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탐사 중인 ‘팀사랑해’의 요트. 사진 이천재 제공
‘배는 살 때 웃고, 팔 때 더 크게 웃는다’는 말이 있다. “배를 갖는 것보다 배를 가진 친구를 사귀는 편이 좋다”고 한다. ‘배’라는 물건을 ‘소유’하고 일상적으로 이를 즐기는 일은 그만큼 진입장벽이 높다는 얘기다. 보통 배를 구입하려면 자동차 한대 값은 가뿐히 넘기는 비용이 든다. 취득세와 재산세도 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시간’이다. 배는 항상 들여다봐야 하는 물건이다. 계속 정비하고 관리해야 한다. 태풍이 불거나 기상이 좋지 않을 때는 더 그렇다. 자동차 튜닝이나 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 등의 취미가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것으로 악명이 높지만, 배도 그 수준에 버금간다고 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미로 ‘마린 라이프’를 즐기는 사람들은 꾸준히 늘고 있다. 1인당 국민총소득 3만달러 시대, 코로나19로 달라진 세상에서 세일링이 취미로 주목받고 있다. 더구나 굳이 거금을 들여 배를 살 필요도 없다.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가 많다. 렌트해 배를 운전하면 좀 더 부담을 줄이면서 즐길 수 있다.
배를 모는 데에는 면허가 필요한데, 레저보트 면허는 크게 동력선을 운항하는 ‘동력수상레저기구’ 조종면허와 요트면허로 나뉜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레저보트 면허를 취득하는 사람은 매년 1만5000명에서 2만명에 이르는데, 이중 요트면허는 1000~2000명 수준이라고 한다. 지난해까지 국내에서 보트 면허를 취득한 면허 소지자는 모두 1만4515명이다.
‘팀사랑해’ 회원들이 김포아라마리나에서 요트 세일링을 즐기고 있다. 사진 이천재 제공
“책임의식, 자존감, 협동심 쑥쑥”…아이들과 요트 타는 교사들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 있는 정곡초등학교 교사인 이천재(49)씨는 대학 때부터 동아리 활동을 하며 요트 세일링에 입문한 마니아다. 1인승 딩기(dinghy) 요트도 보유하고 있지만, 주력선은 동호회 동료들과 연간 임대(차터)해서 타는 24피트(7.3m)짜리 크루즈 요트다. 교사인 이씨는 공통의 취미를 가진 초·중·고 교사들과 대학교 교수 등 12명이 모인 동호회 ‘팀사랑해(海)’의 주축 멤버다. 이들은 단지 모여서 요트를 즐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이 속한 공간에서 어린 학생들을 바다로 이끄는 것을 사명이라 여긴다. 김포 아라마리나를 중심으로, 한국해양소년단서울연맹·서울시교육청·한국해양재단과 함께 손잡고 학생들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정기적인 세일링 요트 교육을 진행한다. 이들이 요트 교육과 보급에 나서기 시작한 게 벌써 15년 전의 일로, 그동안 ‘팀사랑해’가 참여한 교육에서 배출한 교육생만 1만2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특출한 학생들은 대한요트협회로 보내져 선수로 성장하기도 한다.
지난 2016년에는 서울시교육청 주관으로, 40피트(12m)급 요트 3대를 이용해 경북 울진군에 있는 후포항에서 출발해 독도와 울릉도를 거쳐 돌아오는 ‘서울학생 독도 세일링 탐사’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일정한 사전 교육을 마친 중·고등학생 19명과 교사 6명이 참여해 3박4일 동안 직접 배를 몰고, 독도 땅을 밟았다. 탐사에 들어가는 비용은 서울시교육청이 부담했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바다를, 모험을 배우고 또 그만큼 성장한다.
‘팀사랑해’가 참여한 2016년 독도 탐사 프로그램에서 학생과 교사로 이뤄진 탐사팀이 크루즈 요트를 타고 항해하고 있다. 사진 이천재 제공
교사인 이씨는 요트 세일링의 ‘교육적 효과’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특히 주의력이 부족하거나 산만한 아이들에게 요트는 최고의 교육장입니다. 매 순간 몰입하고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정말 즐겁고 짜릿하기 때문에 요트를 경험하고 즐기는 아이들은 정말 많이 달라집니다. 책임의식과 자존감이 올라가고요, 협동심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되죠.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지는 모습을 직접 보는 것이 우리 교사들에게는 축복이고요.”
그는 자신을 통해 요트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늘 ‘시맨십’(Seamanship)을 강조한다고 한다. 단순히 배를 운항하는 기술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요트를 타고 나섰으면 반드시 안전하게 돌아와야 하고, 서로 협력해야 하며, 자연과 환경을 보전해야 한다. 그리고 나보다 기술과 체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반드시 배려해야 한다는 게 팀사랑해가 가르치는 시맨십입니다.”
직장인 전경수씨가 자신의 요트에서 바라본 바다를 사진에 담았다. 사진 전경수 제공
배 수리…다른 것과 견줄 수 없는 나만의 몰입
요트 선주가 늘 ‘꽃길’만 걷는 것은 아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전경수(51)씨는 대학생 때부터 요트에 관심이 많았다. 오랜 시간의 고민과 기다림 끝에, 그는 2014년 요트 면허를 취득하고 2017년에는 작은 중고 요트 한 척을 구입했다.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고쳐가며 타 볼 요량이었다. 바쁜 일상을 쪼개가며 주말마다, 때로는 휴가를 써가며 배를 고쳤다. “타고 나가지도 못할 배를 왜 사 와서 고생이냐”는 가족과 친지들의 핀잔에도 익숙해져야 했다. 배를 만지고 고치는 과정 자체를 즐기자는 생각도 있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첫 번째 배는 한 번도 출항을 못 한 채로 처분했어요. 그리고 최근 두 번째 배를 구입했죠. 처음의 실패를 경험 삼아 이번에는 상태가 썩 괜찮은 배를 골랐어요.”
두 번째 배는 37피트(11.2m)급 요트로, 경기도 김포시의 김포아라마리나에 정박해 놓은 상태다. 두 번째 배를 구입하고 운송해 오는 비용은 약 5000만원. 마리나 정박 비용은 매달 43만원이 든다고 한다. 첫 배의 실패에 따른 경제적 손실과, 그가 들인 시간과 노력 등 유·무형의 자산을 합치면 도무지 계산이 안 선다. 그래도 그는 즐겁다고 했다. “배를 인천의 왕산에서 김포마리나로 옮기는 과정에 7~8시간 정도 항해를 했는데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사람마다 용도가 다를 텐데, 낚시용으로 쓰는 분도 있어요. 제 경우에는 심리적인 측면이 큰 것 같아요. 힐링이랄까요. 배를 타고 나가면 완전한 자유 같은 걸 느껴요.” 그는 언젠가, 배를 다루는 기술을 갈고닦아 정박지에서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권으로 배를 몰고 여행하는 장거리 항해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문제는 물론 시간이죠. 해외로 운항하려면 순수하게 배를 타는 시간만 몇 주 정도는 걸릴 테니까요. 정년퇴임 이후에는 가능할 것 같네요. 하하하!” 물론 한꺼번에 수천만원의 비용을 지불하면서 그처럼 덜컥 배를 살 필요는 없다. 요트를 임대하는 방법도 있고, 동호회 회원 여러명이 공동으로 배 한척을 소유하는 등 상대적으로 비용을 아껴가며 즐길 수도 있다.
경기도 화성시 전곡항 마리나 내항에 각종 요트와 보트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물론 면허는 따야 하는데,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즐거움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요트 세일링이라는 취미가 자신과 잘 맞는지, 계속 즐길 수 있는 취미인지를 판단해 볼 수 있다. 서울 마포를 필두로 강원도 삼척, 전남 목포, 경남 거제, 부산, 제주 등지에 면허 교육장과 실기시험장이 자리 잡고 있다. 시험은 실기와 필기로 나뉘는데, 필기시험을 위해서는 일정 시간의 연수교육을 받아야 한다. 교육 시설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통상 교육과 시험에 60만~7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실기 연수 기간만 2~3일 정도가 필요하다. 추가로 일정 시간의 ‘면제교육’를 받으면 실기 시험을 보지 않고 면허를 취득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비용과 시간이 더 추가된다. 교육과 시험 관련 정보는 해양경찰청 수상레저종합정보 (imsm.kcg.go.kr/WRMS)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송호균 객원기자 gothroug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