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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상사가 미워하나? 내게 왜 그러지!

등록 2020-10-15 14:29수정 2020-10-15 14:49

임현주의 직장생활, 나만 힘들어?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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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인 A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자신이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팀을 이끌고 있었는데 어느 날 상사가 자신과는 별도의 상의 없이 팀원들의 역할을 바꾸더니, 급기야 팀장인 자신이 하기로 한 최종발표도 후배 B가 하면 어떻겠냐 제안했다는 것이다. 상사는 A에게 선택권을 준 것처럼 물었지만 이미 답을 내린 듯했다. A는 상급자의 결정이니 따르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하면서도 ‘혹시 제가 실수한 것이 있나요?’ ‘그 전에 제게 상의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여러 서운함이 한 번에 터지는 듯했지만, A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할 말을 확실히 전하는, 그런 능력자가 본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러나저러나 유쾌하지 않은 선택지라면 굳이 상사의 기분을 거스르지 말자 싶었다. 그때부터 A의 속앓이가 심해졌다. ‘상사가 나를 미워하는 걸까?’ ‘내 입지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불안했고 차라리 그때 속 시원하게 물어볼 걸 싶었다.

케이스만 다를 뿐 직장에서 일로 혹은 인간관계로 속앓이할 문제는 끊임없이 일어난다.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할 궂은일이 나에게만 몰리는 듯할 때, 누군가의 편의는 봐주고 나는 그런 배려를 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미묘한 배제의 공기가 감쌀 때 등 말이다. 속 시원하게 이유를 묻고 싶지만 말하는 자신이 옹졸해 보일 것도 같고,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해야 할지, 듣는 상대가 감정적으로 받아들여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건 아닐지 고민하게 된다.

가장 먼저 할 일은 ‘말을 해서 내가 얻을 것은 무엇이고, 잃을 것은 무엇인지’ 따지는 것이다. 잃을 게 많다면 말을 삼키는 편이 낫다. 말을 했을 때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거나 의견이 똑 부러진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인상을 줄 수도 있지만, 매끄럽지 않게 전달되었을 때는 무례하다는 인상을 주어 입지가 더 좁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생각을 전하기로 했다면 다음은 ‘누구’와 ‘어떻게’를 결정해야 한다. 당사자와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게 가장 바람직하지만, 이 상황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우선 그보다 아랫급 상사나 동료를 통해 상사의 의도를 파악해본다. ‘상사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혹시 아느냐’ 묻되 뒷담화로 느껴질 이야기들은 하지 말자. 말은 퍼지고 쉽게 와전되는 법이니까. 상사보다 더 상위 관리자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은 자칫 정치적인 사람처럼 보일 수 있으니 최후의 수단으로 아껴두자.

상사와 직접 대화하기로 했다면 감정은 최대한 배제하고 상사의 결정에서 동의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생각의 근거들을 정리하자. A의 경우로 돌아가 본다. 상사의 제안 중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본인이 계속해서 키를 쥐고 싶은 문제를 구분해서, 우선 수긍할 수 있는 제안은 흔쾌히 받아들인다. 이때 내가 느끼는 입장을 살짝 어필하되 조직원으로서 이해하고 양보한다는 입장을 표현하는 게 좋다. 한 가지를 내어준 상대에겐 마음의 빚 내지 고마움이 생길 확률이 높아 타협의 공간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한 진단을 받고 싶다’는 뉘앙스를 띄우고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직원으로서 나의 발전을 위해, 팀의 협업을 위해 상사가 그리 판단한 이유와 피드백을 듣고 싶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상사는 발전을 위해 피드백을 듣고 싶다는 후배에게는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고 싶어진다. 이때 상사가 인지하지 못한 나의 계획이나 능력을 어필할 수도 있다. 대화의 끝엔 결국 상대가 내릴 최종 결정을 신뢰한다고 밝힌다. 자신을 신뢰한다는 상대의 말은 상대의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더 들어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한다.

대화를 나눈 후에도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을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도움이 되는 피드백을 받고 결정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면 대화의 성과와 의미는 충분하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 때 가장 괴로운 법이니까. 그리고 기억한다. 상사의 판단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님을 말이다. 내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단지 상사의 시각이 나와 달랐거나 개인적인 호불호 때문에 결정된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니 내 뜻대로 문제가 풀리지 않았다고 해서 과도하게 좌절하지는 말자. 언제나 다음은 있는 법이니까, 잠시 움츠러들더라도 괜찮다. 피드백을 받아들이고, 발전하고, 다음을 도모하자.

임현주(MBC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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