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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손맛 죽입니다! 색 입힌 뜨개실 세계

등록 2020-10-21 19:24수정 2020-10-21 19:32

다 다른 염색실 파는 공방, 별천지
뜨개 인기에 실도 직접 염색해
떠보기 전에 결과 모르는 염색실 세계
손뜨개 공방 ‘얼렁뚱땅 작업소’의 정은선씨. 유선주 객원기자
손뜨개 공방 ‘얼렁뚱땅 작업소’의 정은선씨. 유선주 객원기자

탐스러운 꽈배기 모양에 형형색색 도넛에 뿌려진 하얀 설탕 장식을 닮은 실. 여태 둥글게 감긴 실만 보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세상에 탐나는 실이 많고 많은데, 또 다른 별천지를 만났다. 일일이 수작업을 거치는 손 염색실(Hand dyed yarn·핸드 다이드 얀)이다. 지난 10월7일. 서울 중랑구 신내동의 뜨개 공방 ‘얼렁뚱땅 작업소’를 찾아갔다.

가을 햇살이 깊게 파고드는 공방에는 직접 뜬 스웨터들이 사람 키만 한 높이로 차곡차곡 접혀있다. 실을 직접 염색해서 옷을 뜨니 궁극의 핸드메이드 아닌가! “주변 친구들이 말합니다. 이제 양만 키우면 된다고요.” ‘얼렁뚱땅 작업소’ 대표 정은선(33)씨는 2014년 첫 아이를 가졌을 무렵 뜨개를 시작했다. 전문가 강사 과정까지 마쳤을 정도로 옷 뜨기에 푹 빠진 그는 ‘뜨친’(뜨개 친구)들과 함께 옷을 완성해 가며 전우애를 다진단다. 누군가 낙오되지 않도록 독려하고, 각자 뜬 옷을 입고 만나서 완성을 축하하기도 한다.

정은선씨가 손수 염색한 꽈배기 모양 실. 유선주 객원기자
정은선씨가 손수 염색한 꽈배기 모양 실. 유선주 객원기자

국내에 손 염색실을 제작해 판매하는 곳은 많지 않다. 만드는 사람의 취향이나 용도에 따라 염색실의 분위기도 다르다. 매달 어떤 실이 올지 궁금해지는 미스터리 박스 실 구독 서비스를 운영하는 공방 ‘조이얀’. 어린이용 의류를 뜨고 싶어지는 포근한 파스텔 톤 염색실이 많은 ‘포포하비’의 실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순해진다. ‘얼렁뚱땅 작업소’는 쨍한 네온 컬러를 섞은 실이 제법 많다. 의류나 어깨에 두르는 숄을 뜨기 좋은 실을 주로 취급하는데, 정씨가 옷 만들기를 즐기기 때문이다.

손 염색실은 100g당 2만원을 넘어서 기성품 실보다 훨씬 가격이 비싸다. 염색하기 전의 원사 가격이 비싸기도 하고 제작에 드는 품과 시간이 만만찮다. “영국에서 가져 온 슈퍼워시 메리노 울 100% 원사를 염색 전에 식초나 구연산을 녹인 물에 30분 정도 담가 둡니다. 불순물이나 실에 처리된 약제를 제거하기 위해 물로 세척하고, 물을 끓여 산성염료를 녹이고 염색을 한 후에 실이 식을 때까지 기다려서 울 전용 세제로 세탁하고 건조하죠. 실을 염료 물에 담그는 침염, 가루를 뿌려 반점 등을 만드는 스페클 무늬 염색 기법에 따라 이 과정을 반복하기도 합니다.”

정은선씨가 손수 염색한 실로 뜨개질해 만든 작품. 유선주 객원기자
정은선씨가 손수 염색한 실로 뜨개질해 만든 작품. 유선주 객원기자

염색을 하는 단위를 ‘탕’이라고 한다. 같은 용기에 담겨 같이 가열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뜻이다. 손 염색실은 한탕 안에서도 타래마다 무늬와 색감이 다르다. 또 같은 염료를 쓰고 같은 기법으로 염색해도 탕마다 차이가 커서 결과물이 매번 달라진다. 한가지 색으로 염색한 단색사도 어느 부분은 진하고 어느 부분은 희끗희끗해서 편물을 뜨면 자연스럽게 무늬가 생긴다. “어느 정도 뜨개를 하신 분들이 기성품 실이 재미가 없어지니까 이런 변화의 느낌을 즐기려고 손 염색실을 찾습니다.”

탕 차이는 대량 생산한 제품에도 있다. 뜨개를 하다 실이 똑 떨어져서 같은 색상을 주문했는데, 색이 미세하게 달라서 새 실로 뜬 부분부터 면의 경계가 지는 경우가 있다. 이전 실과 새 실의 탕이 달랐기 때문이다. 실을 추가로 구매해야 한다면, 이전의 실에 감겨있던 띠지에서 ‘로트번호’(LOT·동일한 조건에서 제조된 제품을 식별하는 기호)를 확인하고 구입처에 문의한다. 같은 로트번호는 같은 탕을 거친 실이다.

정은선씨가 손수 염색한 실. 사진 ‘얼렁뚱땅 작업소’ 인스타그램 갈무리
정은선씨가 손수 염색한 실. 사진 ‘얼렁뚱땅 작업소’ 인스타그램 갈무리

지난해에 뜨다 만 작품의 실이 모자라거나 실이 품절 되는 등, 로트번호가 일치하는 실을 구하지 못할 때 뜨개 마니아들이 애용하는 대안을 정씨가 알려주었다. “일부를 풀어내어 떴던 실과 새 실을 단마다 번갈아 뜨면 두 실이 자연스럽게 섞여 경계가 도드라지지 않지요. 손 염색실 여러 타래가 들어가는 작품을 뜰 때도 이전 타래와 새 타래를 이을 때 실을 교차로 뜨는 방법을 이용합니다.”

손 염색실을 쓸 때는 꽈배기 모양 타래를 풀어 일일이 감아야 한다. 사용하는 사람도 번거로운 수고가 들어가는 실이다. 하지만 매력도 확실하다. 정은선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시선은 자꾸 벽에 걸린 실타래로 향했다. 책이 가득 꽂힌 곳에 가면 다양한 책등만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고, 제목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는 직접 읽어 봐야 안다. 손 염색실도 그렇다. 떠보기 전에는 이 실이 어떤 무늬로 드러날지 모른다. 미지의 세계. 짐작과는 다른 실들. 그게 손 염색실의 진가다.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정은선씨가 손수 염색한 실로 뜨개질해 만든 작품. 유선주 객원기자
정은선씨가 손수 염색한 실로 뜨개질해 만든 작품. 유선주 객원기자

[ESC] 식용색소로 실 염색하기

산성염료를 다룰 때는 반드시 공업용 방진 마스크와 보호 안경, 장갑을 착용해야 한다. 적당한 작업 공간이 없으면 배우기 어렵겠다 싶었는데 정은선씨가 식용색소로 염색하는 법을 귀띔을 해주었다. “쿨에이드(물에 타 마시는 과일 향 주스 분말 상표)로 집에서 염색하는 분들이 있다. 원하는 강도로 전문적으로 염색하려면 산성염료를 쓰지만, 식용색소도 가능하다.”

유튜브에서 쿨에이드 염색법을 찾았다. 그중 미국의 섬유예술가 레베카 브라운의 채널(ChemKnitsTutorials)이 가장 흥미진진했다. 생화학자이자 교사인 그는 산성염료로 염색한 실을 판매하는 한편, 식용색소 염색을 소개하며 염색의 세계로 빠져보자고 권한다. 브라운은 쿨에이드 가루 외에도 식용색소가 들어간 탄산음료나 알록달록한 코팅 사탕 ‘스키틀즈’를 실에 흩뿌린다. 염색에 쓰는 원사는 얼핏 삶은 소면처럼 보이는데, 냄비에 넣고 끓이니까 염색 과정이 마치 요리 같다. 양파껍질, 아보카도 껍질, 강황도 염료가 된다.

식용색소 염색 과정은 산성염료 염색과 비슷하다. 우선 울 함량이 70% 이상인 실을 타원으로 둥글게 감아둔다. 중간마다 면실이나 케이블 타이로 실이 흐트러지지 않게 묶어둬야 나중에 엉키지 않는다. 식초나 구연산을 푼 물에 실을 충분히 적혀두고, 다시 냄비에 물을 데워서 식초나 구연산과 식용색소를 풀고 실을 담근다. 젖은 실에 색소가루를 뿌리고 비닐을 씌워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방법도 있다. 실을 식혀서 울 세제로 세탁하고 말리면 끝. 쿨에이드 같은 새콤한 분말 주스 가루에는 구연산이 첨가되어 따로 산을 더하지 않아도 염색이 된다. 냄비에 실을 담가 휘휘 흔들면 색소가 실과 결합해, 냄비 안의 물은 점점 맑아진다. 위의 방법은 울, 알파카, 실크, 캐시미어 등 단백질 기반 섬유나 나일론 혼용실만 염색이 된다. 면사는 세탁 과정에서 도로 하얗게 돌아온다.

염색이 되지 않은 생사를 급히 구하기 어려워서 연한 색으로 염색된 울 100% 털실과 베이킹용 식용색소로 염색을 해보았다. 실에 그러데이션을 넣으려고 자주색 색소를 푼 물에 아랫부분부터 담그고, 파란 색소가루를 뿌렸으나 소심하게 뿌리는 바람에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가루를 다룰 때는 마스크를 쓰고, 니트릴 장갑을 꼭 착용해야 손에 물이 들지 않는다. 이렇게 염색한 실은 수축이나 뭉침이 생길 수 있는 기초적인 방법이니 재미 삼아 시도해보시길!

유선주 객원기자

분말주스 가루 쿨에이드로 집에서 실을 염색 할 수 있다. 사진 레베카 브라운의 유튜브 채널 화면 갈무리
분말주스 가루 쿨에이드로 집에서 실을 염색 할 수 있다. 사진 레베카 브라운의 유튜브 채널 화면 갈무리

분말주스 가루 쿨에이드로 집에서 실을 염색 할 수 있다. 사진 레베카 브라운의 유튜브 채널 화면 갈무리
분말주스 가루 쿨에이드로 집에서 실을 염색 할 수 있다. 사진 레베카 브라운의 유튜브 채널 화면 갈무리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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