으로 이어져야 유지 가능

Q2 사람은 참 좋은데 너무 일 못하는 그
문제점 넌지시 알려줘도 그는 몰라
A2 타인을 쉽게 판단하고 재단한 건 아닌지
나만의 시야에 갇히는 것 경계해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Q1 안녕하세요. 저는 30대 중반, 직장인 여성입니다. 오래 사귄 2살 연상의 남자친구가 있었어요. 대학 졸업할 때쯤 만나서 같이 취업 준비하고, 비슷한 시기에 사회생활하며 서로 응원하며 잘 지냈답니다. 아무래도 직장 생활하며 만나다 보니 결혼도 생각하게 됐어요. 남친도 자주 “우리 나중에 같이 살면~” “우리 나중에 결혼하면~” 이런 식으로 얘기를 많이 하기도 했고, 서로 미래를 그려보곤 했죠.

그런데 결혼 얘기는 그렇게 자주 했지만, 딱히 일찍 결혼할 생각은 없어서,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운 건 없고 그저 연애를 이어갔어요. 그리고 만난 지 7년째인 올해, 우리는 헤어졌어요. 올 초부터 관계가 약간 불안하긴 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헤어질 줄은 몰랐어요. 특별한 이유도 없어요. 그냥 관계가 심드렁해졌다고 할까요. 저도, 남친도요. 묶여 있던 실이 스르르 풀어지듯 그렇게 헤어졌어요. 한때는 당연히 옆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이렇게 오래 사귄 사람은 처음이라 이런 이별도 있구나 싶더군요.

뜨거움이 없어서 헤어진 걸까요. 아니면 그래서 오래 사귄 걸까요. 우린 같이 취미 생활을 하거나, 어디에 열광해 함께 뭘 한 적은 없어요. 사이좋은 친구나 오누이 같았거든요. 근데 지금 와서 ‘왜 헤어졌을까’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냥 허무하기만 하네요. 연애를 다시 시작할 기운도 안 나고, 지금 누굴 만나도 몇 년 후면 30대 후반에 접어들 텐데 그때 결혼을 결심하고 뭔가를 하긴 지금 생각으론 너무 버거워요. 그렇다고 ‘남자 따위 필요 없어, 난 화려한 싱글라이프를 즐길 거야’라고 할 깜냥은 안 되네요. 쓰다 보니 저 자신이 답답해요. 그와 헤어지며 저도 모르게 자존감이 떨어졌나 봐요.

헤어진 지 이제 두달쯤 됐어요. 혼자라도 괜찮다 생각했지만 오히려 시간이 지나니 불안하네요. 다시 만나자고 해볼까, 누구랑 새로 시작하느니 별문제 없었던 그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알아요. 이 얘길 제 친구가 했다면 “야, 정신 차려!” 했을 거예요. 저 어떡하죠. 7년 사귄 애인과 헤어진 여인

A1 아주 유명한 뇌과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연인이 만나고 서로의 매력에 푹 빠져들어 열렬히 갈망하고 뜨거운 감정의 온도가 유지되는 시간은, 고작 18개월에서 36개월에 불과하다는 연구입니다. 처음에 만나 만들어진 그 강렬한 열정은 길어야 3년 정도 유지되며, 그 후로는 예전처럼 뜨거운 관계로는 돌아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다는 말이 있는 것이겠죠. 그러나 3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나도 아름다운 연대의 관계를 맺는 커플에게는 비밀이 있다는 것 역시 뇌과학자들이 밝혀낸 ‘진실’ 중 하나일 겁니다. 연애 초기의 열정은 줄어들어 일종의 빈 공간이 생기겠지만, 두 사람 사이의 진정한 신뢰, 유대감, 파트너십, 존경 같은 것들이 그 자리를 채웠을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초기의 뜨거움만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은 상대에 대한 열정이 식을 때마다 사랑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상대를 찾아 나서겠지만, 뜨거움이 사라진 자리에 신뢰와 존경이 들어서는 순간이야말로 사랑의 정수라고 표현합니다.

즉, 뜨거움이 없어서 헤어진 것이 아닙니다. 뜨거움이 사라진 자리에 앞서 말한 중요한 것을 채우지 못해서 헤어진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뜨거움이 유지되고 서로를 갈망하는 상태는 그저 환상에 불과하고, 이것을 정확히 인지하고 관계의 지속을 위해 정확하고 지속적이며 자발적인 노력을 하는 커플만이 관계에서 충만한 행복을 만들 수 있습니다. 7년을 만났지만, 두 사람이 그동안 쌓은 정신적인 유대감과 서로에 대한 확신이 앞으로의 70년을 함께할 정도가 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오래 사귄 연인 대부분이 이런 이유로 헤어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다른 어떤 괜찮은 사람을 찾아낸다 해도, 그래서 결혼을 선택한다 해도, 결국은 수년이 지나고 나면 심드렁해져 헤어지는 것은 도돌이표처럼 반복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사랑이 허무하고 슬픈 여정인 이유이며, 또한 바로 이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누군가에게 빠져드는 일이 용기 있는 행동인 까닭입니다.

고통 속에서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7년을 함께했지만 허무하게 끝나버린 연애를 통해 당신은 어떤 교훈을 얻었습니까? 지금 이 순간 어떤 화두가 내 안에 있습니까? 긴 사랑과 허무한 이별을 통해 당신이 또 고민하는 것이 고작 ‘연애해야 하는데, 누굴 만나볼까, 결혼은 어쩌지’라면 그것은 너무도 슬픈 일입니다. 30대 중반,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어떠한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인생의 궤도는 내가 정해야죠. 공전할 태양을 잃어버린 지구처럼 절박하거나 불안한 채로는, 그저 나처럼 불안한 사람을 고르게 될 뿐입니다.

최선을 다해 자신을 추스르세요.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충분히 생각하고 ‘내 인생의 궤도’에 대해서 고민하세요. 당신에게는 왜 결혼이 필요한가요? 어떤 삶을 살기 원하기에 당신에게 결혼이 중요한가요? 철학이 부재하면 배의 방향키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다가오는 사람이 내 인생을 방향을 결정하게 됩니다. 그 어느 때보다 외롭지만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운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당신이 온전히 당신의 삶에 대해 철학을 세우고 숙고할 좋은 시점인 것 같은데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작가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Q2 저는 직장인입니다. 주로 다른 회사와 협업하는 일을 합니다. 경력도 꽤 되는 편이고요. 그러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여러 가지 일을 진행했지요. 그런데 최근 고민이 하나 생겼습니다. 지금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다른 회사 담당자와 문제가 생겼어요. 그 사람은 더없이 좋은 사람입니다. 처음 만나서 일 관련 얘기할 때 잘 통하고, 그래서 결과도 좋을 거 같았지요.

세계관, 취향, 지향하는 점 등이 저와 비슷했어요. 그러니 더 호감이 생겼지요. 좋은 성과를 내면 그 사람이나 저나 조직에서 좋은 평가를 받잖아요. 그래서 기대도 컸어요. 그런데 막상 일을 진행해보니 너무 형편없는 겁니다. 주문한 보고서를 받아보니 엉망진창이고, 그걸 또 피드백 주면 예민하게 굴어요. 관계가 틀어지면 안 되니 되도록 웃으면서 문제 제기합니다. 벌써 이런 일이 여러 차례 반복되고 있어요.

그런데 미치고 팔딱 뛸 일은 만나서 대화를 나누면 ‘정말 좋은 사람이고 바른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도와줘야지 하는 마음이 들어요. 실제 그는 좋은 사람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그런데 일은 왜 그따위로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 때문에 폭발한 적도 많은데, 그걸 표현은 안 했어요. 에둘러 전달하긴 했지만, 자신의 문제점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어쩌면 좋지요? 일을 계속 진행해야 하나요? 관계를 끊어야 하나요? 그를 대신할 사람 찾으려면 또 고생해야 돼요. 어쩌면 좋나요? 일 못 하는 좋은 협력사 동료 때문에 힘든 직장인

A2 현실적인 방법은 둘 중 하나입니다. 첫째, 사람 하나 제대로 가르친다 생각하고 아주 세세한 가이드라인을 친절하게 적어서 알려주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짜증은 나겠지만 적어도 그 사람과의 관계는 지속되겠죠. 둘째,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는 것입니다. 일할 때의 짜증은 덜하겠으나, 그래도 좋은 사람을 끊어냈다는 자책감을 경험하게 되겠죠. 사실 둘 중의 어느 방법을 사용하든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겠지요. 어떻게든 일은 진행될 겁니다.

그러나 사실 여기에서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업무의 특성상 계속 새로운 사람과 협업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상대를 빠르게 파악해야 했기 때문일까요? 상대방에 대해서 쉽게 판단하고, 기대하고, 재단하는 것이 이미 나의 습관적 패턴이 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세계관이 비슷하다, 지향점이 비슷하다, 보고서가 엉망진창이다, 좋은 사람이다, 바른 사람이다…. 이 모두가 나의 ‘평가’입니다. 기대하고, 짜증 내고, 스트레스받고…. 이 모든 것이 그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나요? 아니면 그 사람에 대한 내 ‘생각’으로부터 시작되었나요? 그 사람은 처음부터 그대로인데, 당신은 머릿속에서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사람’ ‘예민한 사람’ ‘그래도 바른 사람’이라고 쉴 새 없이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바꾸고 있네요. 함께 일하는 모두가 업무능력이 같을 수 없고, 업무 처리 순서나 방식에 대해서도 모두 다르지요. 사람에 대해서 너무 쉽게 재단하고 평가를 내리기 시작할 때, 모든 것은 내 입장에서 해석되고 그렇게 우리는 나만의 생각과 시야에 갇혀 버리게 됩니다.

단지 이 담당자와의 문제뿐 아니라, 당신의 직급이 올라가고 더 다양한 업무를 경험할 때마다 이 문제는 당신에게 더 까다로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일은 할 만한데, 사람 때문에 힘들다’는 흔한 말이 결국 다 내 맘 같지 않아서 짜증 난다는 이야기와 같은 이야기죠. 내 맘 같지 않은 타인들과 성숙하게 의견을 조율하고, 공동의 목표를 이뤄나가는 과정이 분명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타인에 대한 판단과 평가를 멈추는 연습을 통해, 업무적인 능력은 올라가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줄어든다면 당신의 선택은 어느 쪽입니까? 작가

곽정은 작가가 상담을 이성 관계, 사랑, 연애뿐만 아니라 ‘관계’ 전반으로 확장합니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여러분이 맺는 수많은 관계에서 고민이 생겼다면 이제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의 문을 두드려 주세요. 물론 이성 관계, 연애 고민 상담도 진행합니다. 사연은 200자 원고지 5매 가량(A4 용지 1/2)으로 갈무리해 보내주세요! 보낼 곳 : es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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