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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한중 김치 논란, 범인은?

등록 2021-01-08 07:59수정 2021-01-08 09:42

중국이 ISO 등록했다는 우리 김치
진실은 발효 채소인 파오차이

내가 한국, 중국, 일본 삼국의 공통된 역사, 문화, 현재 진행 중인 긴장 상태 등에 대해 책을 쓰려고 2~3년간 조사를 하다가 확실히 알았다고 느낀 것이 있다. 한국인은 절대로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 그래서 지난해 중국과 한국 사이에 잠시 벌어졌던 김치 논쟁을 듣고 밤잠이 안 올 정도로 너무나 걱정되었다. 한동안 한국인은 중국인들이 자기네 문화유산인 김치를 도둑질하려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중국인들이 김치는 중국 발명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누군가의 말에 휩쓸렸던 것 같다.

사실은 한국인 여러분도 이제 사태를 파악했으리라 여겨지는데, 중국이 국제표준화기구(ISO)에 김치를 등록했으며 그러므로 김치는 중국의 창조물이라고 하는 주장은 거짓이다. 국제표준화기구에 인증받은 중국의 발효 채소는 파오차이일 뿐인데 어찌 된 일인지 중국의 미디어들이 두 나라 사이에 분란을 일으키려고 고의로 오보를 낸 것이다.

이 건은 음식과 관련된 문화 도용이 극단적인 경우로 치달을 때 벌어지는 위험을 증명하는 사례다. 그리고 실제로 지난 2~3년간 음식 세계에서 김치 문제는 가장 주요한 이슈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이 경우 도용 주장 공방은 중국과 한국이라는 두 국가 사이에서 벌어졌다. 하지만 대개 음식 세계에서 음식 문화 도용은 셰프들 개개인 간에, 혹은 음식 관련 직업을 가진 사람들(음식 칼럼니스트 등등) 사이에서, 혹은 이질적인 인종·민족 배경을 지닌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데, 다른 식문화를 가져와 만들거나 쓸 때 일어난다.

이런 음식 문화 도용 논란은 많아
역사적으로 지배 관계였던 나라 간 심해
요리사나 푸드 칼럼니스트들
다른 음식 문화 존중할 필요 있어

이 모든 것 가운데 가장 문제 되는 경우는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들이 촉을 세우고 있을 때 벌어진다. 그런 때가 언제냐 하면, 한 국가가 다른 나라를 역사적으로 억압하거나 착취한 적이 있는 나라 사이에서 억압했던 나라 국민이 억압받던 나라의 음식을 도용한 경우다. 예컨대 미국인 요리사가 멕시칸 음식을 만들었다거나, 프랑스 셰프가 모로코 요리를 응용해서 어떤 요리를 개발해 선보였을 때처럼 말이다. 일본이 김치를 발명했다고 주장한다고 가정해봐라. 한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너무나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려진다. 어쩌면 군사적인 반응으로까지 치닫지 않을까.

때때로 나라 대 나라 간 음식 문화 도용 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영국이 인도 요리에 대해서 이런 짓을 저질렀다. 오늘날 많은 사람은 치킨 티카마살라를 전형적인 영국 요리로 알고 있는 듯하다. 무엇으로 보나 이 요리는 영국이 인도를 지배했던 시절부터 유래된 것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아마도 100년 전에 시작되어 서서히 진행된 데다가 그 후로도 이 대륙 사람들이 먹거리 이동에 많이 관여했기 때문인 것 같다. 영국에 있는 인도 식당 대부분은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펀자브(인도 서북부에서 파키스탄 북부에 걸친 인더스강 상류 지방) 출신 이민자와 그 후손들이 운영한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경우는, 내 생각에는 2019년께 유대인·미국인 커플이 문을 연 차이니즈 레스토랑에서 일이다. 중국 음식점을 개점하면서 그 커플은 본인들이 “깨끗한 중국 요리를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한 말을 그대로 옮겨보자면 “우리만큼 재료의 질에 신경 쓰는 미국 내 중국 식당은 거의 없다”고 했다. 그러니 이 커플은 중국 음식을 문화적으로 도용한 것으로도 모자라 중국 요리를 만든 중국인들을 모욕하기까지 했다.

이런 일은 미국에서 꽤 많이, 자주 벌어진다. 비단 중국 음식만 당한 게 아니라 베트남 요리, 멕시칸 요리 등 다른 나라 요리들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미국 셰프들은 고유의 요리보다 훨씬 못한 결과물을 내놓는 범죄까지 저지르곤 한다.

때때로 그저 다른 나라 음식 문화의 레시피를 재창조하려고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끔찍한 범죄가 된다. 최근 나는 한 덴마크 푸드 칼럼니스트가 쓴 오코노미야키(고기, 채소,해물 등을 섞은 밀가루 반죽을 철판에 구운 후 소스를 뿌리는 일본 요리) 레시피를 보았다. 본인은 오코노미야키라고 주장하는 그 음식은 그저 끔찍한 팬케이크 만드는 법이었을 뿐이다. 내가 일본인이었더라면 분명 버럭 화를 내고도 남았을 것이다. 아니, 일본인이 아닌데도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러니 전 세계 슈퍼마켓에 스시라는 표 딱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생선 범벅에 대해서는, 어휴, 말을 말아야지. 내 위장만 망가져서 삼시 세끼 음식도 제대로 소화 못 시킬라.

나는 타인의 성미를 건드릴 만한 것만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 음식을 자기 일에 이용할 때는, 특히 푸드 칼럼니스트라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이라면 올바른 방식과 그릇된 길,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가 먹을 음식을 자유롭게 요리하고 그 문화적인 맥락을 뒤섞을 권리가 있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러니 치킨 티카마살라를 만들든, 피자 위에 터키 케밥 고기를 고명으로 올려 먹든 마음대로 하라. (물론 나는 둘 다 해본 적이 없지만 내가 사랑하는 <한겨레> 독자 여러분이라면 내가 뭘 말하고 싶어 하는지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만들어 팔 요량이라면, 혹은 직업적으로 레시피에 대해 글을 쓸 생각이라면, 당신은 다른 민족의 문화 및 영감을 충분히 존중해 줘야 한다. 그 나라 음식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쌓아야 한다. 예를 들어 백인이 타이 음식을 만들고자 한다면,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조심해서 타이 음식 문화를 딛고서야 하는 것이다. 정통 타이 요리를 한다고 주장할 거라면 말이다.

왜냐하면 음식에 있어 정통성이라는 것은 어쩌면 얻기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무슨 말인지 짐작할 것이다. 온라인 음식 평론가와 소셜미디어가 판치는 이 경이로운 세상에서 누군가는, 아니 이 세상에서 단 한 명이라도 당신이 말하는 정통성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즉시 문화 도용이라는 비난이 물밀 듯이 밀려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독자 여러분이 보기에 전 세계, 타국 요리사들이 한국 요리에 대해 저지른 짓 중 가장 심각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혹은 그 반대로 한국 셰프들이 외국 음식에 대해 저지르고 있는 짓이라든가 말이다. 정말 궁금하다. 댓글에서 보고 싶다.

글 마이클 부스(푸드 칼럼니스트), 일러스트 이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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