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령 파타고니아 지역을 남북으로 잇는 아우스트랄 로드. 사진 노동효 제공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근현대 소설 중 최고의 첫 문장으로 꼽히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의 처음이다. 일본은 섬나라니 아무리 긴 터널을 지나봐야 영토 안이지만, 막부가 다스리던 시절의 흔적이 남아 여전히 ‘국경’으로 번역되곤 한다. 실상 ‘군이나 현의 경계’임에도 ‘국경’으로 번역하는 건 ‘국경’이란 단어가 더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리라. 2020년을 견디는 동안 나는 ‘국경’이, 정확히 말하자면 ‘국경을 건너는 일’이 너무나 그리웠다. 코로나19로 인해 세계의 국경이 닫힌 한 해를 보내야 했으니까.
국경들을 통과할 때면 늘 설렜다. 낯선 곳에서 만나게 될 사람과 문화와 풍경에 대한 기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땅에서 어린아이처럼 될 수 있다는 건 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으니까. 특히 한국전쟁 후 섬나라와 다를 바 없어진 남한 출신 여행자에게 육로로 이어지는 국경은 늘 흥미로운 대상이었다.
잉카의 옛 수도로 페루에서 가장 많은 여행자를 만날 수 있는 쿠스코. 사진 노동효 제공
남아메리카를 여행하며 참 많은 나라의 국경을 넘었다. 처음 볼리비아와 페루 사이 국경을 지날 땐 얼마나 어리둥절했던가! 볼리비아에서 석달을 보낸 후 페루로 가던 길이었다. 티티카카 호수 인근 코파카바나 마을에서 택시를 타고 볼리비아 출입국사무소로 갔다. 나는 페루의 국경 마을에서 푸노(페루의 티티카카 호수 인접 도시)로 가는 버스를 탈 작정이었다. 통상 국경엔 양국 출입국사무소가 맞붙어 있다. 근데 곁에 있어야 할 페루 출입국사무소가 보이지 않았다. “페루 출입국사무소는 어디에 있죠?” 여권을 돌려받으며 사무원에게 묻자 무심한 표정으로 내가 지나온 길의 반대편을 가리켰다. 사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오르막을 올랐다. 언덕 위에 아치형 문이 있었다. ‘설마 이 문이?’ 맞은편 언덕 아래서 케추아족(페루와 볼리비아에 사는 아메리카 원주민) 할머니가 올라오고 계셨다.
“할머니, 그쪽이 페루인가요?”
“응, 페루야!”
“할머닌 어딜 가시나요?”
“아랫마을 친구 집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야.”
‘아랫마을’이라며 가리킨 방향은 페루고, ‘할머니 집’은 볼리비아였다. 태연한 대답에 아연했다. 다른 나라지만, 한 마을이나 다를 바 없었다. 마을 가운데 아치문이 덩그러니 서 있을 뿐. 언덕을 내려가자 페루 출입국사무소가 있었다. 국경을 함부로 넘는지 어쩌는지 지켜보는 이도 없었다. 페루에서 몇 달 보낸 후 볼리비아로 돌아가도 모를 판이었다.
페루에서 그런 친구를 만났다. 쿠스코에서 만난 브라질 출신 여행자 가비는 자신이 불법체류자 신분이라고 고백했다. 여권이 없었다. 그녀는 브라질을 여행하다가 히피 친구들을 만났고, 페루로 가는 그들과 헤어지기 싫어서 출입국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국경을 통과했다. 남아메리카 면적의 반을 차지하는 브라질, 한국이나 미국처럼 국경을 가로막는 철책이나 장벽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물론 불법이니 페루 경찰이 검문이라도 하면 추방될 신분이었다. 그러나 각국에서 온 여행자로 들끓는 쿠스코에서 경찰이 그녀를 콕 집어 검문할 리는 없지 않은가. 가비는 불법체류자로 두달간 페루를 여행한 후 왔던 길을 되짚어 브라질로 돌아갔다.
나 역시 뜻하지 않게 불법체류자가 되기도 했다. 브라질에 접한 파라과이 국경도시로 시우다드델에스테가 있다. 저렴한 가격에 공산품을 살 수 있는 자유무역도시다. 칠레 여행 중 스마트폰을 소매치기당한 터라 새 폰을 구입했다. 며칠을 더 묵은 후 브라질행 밤 버스에 올랐다. 해 뜰 무렵 쿠리치바에 닿았다. 하차하는데 뭔가 이상했다. ‘파라과이에서 버스를 타고 브라질로 왔는데 출입국 절차가 왜 없지?’ 브라질인이 시우다드델에스테를 오갈 땐 출입국 절차를 생략한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운전사는 나를 브라질인으로 여기고 출입국사무소에 들르지도 않은 채 내달렸던 거다. 그렇게 불법체류자가 되고 말았다. 다행히 쿠리치바에 친구가 있었다. 사정 얘길 했다. 그는 경찰서를 방문하면 간단히 처리될 거라고 말했다. 통역을 위해 친구를 대동하고 경찰서로 갔다. 담당자와 얘기를 나누던 친구가 얼굴을 찡그렸다.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무슨 일이니, 여기선 해결 안 되니?”
“해결은 되는데 돈을 좀 달래.”
“얼마? 왕복 버스비 정도면 내는 게 낫지.”
“300달러. 도둑들 같으니라고! 나가자.”
“내가 불법체류자란 걸 이미 알잖아?”
“상관없어.”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명산이자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봉우리로 꼽히는 피츠로이. 사진 노동효 제공
경찰은 돌아서는 나를 붙잡지도 않았다. 다만 뒤통수에 대고 한마디 했을 뿐이다. 친구가 통역해준 말은, “왔던 곳으로 돌아가든가!” 브라질에서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한달을 보낸 후에야 왔던 곳으로 향했다. 파라과이 무비자 체류 기간이 남아 있으니 돌아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파라과이 측에서 브라질 출국 도장이 없으니 입국시킬 수 없다고 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결자해지, 난제를 해결한 건 버스 운전사였다. 출발이 늦어지자 운전사가 출입국사무소 밖으로 나를 불러냈다. 그는 내 여권과 함께 내 지갑에서 20달러를 챙겨 조용히 사라지더니 5분 후 다시 나타났다. 파라과이 입국 도장이 찍힌 내 여권을 가지고.
가장 이상한 국경은 우루과이와 브라질 사이였다. 푼타델디아블로를 출발해 국경도시 추이로 들어서기 전 버스가 우루과이 출입국사무소에 먼저 들렀다. 출국 도장을 받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곧 추이 버스정류장에 닿았다. 갈아타려니 타임테이블에 브라질행 버스가 보이지 않았다. 현지인에게 물으니 브라질 버스는 브라질 가서 타라고 했다.
“어디로 가면 되나요?”
“어디긴, 길 건너면 브라질이야!”
상점가를 사이에 두고 4차선 도로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종종 가로수로 중앙분리대를 대신하듯이 4차선 도로 가운데 가로수와 벤치가 늘어서 있었다. 그게, 국경이었다. 도로 중앙을 경계로 이쪽은 우루과이, 저쪽은 브라질. 양국을 오가는 사람을 제지하는 건 건널목의 빨강 신호등뿐이었다. 곧 파란불이 들어왔고 나는 국경(?)을 넘었다.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긴 강 아마존은 브라질, 페루, 콜롬비아 등 여러나라를 뱃길로 이어준다. 사진 노동효 제공
육로가 아니라 아마존강 따라 국경을 넘나들 때는 어떨까? 브라질 아마존 지역의 최대 도시 마나우스에서 페리를 타고 브라질, 콜롬비아, 페루가 만나는 삼각지대에 닿았다. 나는 강을 따라 페루 아마존 지역의 최대 도시 이키토스로 갈 작정이었다. 선착장을 둘러봐도 출입국사무소가 없었다. 현지인에게 물었더니 주소를 적어줬다. 걸어갈 거리가 아니었다. 말하자면 부산항에 도착한 외국인에게 김해공항 앞 출입국사무소로 가서 절차를 밟으란 식이었다. 결국 택시로 출입국사무소를 왕복한 후 선착장에서 보트를 타고 강 건너 페루로 갔다. 입국 도장을 받았다. 그런데 선착장에 이키토스로 가는 페리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존 가운데 닻을 내리고 있으니 보트를 대절해서 타러 가라나!
그나마 출입국사무소를 오가는 교통수단이 있다면 감사할 일이다. 아르헨티나의 명산 피츠로이 트레킹을 다녀온 후 칠레로 넘어갈 때였다. 파타고니아를 관통하는 40번 도로를 지나 로스안티구오스에 새벽 6시 무렵 닿았다. 1시간 반을 기다려 국경으로 가는 첫차에 올라탔다. 아르헨티나 출입국사무소에 도착했지만 국제공항도 아닌 터라 문이 닫혀 있었다. 담당자가 출근할 때까지 파타고니아의 추위를 견디며 밖에서 벌벌 떨었다. 해 뜨고 한참 후에야 출국 도장을 받았다.
“칠레 출입국사무소는 어디죠?”
“여기서 7㎞는 더 가야 해.”
“오가는 차량은 없나요?”
“그쪽에서 손님이 차야 출발할 테니 언제 올진 몰라. 오늘 오려나?”
어제 보고 오늘 보는 사이지만 만날 때마다 몇년 만에 본 것처럼 포옹하던 쿠바사람들. 사진 노동효 제공
걸어서 국경을 넘어야 했다. 안데스산맥을 따라 솟구친 설산 샛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마치 ‘출입국사무소’란 성지를 찾아가는 ‘순례자’라도 된 기분이었다. 빙하가 녹은 호수 쪽에서 얼음기 머금은 바람이 불어와 얼굴을 마구 때렸다.
국경을 지나며 힘든 순간도 많았다. 지금은 그마저도 그립다. (대다수) 인류가 자국에서만 한 해를 보낸 건 해외여행이 일상화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코로나19가 지배하는 왕국(코로나란 단어가 ‘왕관’에서 오지 않았던가)을 빠져나오기까지 터널이 이토록 길 줄은 몰랐다. 저기, 터널의 출구가 보인다. 머잖아 이렇게 시작되는 문장을 쓸 수 있겠지.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인류는 힘껏 포옹을 나눴다.
노동효(<남미 히피 로드> 저자·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