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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화가 장욱진, 술병으로 부활하다

등록 2020-11-27 07:59수정 2020-11-27 08:41

최근에는 다양한 디자인을 병 라벨에 붙인 전통주가 늘고 있다. 사진 업체 제공
최근에는 다양한 디자인을 병 라벨에 붙인 전통주가 늘고 있다. 사진 업체 제공

술 포함 음료를 구매할 때 병을 감싸고 있는 라벨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라벨의 주된 기능은 상품의 품질·생산 연월일·원재료·성분 등 상품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소비자는 기능보다 라벨 디자인을 통해 직관적으로 제품을 판단한다. 라벨 디자인이 소비자의 상품 선택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에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전통주라는 단어에 덧씌워진 ‘고루하다’, ‘촌스럽다’는 이미지는 라벨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과거 전통주 업체는 라벨 디자인에 신경을 거의 쓰지 않았다. 막걸리는 플라스틱병에 많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여백 없이 복잡하게 만들어졌다. 조잡한 라벨이 많았다. 약주나 증류식 소주도 도자기 병을 사용해서 고급스러움을 강조하려다 보니 라벨은 겨우 술 이름을 표기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업체들도 라벨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식탁 위에서 아름다움을 뽐내는 다른 주종의 술병과 대적하기 위해서이다.

와인 업체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라벨을 만들었다. 예술가들의 작품을 사용하기도 했다. 고가 와인 소비자들을 염두에 둔 라벨 마케팅 전략을 활용한 유명 와인 업체가 많다. 프랑스 5대 와인 중 하나인 ‘샤토 무통 로트칠드’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아티스트와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와인에 예술적 가치를 더하며 나아가서는 브랜드 가치 상승을 통해 최고급 ‘와인 브랜딩’에 성공했다.

장욱진 화백의 그림이 라벨로 변신한 문배술. 사진 업체 제공
장욱진 화백의 그림이 라벨로 변신한 문배술. 사진 업체 제공

전통주 업계도 예술 작품을 라벨에 넣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예술가 가족이 운영하는 양조장인 ‘밝은세상영농조합법인’이 대표적이다. 서양화가로 활동 중인 이계송 화백은 자신이 만든 증류주에 자신의 그림(상춘·常春)을 라벨 디자인으로 활용했다. 오방색(동서남북의 흑백적청과 중심의 황 등 다섯가지 색)을 중심으로 한 그림이 소주의 가치를 높였다.

문배주 역시 라벨에 신경을 쓰는 업체다. 최근 문배주는 한국 추상화를 확립한 장욱진 작가의 가족과 공동 작업을 했다. 작가의 향토성과 문배주의 전통성이 만났다. 문배술은 이런 협업을 통해 아트 패키지 한정판 에디션을 선보였다. 장욱진 화백의 작품 <일일시호일>(나날이 좋은 날)이 그려진 라벨은 ‘매일 즐거움이 된다’는 따뜻한 의미를 담고 있다.

올해 우리술품평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모월 증류주 역시 술병 디자인에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실었다. 동시대를 사는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전통주와 함께 예술을 즐겼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술이 많이 팔리면 신진 작가를 지원하고, 현대미술을 후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밖에도 두술도가의 희양산막걸리는 공동체에서 동화를 그리는 전미화 작가의 작품을 사용했다. 전미화 작가의 작품 <으랏차차>는 2017년 3월호 희양산 마을 소식지에 실린 작품이다. 양조장은 코로나19로 몸도 마음도 지쳐있을 전 국민에게 다 같이 힘을 내보자는 제안을 담아 전 작가의 그림을 라벨로 제작했다고 한다. 올해 크리스마스를 겨냥해 산타 모자를 쓴 <으랏차차>도 별도로 제작해서 재미를 더할 생각이다.

최근에는 다양한 디자인을 병 라벨에 붙인 전통주가 늘고 있다. 사진 업체 제공
최근에는 다양한 디자인을 병 라벨에 붙인 전통주가 늘고 있다. 사진 업체 제공

이밖에도 전통주의 이미지를 과감히 탈피한 라벨 디자인도 등장했다. 라벨을 단순화해 자신들의 브랜드를 설명한 한강주조의 나루 생 막걸리, 도깨비를 캐릭터화해 도수에 따라 라벨 색을 달리한 도깨비양조장의 도깨비술, 톡톡 튀는 색감에 기하학적인 프린트가 곁들여진 디오케이브루어리의 두유노 같은 제품들 모두 ‘고루한 전통주’라는 편견을 무너트린 라벨 디자인이다.

라벨의 변신은 역사가 오래된 전통주 양조장보다 젊은 생산자들이 나서서 만든 막걸리나 신생 양조장에서 볼 수 있다. 예술을 접목한 라벨의 새로움은 전통주의 혁신이기도 하고, 젊은 층에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한국적인 색이나 전통을 투영한 디자인이 아직 라벨에서 볼 수는 없지만, 지금 라벨은 유쾌하다는 평을 들으며 에스엔에스(SNS)에 업로드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누가 봐도 예쁘다는 사실이다

이대형(경기도농업기술원 농업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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