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개봉 예정인 영화 <돌멩이>에 출연한 김대명. 사진 영화사테이크 제공
배우 김대명이 전화를 걸어서 말했다. 인터뷰를 하자고. 친구가 해주면 좋겠다고. 그래서 5년만에 다시 인터뷰했다. 내 친구 대명이를.
“마흔살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좋지만 그냥 우리 사는 이야기 말이야.” 대명이가 말했다. 아니, 배우 김대명이 말했다. 나는 공원을 산책 중이었다. 오전 내내 비가 내려서 공원은 풀 냄새로 가득했다. “우리 마흔이구나.” 내가 대답했다.
대명이는 사십살에 대한 상념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통화할 때는 그런가보다, 정도만 생각했는데, 며칠 뒤 인터뷰를 하면서, 뭐랄까, 대명이가 사십살이라는 나이를 다행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느꼈다. 이십대와 삼심대에 배우로 열심히 살았고, 다행스럽게도 이제 조금 더 알려진 배우가 되었다는 안도…. 이런 감정이 사십살을 특별하게 받아들이게 한 건 아닐까. 하지만 물어보진 않았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니까. 지금의 대명이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통화 열흘 전쯤 대명이가 전화를 걸어서 말했다. “인터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해주면 좋겠거든.” 부담스럽긴…했다. 섬세한 친구여서 인터뷰하고 정리하면서 내가 스트레스 받을까 봐. 하지만 친구로서는, 많은 분이 대명이의 어떤 모습을 더 알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수락했다. 5년 전, 드라마 <미생>이 끝났을 때도 대명이를 인터뷰했다.
김대명은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돋보이는 연기로 주목받았다. 사진 tvN 제공
뭘 물어야 할까? 부담돼서 질문이 안 떠올랐다. 내 에스엔에스(SNS) 계정에 이렇게 올렸다. ‘배우 김대명에게 궁금한 거 있으면 댓글 달아주세요.’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댓글이 많이 달려서 겁이 났다. 다이렉트 메시지도 왔다. 많이 왔다. 팬들이었다. 바로 게시물을 지웠다. 혹시 대명이에게 피해가 갈까 봐.
얘 팬이 이렇게 많았어? 뭐라고 해야 하나. 달라진 위상을 느꼈다고 해야 하나. 친구가 유명해진 걸 모르진 않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대명이에게 전화가 왔다. “무슨 일 있어?”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대명이가 웃으면서 말했다. “관심 가져주시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 얘는 이 말을 극존칭으로, 예의 바르게 했다. 마치 그분들이 옆에 있는 것처럼. 다른 배우들도 이렇게 하는 건가? 배우 친구가 한 명뿐이어서 그것까진 모르겠다. 며칠 뒤 대명이가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마스크를 쓰고, 도무지 누구인지 모르게 하고 나타났기에, 내가 물었다. “넌 은둔하는 게 좋아?” 얜 늘 혼자 있다. 돌아다니지도 않는다. 누군가 알아보고 다가오는 건…물론 감사하고 행복하지만, 가능하면 그런 순간을 많이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대명이의 그런 점을 늘 약간 아쉬워하고. “작품 하는 중에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니까, 안 할 때는 혼자 지내도 괜찮지 않을까?” 안 괜찮을 거야 없지. “힘을 잘 모았다가 작품 할 때 쏟아부을 수 있다면 그게 제일 좋지 않겠어?” 대명이는 단정형으로 말하는 법이 없다. 내 기준에서 볼 때, 항상 너무 조심스럽다. 난 그것도 답답한 거고. “조심하면 좋지, 뭐. 작품을 좋아해 준 분들, 나를 좋아해 준 분들, 내 주변에 있는 분들이나 팬분들 누구 하나 상처 안 받을 수 있다면 그게 제일 좋은 거잖아.” 웃고 만다. 다른 사람 말고 난 네가 자유로웠으면 좋겠어, 소리 지르고, 무단횡단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무단횡단을 왜 해?’라고 활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뜬금없는 표정을 지을 게 뻔해서.
인터뷰하기로 한 날이 되었다. 5년 전에 화보 찍을 때는 어색했는데 이제 좀 해봤다고, 아주 잘했다. 살도 많이 빼서, 음, 얘가 나보다 잘 생겼단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하마터면 처음으로 할 뻔했다.
인터뷰 내용 중 몇 가지를 이야기하자면, 서른살이 되었을 때, 대명이는 노래방에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불렀다고 한다. “인생을 좀 아는 나이가 됐다, 뭐 이런 생각을 했었어. 그런데 그때 나 아무것도 몰랐던 거더라고.” 대명이가 먼 산을 보듯 시선을 허공에 응시하고 말하기에, 내가 물었다. “이제 좀 알겠냐?” 대명이가 대답했다. “조금.” 그래서 내가 다시 물었다. “너 쉰살 되면, 오늘 떠올리면서, 아, 나 그때도 아무것도 몰랐던 거더라고, 하지 않을까?” 대명이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 어. 하하. 영원히 모르겠다, 우리.” 영원히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내 친구인 게 나쁘지 않다. 시상식에서 상을 받으면 소감을 뭐라고 말할 거야, 라고도 물었다. 대명이가 짧게 대답했다. “다행이다.” 천천히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며 이어 말했다. “연기를 꾸준히 할 수 있는 것도 다행이고, 너랑 나랑 이렇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것도 다행이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대명이가 꼭 수상자가 되면 좋겠다고. 그땐 나도 다행이다, 혼잣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인터뷰하면서 얘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조심스럽게’와 ‘상처 안 주게’였다. 나중에 녹취록을 보여주었을 때 대명이가 몇 군데 수정을 요청했다.
그중 하나는 대략 이런 거였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네가 연기하는 양석형 선생이 실재 너랑 성격이 엄청 비슷한 거 알아?” 대명이가 대략 이렇게 답했다. “조금이라도 그렇게 보인다면 감독님 덕분일 거야.” 나중에 대명이가 ‘감독님과 작가님’으로 수정해달라고 말했다. 친구인 나에게도 ‘조심스럽게’ ‘상처 안 받게’ 말했다. 같은 마음을 ‘작가님’에게도 갖고 있었을 거다.
인터뷰 중에 이런 이야기도 나눴다. “예전에는 결혼해서 애 낳고 사는 친구들 보면, 어떡하느냐, 아저씨 다 돼서…. 이랬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런 친구들이 대단한 거 같아. 그 친구들이야말로 슈퍼맨이지. 사람들이 나보고 ‘동안’이라고 하면 좋으면서도 미안해. 내 삶이 평범한 40대 삶보다 나아 보이는 거 같아서. 나은 게 없는 데….” 별 게 다 미안해.
인터뷰 후반부에 대명이가 말했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고 싶어.” 내가 물었다. “하고 싶은 게 뭔데?” 대명이가 대답했다. “지금 그걸 하고 있어.” 나는 이 말에 대해 깊이 묻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향한 고백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고백 같이 들렸기 때문에. 우리가 인터뷰를 나눈 날은 그저 고요한 초여름이었고, 며칠 지나고 길고 긴 장마가 시작된다는 걸 몰랐다. 나는 사람들이, 아니 대명이를 좋아하는 팬들이, 이 친구가 가진 작고 선한 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친구인 내 욕심인 것 같다. 세상에 배우가 대명이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연기를 대명이만 잘하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대명이보다 잘생긴 배우는 많다. 하지만 내 친구 대명이는 나에게 한 명이라서…. 안타깝고 무서운 것이다. 친구가 어느 순간 지워지면 어쩌나. 대명이는 소리 지르지 않는다. 화도 내지 않는다. 간혹 삐지는 것 같기는 하지만…. 혼자 삭히고 혼자 망설이고 그렇게 여러 감정을 흘려보낸다.
배우 김대명은 진지한 사람. 사진 <아레나> 제공.
영화 두 편이 개봉된다고 들었다. <국제수사>와 <돌멩이>다. <국제수사>는 즐겁고 박진감 넘치는 영화인 것 같고, <돌멩이>는 조용하고 격정적인 영화 같다. 예고편만 보고 추정하건대, <돌멩이>에서 대명이가 맡은 역할은 한편으로 대명이가 지닌 마음의 결과 유사하게 느껴진다. 혼자 삭히고 혼자 망설이는 마음의 결. “코로나19 때문에 개봉을 계속 못 하고 있어.” 대명이가 나를 볼 때마다 해준 말. 내 친구가 열심히 찍었으니 많이 보아주셨으면 좋겠고, 대명이 뿐만 아니라 여러 배우가 고생해서 찍은 작품이니 많이 보아주셨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코로나19라서 극장에 가기는 쉽지 않겠지. 그래도…봐주시면 안 돼요?
5년 전 인터뷰했을 때 대명이가 이런 말을 했다. “우성아, 나는 기대를 안 가져. 작품 하나 들어갈 때마다 밑바닥에서 더 땅을 파고 내려가. 나는 거기에서 뭐든 시작해.” 대명이는 겁쟁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손을 들고 발표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사람들 많은 데서 주목받는 거? 당연히 못 견디지. 그런데 배우가 되었다. 용케 잘 해내고 있다. 그러니 나는 내 친구 겁쟁이를 사랑한다. 어떤 분들에게 조금은 희망이 될 수 있을 거 같아서.
이우성(시인·<아레나 옴므 플러스> 컨트리뷰팅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