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 있을 때다. 와인을 물처럼 마셨다. 실은 물보다 와인이 쌌다. 종이팩에 든 화이트와인은 1ℓ에 600원쯤 했다. 괜찮은 생수보다 싼 값이었다. 와인 안주에는 역시 프로슈토였다. 짜서 사놓고 잊어먹어도 잘 안 상하지, 먹다 남으면 샌드위치에 넣어서 한 끼 뚝딱하기 좋았다. 그래도 냉장고 구석에 처박혀 있는 걸 발견하면 다져서 파스타 소스에 넣으면 됐다. 이탈리아에서 김치나 된장 격인 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프로슈토라고 대답할 수 있다. 소금을 쳐서 숙성시키며, 감칠맛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온갖 과학으로 숙성의 비밀을 캐내려고 하지만 맛의 비결이 미지의 세계에 있다는 것도, 그래서 대량생산품은 그다지 사랑받지 못하는 것도 닮았다.
프로슈토는 돼지의 엉덩이에서 뒷다리에 이르는 부위에 소금을 쳐서 숙성시킨다. 소금, 고기, 시간, 끝. 그래서 어렵다. 질이 천차만별이다. 이탈리아의 대도시에는 반드시 프로슈토 전문점이 있다. 그저 돼지 뒷다리일 뿐인데, 온갖 금박과 왕관 상표로 치장하고 진열되어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값도 비싸서 금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 돼지의 발이 그대로 노출된, 그래서 그로테스크하게 보이는 그 고깃덩어리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얇게 저며서 혀에 올린 후 서서히 녹는 지방과 부드럽게 씹히는 살코기, 소금과 숙성의 맛을 음미한다. 가정에서 덩어리로 살 수는 없으니, 몇 그램을 지정해서 주문하면 이발사 복장 같은 위생복을 입은 점원이 얇게 저며 준다.
예전에는 푸주한이 쓰는 커다랗고 번쩍이는 칼을 집어 들고 써억, 썩 소리 나게 줄에 간 후 얇게 포를 떠서 팔았다. 푸주한다운 눈빛과 표정으로, 엄숙하면서도 자부심에 찬 표정으로 칼을 갈던 점원들(그쪽 말로 마첼라이오라고 불렀다)이 생각난다. 요즘에는 대개 회전형 슬라이서를 쓴다. 바쁘니까. 더 빨리 프로슈토를 저밀 수 있으니까. 프로슈토는 기름종이에 싸서 포장해주는데, 그걸 받아드는 이탈리아 아줌마들의 표정이란 마치 결혼하는 딸과 함께 금은방에 들른 엄마 같다. 약간의 의구심과, 귀한 것에 대한 존경심이 뒤섞인.
프로슈토, 프로쉬우토, 쁘로쉬우또…. 내가 쓰는 오래된 문서작성 프로그램은 이 세 낱말에 모두 붉은 밑줄을 긋고 있다. 맞춤법이 틀리거나, 한글 프로그램에 등록이 안 되어 있다는 뜻이다. 아직도 생소한 이탈리아의 이 음식. 일본 사람들은 ‘나마 하무’라고 하고 우리는 ‘생햄’이라고 한다. 과연 생것일까. 돼지 엉덩잇살이 소금에 오랜 시간에 ‘요리’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이탈리아에서 월드컵 무렵(그래 맞다. 2002년)에 한국에 돌아왔을 때, 어떤 도매상도 이탈리아산 프로슈토를 팔지 않았다. 이탈리아와 한국 간에 육가공품 수출입에 관한 무역협정이랄까. 그런 요식행위가 없었다고 했다. 도매상들은 스페인이나 오스트레일리아산, 미국산을 팔았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검색만 해도 뒷다리 하나가 통으로 올라와 있고, 얇게 저며서 먹기 좋게 포장한 것들도 많다. 클릭 한 번으로 프로슈토를 받아먹을 수 있다니. 비계가 적당하고, 보드라운 분홍색 살이 혓바닥에서 녹는 프로슈토.
이탈리아인들은 프로슈토는 날로 먹는 것을 최고로 친다. 멜론에 곁들이는 걸 좋아하기는 하지만, 전통요리는 아니다. 대개는 ‘그냥’ 먹는다. 완전한 프로슈토에 무얼 뿌리거나 더한다는 것이 별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얇게, 짭짤하게, 프로슈토 고유의 풍미를 온전하게 느낄 수 있도록. 이탈리아인들은 프로슈토에 결벽증이 있다. 그래, 그것도 옳아. 나는 그 결벽증을 오랫동안 존중했다.
한국에서 내가 일하는 식당에서는 프로슈토에는 아무것도 뿌리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한국의 요리사들은 재료에 손을 대는 걸 천성적으로 좋아한다. 프로슈토는 ‘요리’가 아니라 ‘재료’라고 생각한다. 접시에 프로슈토라는 재료가 허전하게 혼자 있는 걸 참지 못한다. 가루 치즈나 올리브유, 조린 발사믹식초, 온갖 과일들이나 양념을 뿌리고 얹으려고 든다. 나는 그걸 말렸지만, 한 후배가 만든 프로슈토 접시에 반하고 말았다. 그저 감자를 작게 잘라 삶고, 올리브오일과 파슬리에 버무렸을 뿐인 접시였다. 프로슈토는 짜고, 뭔가 그걸 수렴해줄 탄수화물이 있으면 맛이 훨씬 조화롭다. 결벽증 가진 이탈리아인에게는 미안하지만, 감자에 버무려서 한 번 먹어보길 바란다. 꽤 괜찮다니까.
프로슈토를 안주 삼아 한잔하는 분들에게 조언하자면, 백김치나 물에 씻은 묵은지도 아주 잘 어울린다. 김치와 프로슈토는 먼 친척 간이라 그렇다. 파르미자노 같은 덩어리 치즈를 사서 얇게 저미거나 주사위 모양으로 부수어 같이 먹어도 안주에 최고다. 주종은 맥주보다는 와인이나 소주 칵테일, 하이볼 같은 양주 칵테일에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맥주엔 역시 감자튀김이나 치킨이어야 하니까.
박찬일(요리사 겸 음식칼럼니스트)